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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션교민잡지발행인 유기남:



잊혀진 나라, 시간이 멈춘 나라 라오스(Laos)


글, 사진 : 류기남(CREATION AD., INC 대표이사, CREATION 발행인)





라오스(Laos)는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다. 아무리 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도, 라오스를 방문하면 다른 나라엔 매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라오스는 한번의 여행으로 끝나는 사람보다 두 번째 가는 사람이 많고, 두 번째 가는 사람보다 세 번째 가는 사람이 많은 곳이다.

 

이토록 라오스를 자주 가는 사람은 많아도, 한국 사람들에겐 아직도 라오스는 생소하다. 라오스엔 커미션을 받을 쇼핑센터도 없고, 그저 이곳 저곳 오랜 시간 버스를 타고, 때론 배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관광지를 바쁘게 돌아다니기 보다, 풍광 좋은 자연을 바라보며 신선놀음 하는 것이 여행을 전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가족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토산품을 사서 배낭에 넣을 형편도 조건도 안 된다.

라오스에선 열대지방 특유의 풍경. 흔히 우리가 상상하는, 야자수 나무가 쓰러지듯 그림처럼 서있는 이국적인 해변은 찾을 수 없다. 특히 한국인 관광객들은 서양인들과는 달리, 힘든 산악 트래킹(tracking) 같은 일정은 애써 몸을 피한다. 때문에 여행사에선 돈이 되지 않는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깊숙한 내륙에 숨어있는 라오스는 교통의 오지다. 베트남 호찌민에선 직항이 없다. 캄보디아 프놈펜(Cambodia Phnom Penh)을 거치거나, 하노이를 거쳐야 갈 수 있다. 물론 베트남 중부지방과 북부지방 육로를 통하는 게이트 보더(gate-border)도 몇 곳이 있다. 반드시 베트남, 태국, 중국 같은 주변국을 거쳐야 방문할 수 있다. 한국에서 찾기엔 매우 불편한 곳이다.

 

라오스 여행 5박6일. 베트남에 거주하면서 가졌던 6년여의 여행 중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여정이었다. 원시 그대로의 풍경,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사람들, 동남아시아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맑은 계곡 그리고 강. 첫 방문임에도 깊은 인상을 남길 정도로 모든 것이 친숙하고 편했다.

비엔띠엔(Vientiane)의 조용하고 깨끗한 거리, 청결한 식당. 방비엔(Vang Vieng)의 깊은 계곡과 맑은 물, 그리고 평화로움.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의 역사와 불심, 모든 것들이 다시금 그립다.

 

오랫동안 계획하고 기다리던 라오스 여행이다. 2년 전으로 생각된다. 하노이에 거주하는 지인이 라오스를 사업차 다녀온 후 필자에게 적극 여행을 권했다.

 

“사람들이 무진장 착해유. 식당도 동남아시아의 여타 나라처럼 더럽지 않고, 음식도 정결해유.”

“밤에 방비엔 계곡에서 밥을 먹는데---, 아~유! 그처럼 많은 별을 본 것은 처음이예유.”

 

지금은 라스팔마스(Las Palmas)에서 주재하고 있는 사공효식 영사도 덧붙였다.

 

“저도 한번 가 보았는데, 라오스는 꼭 한번 주재하고 싶은 나라입니다.”

“세계적인 빈국이지만, 거리도 깨끗하고 조용합니다. 특히 사람들이 매우 착합니다.”

 

그럴리가---. 두 사람의 온갖 미사여구는 필자의 호기심을 자극했지만, 라오스를 여행하기까지 약 2년의 세월이 흘렀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다만 베트남과 가까운 캄보디아에 여행할 곳이 아직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특히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은 갈 때마다 새롭고 신비하여 시간 여유가 있을 때마다 찾게 된다.

 




지난해 10월. 호찌민의 한 한국기업으로부터 앙코르
(Angkor) 유적을 주제로 ‘2008년 카렌더’ 제작을 의뢰 받았다. 때마침 방문한 소설가 조창인형을 촬영보조 기사로, 4박 5일 일정의 촬영을 떠났다. 촬영을 마칠 무렵 조창인형 앞에서 한가지 각오를 다졌다.

