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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진출지역 호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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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장 박태준
취급분야 건설
호치민 시내의 대형 백화점, 할인점 등에는 설을 겨냥한 다양한 상품들이 진열되기 시작했지만 예년 같은 쇼핑 열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사진=히엔 기자
자구책 마련에 안간힘

올해 유례없는 경제 불황이 예고되고 있는 가운데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비장한 각오로 자구책 마련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한마디로 살아남기 위한 피 말리는 전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제조, 서비스, 유통 할 것 없이 모든 기업들은 현재의 경영체제를 다시 한 번 점검 하며 불필요한 지출은 과감히 줄이는 것은 기본이고 새로운 자금원 확보를 위해 업종을 조정하는 대수술 등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공장 플랜트 설비 업체인 동명 건설은 국내기업들의 베트남 진출이 줄어들면서 한국기업을 상대로 한 영업은 한계가 있다고 판단, 국내 유명 주방 가구 업체인 ‘에넥스’의 베트남 남부 총판 계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베트남 현지 건설시장 진출과 함께 종합 인테리어 회사로까지 영역을 확대하는 등 불황 타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최성복 지사장은 “이제 한국 기업만으로의 영업은 한계가 왔다”며 “날로 성장하는 베트남 건설 시장에 뛰어들어 주방 가구를 비롯, 인테리어 영업으로 승부를 걸 생각”이라고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적극적 마케팅으로 돌파

보다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불황을 극복하려는 기업도 있다.

콤푸레샤 전문 제작∙설비업체인 유진 콤푸레샤는 올해부터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판로를 개척하는 한편 현지 업체와의 차별성을 강조한 전략으로 회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다는 계획이다.

우선 현지 업체들과의 가격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지금까지 필요할 때 마다 수시로 구입해 왔던 부품 조달 방식을 올해부턴 사전 수요 예측을 통해 비축 분량을 충분히 확보, 설비 단가를 낮출 방침이다.

박진언 호치민 지사장은 “최근 현지 로컬 업체들의 시장 진출이 크게 늘고 있는 추세여서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각오로 보다 적극적인 시장 공략을 계획하고 있다”며 “주변 여건이 베트남 진출 이후 최악의 상황이긴 하지만 위기가 곧 기회라는 생각을 가지고  올해 회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전환점으로 삼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기술력 배양에 전력

컴퓨터 유통 전문회사인 ‘좋은 친구들 컴퓨터’는 기술력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각오다. 경기 불황으로 컴퓨터 판매쪽의 매출 타격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선진 기술력 배양에 전력을 경주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R&D(연구 개발) 부문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려 경쟁사들과의 차별성을 확실히 부각시키는 원년으로 삼을 작정이다.

병원도 예외 없다

불황 극복을 위한 노력에는 병원도 예외가 아니다.

호치민 시 빈탄군에 최근 개업한 서울약수당한방병원은 최근 한국인 한의사 1명을 추가로 영입하는 한편 고객 신뢰도 증진 차원에서 한국에서 질 좋은 한약재를 직접 공급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또한 어려운 교민들을 위해 무료 진료도 계획하는 등 ‘나눔 마케팅’을 통한 얼굴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박재면 원장은 “사정이 여의치 않는 교민들을 위해 대대적인 무료 검진 및 진료를 계획하고 있다”며 “어려울 때일수록 함께 나누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마케팅”이라고 강조했다.⊙
 
 
행복 콘서트 지휘자 고신대 부총장 안 민 교수

이번 호에 특별히 소개할 인물은 고신대 부총장이면서 코스타 (KOSTA, 해외 한국학생 수양회) 명강사, 작가  <‘행복 콘서트’ (규장)의 저자>, 성악가, 지휘자 등으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팔방미인’ 안민 교수다. 사이공 연합교회 초청 강사로 베트남 땅을 처음 밟았다는 안 교수, 그는 이번 강연에서도 ‘특별한 만남’을 강조한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송두리째 바뀝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꼭 만나야 할 대상에는 좋은 배우자, 진실한 친구, 훌륭한 스승 등이 있겠지만 최우선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면 나머지 존재들은 스스로 찾지 않아도 이후 자연스럽게 찾아옵니다. 그것이 바로 행복해지는 비결이죠.”
사실 목사나 신부처럼 성직자도 아니면서 안 교수처럼 단호하게 하나님을 만남으로써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이번 호에는 지금까지와는 좀 더 색다른 차원의 ‘행복 콘서트’, 안 교수가 들려주는 그만의 ‘행복 비법’을 소개한다.

