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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장 김희동
취급분야 Interior Construction

 

투팀 수중터널 공사, 일사천리

- 사이공 동서고속도로 건설계획의 일환 - 호찌민 시의 극심한 교통란 해소방안책 - 총 1.46km, 규모 6 강진에도 끄덕없어

호찌민 시 1군과 투팀 지역을 잇는 지하 수중터널 공사가 본격화되고 있다. 현재 이 1.49㎞ 구간 가운데 첫번째 구간인 370.8m의 보강콘크리트 구조물(2만7천t) 설치작업이 한창이다.
내년 중반기 개통될 예정인 이 수중터널은 일본국제협력단(JICA)이 지원한 4억 5,600만불의 재정으로 추진돼왔으며, 첫번째 구간은 호찌민시 1군과 2군의 투팀 지역을 연결하며 나머지 3개 구간 구조물 (깊이 14M)은 동나이성 연짝 지역의 사이공강으로 예인돼 설치될 예정이다.
이와 관련, JICA 측은, “이 수중터널은 사이공 동-서고속도로 건설계획의 하나로 호찌민 시의 극심한 교통란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완공시 하루 평균 3만대까지의 자동차가 통과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이 터널은 규모 6의 강력한 지진에도 견딜 수 있는 내진능력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참고로 투팀 터널이 완공되면 이 터널은 최종적으로 호찌민과 하노이를 잇는 6차선 동-서 고속도로와 연결된다.

까 럭(ca loc)

한국에서 가물치로 알려진 생선이다. 베트남 중부 지방과 북부 지방에서는 까드라우(ca trau), 까과(ca qua)라고도 불려진다. 까 럭은 베트남 강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흔한 물고기다. 지역에 따라서 노란색-갈색. 노란색-검은색 등 물고기의 색깔이 다르다.

까럭 느엉 드루이(Ca loc nuong trui)라고 불리는 구이 요리는 베트남 남부 지방에서 즐겨 먹는 요리 중 하나다. 주로 조리거나 구워 월남쌈과 야채랑 같이 먹는다. 산모의 보혈약으로도 효과가 있다.

△까 뜨라(ca tra)

꾸 롱(Cuu long)강 평야에 많이 서식하고 있는 물고기다. 매기의 일종이지만 턱수염이 짧은 것이 특징이다.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해서 두뇌 영양공급과 콜레스테롤 개선에 좋다. 까 뜨라는 현재 일본, 러시아. 미국 등 많은 나라에 수출되기도 한다.

베트남에서는 조림 요리로 먹거나 말려서 먹기도 한다.

△까 느(ca ngu)

다랑어의 일종으로 베트남 연안에서 많이 잡히는 물고기다.

크기가 비교적 크고 무게도 많이 나가며 미국, 일본, 유럽 등의 수출용으로 주로 쓰인다. 해마다 4월부터 8월까지,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많이 잡힌다.

베트남에서는 구이 요리와 튀김 요리가 유명하며 심장병에 특히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까로피떠(ca ro phi do)

민물돔의 일종이다. 베트남에서는 까디에우홍(ca dieu hong)이라고도 불려진다.

분홍색을 띠고 있으며 크기는 약 20cm 정도다. 1985년부터 말레이시아에서 들여와 양식되고 있다.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지역에서 주로 살며 메콩 델타에서 많이 양식된다.
베트남에서 특히 라우 까디에우홍이라는 샤브샤브 요리가 아주 유명하다. ⊙

 

아무거나 잘 먹어요

예전에 근무하던 회사에서 미국에 있는 모 회사와 직거래를 텄던 적이 있었다. 거래가 성사될 조짐이 보이자 미국에서 본사 사람들이 우리 회사에 실사를 나왔다. 일을 믿고 맡길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이 되어 보이나를 따지는가 싶더니 긍정적인 결론을 얻었는지 계약서에 서명 날인해 주고 감독자 하나 달랑 남겨 놓고 돌아가 버렸다. 그때가 계약이 성사될 찰나여서 그야 말로 극진한 대접을 해주었다. 낮에는 정치인이 주로 드나든다는, 한끼 식사가 기십만원에 이르는 한정식집에서 풀코스 식사를 대접했고, 밤에는 TV 탤런트 저리가라 할 만큼 아리따운 아가씨가 술시중을 들어주는 초호화판 유곽에서 술을 대접했다. 아마 그때 사용한 접대비도 만만챦았겠지만 계약을 따내 얻게 되는 수익에 비하면 얼마던지 치뤄도 될 만한 비용이었을 것이다.
계약이 성사되자 그 미국인 감독자의 치닥거리를 해야 하는 일이 내 몫이 되어버렸다. 내가 그 일에서 주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전에 내 과장이었던)사장은 거의 신경을 안쓰는 듯 했다. 내게 던져준 법인 카드는 은행계좌 하나를 공통으로 사용하는 것이어서 언제나 그렇듯이 밥 몇 번 먹으면 그 사이에 한도가 차버려 쓸모가 없게 되는 건 금방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내게 딸린 군식구가 되어버린 그 미국인 친구, 일하는 데에는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었지만 저녁 시간이 되면 항상 골치가 아팠다. 먼데서 온 귀한 손님이라고 마시고 먹이고 해야 했는데, 이미 그럴 시점은 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 친구를 처음 인계 받았을 때, 나쁘게 들인 버릇을 고쳐줘야 한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계약서에 사인할 때에는 높은 사람들과 어울려 흥청망청 퍼 마시고 즐겼는지 몰라도 신발에 흙먼지가 묻어나는 현장에 다녀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 해줄 능력도 안되고,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같이 일하던 첫 날, 용산 언저리에서 일을 보고 나오는 길에 마침 점심 시간이 되어 주위를 둘러 보니 식당다운 식당은 보이질 않고 허름한 중국음식점 하나만 눈에 들어 오기에 그 친구를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여기 짜장면 두 개요~~”라고 외쳤다. 물론 그 친구한테는 뭐 먹을꺼냐고는 묻지도 않았다. 물어봐야 대답을 못할 테니까.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는 우리네 옛 말이 있다. 계약서에 싸인하기 전하고 후하고 왜 이렇게 다를까 하고 실망을 했을런지도 모르지만 그건 내 소관이 아니다. 그런데 그 친구, 자장면이 그렇게도 맛있었는지 바닥을 허옇게 드러낼 정도로 깨끗하게 먹어 치웠다. 우리는 그냥 국수 면발만 걷어 먹고 마는 정도니까 그만 먹어도 실례가 아니라고 말해주었는데도 아주 설거지 해놓은 듯이 깨끗하게, 그릇을 핥았다 싶을 정도로 싹싹 먹어 치운 것이다. 그러고서 나중에 몇 일이 지났을 때 내게 하는 말이, 저녁에 혼자서 숙소에서 나와 이곳 저곳을 돌아 다니다가 시장 골목에서 파는 것은 다 먹어봤단다. 심지어는 번데기까지 먹어봤는데 맛이 아주 좋았다고 했다. 그 이후로는 술을 같이 마셔도 포장마차에서 마셨고, 재밋거리를 찾아 놀러 가도 당구장 같은 돈이 몇 푼 안드는 곳에 다니게 되었다. 지금은 이름을 잊었지만 성격 털털하고 순박하던 미국인 기술자와 친구처럼 지내던 때가 있었다.