서울대 성악과 수석입학, 동 대학원 졸업, 이태리 롯시니 국립음악원, 로마 아르츠 아카데미 졸, 미국 위스트민스트 콰이어 컬리지 방문교수,고신대 음대 교수 및 부총장 등 그의 이력에서 보듯 그는 전문 성악가다. 실제로 그가 들려주는 다이나믹 하면서도 영혼을 사로잡는 감미로운 목소리는 성악에 시큰둥한 일반인들조차 매료시키기에 충분한 카리스마가 있다. 게다가 특유의 빠른 어조로 진행되는 그의 강연은 두 시간이 마치 10여분처럼 느껴질 정도로 흡입력이 있다.
“제 부모님은 이북에서 내려와 부산에 살면서 고생을 밥먹듯 했기에 아버지는 제게 늘 ‘커서 의사가 되라’는 말씀을 늘 들려주셨죠. 하지만 어려서부터 성악만이 제 유일한 소명이라고 생각했던 저는 아버지를 설득, 급기야 주간 막노동과 야간 경비로 24시간 몸을 혹사하며 레슨비를 댄 아버지 덕에 서울대 음대를 수석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안 교수의 아버지는 그가 부산역을 떠날 때 아들의 손을 붙잡고 ‘꼭 성공하라’고 당부’하신지 얼마 못 되 돌아가시고 만다. 더욱 어려워진 생활 속에 살아갈 길이 막막하던 그에게 하나님과의 특별한 만남의 순간이 찾아온다.
“어느날 사는 게 너무 힘들어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통곡했습니다. 한 참을 울었는데 갑자기 마음 속에서 ‘먼저 그분을 위해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바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아, 가진 건 이 목소리밖에 없으니 이걸 바치면 되겠구나’라고 결단했고, 바로 그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온 몸에 힘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이후 안 교수는 양로원, 고아원, 나환자들 그리고 감옥 등을 전전하며 노래와 찬송으로 세상에서 소외된 그들을 위로했다. 이렇게 몇 년이 지나자 놀랍게도 어느 날 한 사람이 찾아와 ‘아무 조건 없이 당신을 돕고 싶다’며 그를 고신대 교수 (당시 25세)로 청빙했다. 그는 이후에도  안 교수를 유학까지 보내주며 물심양면으로 후원했다.
“당시 노래로 봉사하는 중 제 목소리가 담긴 테이프가 복제되어 부산에서 온 나라로, 미국으로 전세계로 퍼져 나갔는데 이분이 우연히 그걸 듣고는 저를 찾아오신 거죠. 어쨌든 이 일을 계기로 저는 제 의지와는 상관 없이 세계적인 유명인이 되었고, 이후 세계 각국에서 강연이 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음악으로 성공했던 이유를 자신이 잘나서가 아닌,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헌신하신 부모님 덕이며, 무엇보다 그 배후에 자신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모를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배우자를 만나고, 인생의 스승을 만나며 그밖에 상사와 부하, 인생의 조언자를 만납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부모를 잘 만나 평생 큰 고생 없이 잘 먹고 잘 살다 가고, 또 다른 사람은 좋은 스승을 만나 다른 사람이 맛보지 못하는 지혜를 얻기도 합니다. 공자 역시 논어 편에서 ‘유븅자원방래 불역열호’라고 했듯이 좋은 친구는 인생의 활력소로, 어진 아내는 인생의 동반자로서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데 보이지 않는 든든한 힘이 됩니다. 이처럼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의 행, 불행이 결정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 인생의 주인을 잘 만나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인도자가 있지만 우리 각자에게 소명을 부여하고 옳은 길, 의의 길로 인도하는 그분을 먼저 만나야 한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 생명과 연결되어 있고 그분이 우리 삶을 주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놀라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생을 마감합니다. 세상에서 온갖 축복을 다 받고 살았다 해도 그분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부디 그 분을 만나 영원한 참된 행복을 얻기 바랍니다.”
어떻게 보면 아주 단순하고 짧은 체험이었지만 안 교수의 주장대로 그의 삶은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던 바로 그 순간부터’ 모든 일들이 순탄하게 풀려 나갔던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공항을 떠나기 전 안 교수는 마지막으로 교민들을 향해 이렇게 조언했다.
“아무리 삶이 어려워도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나를 만지시고 인도하신 하나님, 누구든지 그 분께 손을 뻗어 ‘제 인생을 붙잡아 주세요’라고 간절히 외친다면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반드시 여러분을 행복의 길로 인도하실 겁니다.”

첫눈에 반해 6년을 연애하고 25년 넘도록 함께 노래하며 살아온 오늘까지, 퇴근길에 다시 만날 생각만 하면 여전히 가슴 설렌다는 아내 정진희(메조소프라노) 사이에 성은과 성준 두 아들을 두었고, 아이들의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를 모두 모시고 살고 있는 다복한 가족의 가장 안 교수, 그는 지금도 고신대학교 예술대학 교회음악과 교수 및 부총장 일 외에 부산 사직동교회의 장로이자 찬양사, 고신대학교 합창단 ‘페로스’의 상임지휘자, 부산장애인전도협회 이사장, KOSTA 강사 등으로 섬기고 있으며, 요사이도  국내외 각 기관 (학교, 기업, 교회 등)에서 연간 200여 회에 달하는 집회를 인도해 오고 있다.

  • Created by: kimswed
  • Completed on: 6th Dec 2008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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