거꾸로 그 미국인 친구를 만나기 전에는 내가 외국에 파견 근무를 나가 있었다. 그곳이 몽골이었는데, 몽골에서는 내가 그 친구와 비슷한 지위에 있었다. 난생 처음 말도 타보고, 난생 처음 양고기, 늑대고기, 심지어는 가젤(사슴 비슷한 야생동물)고기와 까마귀고기도 먹어 봤던 곳이 바로 그 곳이다. 어려서부터 먹는 것을 가리는 편이 아니어서 남들 보기에 웬만큼 비위가 상하는 것도 잘 먹는데, 그런 나도 먹기가 꺼려지던 것이 있었다.
몽골은 날이 추운데다가 물이 귀해 사람들이 잘 씻지를 않는 편이다. 그런데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입는 옷, 사용하는 식기들 조차 잘 씻지를 않는다. 그나마 상하수도 시설이 잘되어 있는 도시는 덜한 편인데, 물 한 모금으로 세수와 양치질을 다 해결해야 할 정도로 물이 귀한 초원의 이동식 주택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잘 씻지 못한다는 것이 별로 그렇게 문제가 되는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에 와서야 솔직하게 밝히는 것이지만 때가 쪼닥쪼닥 묻어있는 옷을 입은 사람들이, 때가 쪼닥쪼닥 묻어있는 손으로, 역시나 때가 쪼닥쪼닥 묻어 있는 그릇에 한 가득 따라주던 몽골식 우유차-‘수태차’가 그렇게도 마시기 싫었다. 그런데 그 ‘수태차’는 어딜 가도, 누굴 만나도 한 잔씩 권하니까 나중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자, 마시는데 들던 거부감이 처음 보다는 덜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현장에서 일을 보다가 차가 고장이 났던 적이 있었다. 다행이도 다른 차가 있어서 견인을 할 수는 있었는데 이동속도가 장난 아니게 더디었다. 가도 가도 주위에 꼿꼿하게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벌판 뿐이고 가져갔던 식량은 이미 다 먹어 치워 음식 구할 곳이 없었다. 그때, 그 전에 다른 차들이 현장에 나갈 때에 차에 총을 싣고 다니면서 그저 재미 삼아 동물을 사냥하는 것을 봤으므로, 늑대고기나 가젤고기도 그 덕에 맛볼 수 있기는 했지만, 적어도 내차 만큼은 총을 가지고 다니지 못하게 했다.
다른 한국인 현장 관리자들에게도 그렇게 지시는 했지만 별 효력은 없었던 것 같다.
그 때문에 천상 음식은 양 치고 말 키우는 몽골 유목민에게서 얻어 먹을 수 밖에 없었는데, 그 때 먹었던 몽골식 양고기 칼국수 맛이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다. 그 때는 때가 묻었다는 정도가 위에서 말한 ‘수태차’의 세 가지 요소 말고도 하나가 더 있었음에도 아주 맛있게 두 그릇씩이나 먹었던 것이다.
그때, 우리 일행과 몽골 유목민 가족이 식사를 같이 했는데 그릇이 모자라는 듯한 눈치가 보이기에 어른인척, 다른 사람들 먼저 먹으라고 양보를 한 덕에 다른 사람이 먹고 난 그릇을 물도 아닌, 역시나 때가 쪼닥쪼닥 묻어 있는, 우리네 걸레 보다 더 심하게 안 깨끗해 보이는 행주로 한 번 스윽 훔쳐내고 난 그릇에 내가 먹을 칼국수를 담아 주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 칼국수 맛이 지금도 생각이 날 정도로 기가 막히게 좋았다는 기억이다. 그 맛 그대로라면 지금 다시 그 때 그 방식 그대로 음식을 내주어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무거나 잘 먹어서 좋은 것이라 해 봤자 별 것이 없다. 그냥 이것 저것 잘 주워 먹으니 배가 고플 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 외에 특별한 것도 없는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생활환경이 바뀌고 갑자기 음식이 바뀌어도 적응이 잘된다는 장점은 있는 것 같다. 만일 내가 옛날에 태어났더라면 실크로드를 오가던 대상(隊商)의 일원이었거나 좀더 나중 시대 사람이었더라면 뱃사람이 되었으면 제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보니 지금도 별로 그렇게 그와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기는 하다. 여기는 사우디 아라비아다.

 

  • Created by: kimswed
  • Completed on: 8th Jan 200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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