 

“형! 나 앙코르 유적 촬영은 이번이 마지막이야. 이놈의 앙코르 유적은 늪이야. 방문하면 할수록, 다가서면 다가설수록, 알면 알수록 자꾸만 오고 싶어. 마치 마약 중독자가 마약을 찾듯이---. 이러다 다른 지역 여행에 방해가 될 것 같아.”

“진짜? 책임질 수 없는 말 하지 마라. 내 생각에 넌 반드시 찾아온다. 네가 유적 촬영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안다.”

“우리 라오스나 가봅시다. 다녀온 사람들이 좋다고 하던데.”

“난, 라오스 보다는 네팔(Nepal) 하고 미얀마(Myanmar)나 먼저 다녀오련다.”

 

촬영을 마치고, 조선배는 태국(Thailand)을 거쳐, 우여곡절끝에 네팔을 다녀왔다.

 

“아이고! 이젠 휴식이다. 나이 들어 배낭여행 하려니, 정말 힘들다.”

“네가 예전 같으면 강아지 껌 씹기지만, 넌 이젠 안 된다. 넌 너무 부르주아가 됐잔아.”

“특급 호텔에서만 자는 네가 어떻게 1불 2불짜리 롯지(Lodge)에서 자냐?”

“형! 낚시나 하고 편히 쉬다, 몸 풀리면 라오스나 갑시다. 라오스에 아는 교민 한 분이 있는데 스폰서 해준대요.”

“그래, 좋은 생각이다. 모처럼 만에 마음에 든다. 그렇지 않아도 라오스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많아 가고 싶었다.

“뉴욕타임즈(New York Times) 인터넷 판에 <2008년에 꼭 가봐야 할 53곳> 중 첫 번째로 라오스가 꼽혔다.”

 

무심코 던진 화두는 라오스 여행의 기폭제가 되었다. 구정을 앞둔 1월초 무작정 라오스로 출발했다.

 

라오스 일반(인터넷 자료를 참조하였음)





라오스는 236,800㎢로 한반도 면적의 약 1.1배의 국토면적을 가지고 있다. 수도는 비엔티엔(Vientiane), 인구는 약 5천5백 만 명이다. 정식 국가 명칭은 라오인민민주주의공화국(라오스, LAO P.D.R)이며,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유일하게 4면이 육지로 갇혀 있는 나라다. 북쪽으로는 중국과 미얀마, 서쪽에는 태국, 동쪽으로는 베트남, 그리고 남쪽엔 캄보디아로 둘러싸여 있는 내륙국가다.

 

라오스는 70년대 중반, 북베트남과 군사적 동맹을 맺고, 함께 남베트남을 침공하면서 세계인의 관심을 모았다. 이후, 라오스는 공산화 되고, 베트남과 형제국의 동맹을 맺고 있다.

라오스에는 약 92개의 언어들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 라오어가 표준어로, 전체인구의 2/3가 사용하는 있다.

라오어는 저지대에 거주하는 라오룸(Lao Loum)족의 언어이며 이들이 라오스의 주요 종족으로, 정치와 정부 주요 요직을 장악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학교에서도 이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라오스 언어도 6성이다. 같은 단어가 많고, 성조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달라진다. 자음 34개, 모음 28개이다.

 

54개의 민족과 팔천만명으로 이루어진 베트남. 라오스는 이보다 더 많은 약 68개의 민족이 함께 살아가는 인종 전시장이다. 인구는 약 오백오십만명이다. 또 다른 한편에선 전체 117개의 종족에 인구 육백만명을 주장한다. 이유로는 라오스 정부는 인구조사 시, 베트남인이나 중국인들 그리고 깊은 산 속에 사는 종족은 포함 시키지 않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라오스엔 수많은 베트남인과 태국인들이 살고 있으며, 이들이 상권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비엔티엔이나 방비엔 등 대도시의 노점상 대부분이 베트남인이다.

 

라오스의 연중 평균기온은 26도이며(최저 15도, 최고 45도), 기후는 계절풍의 영향을 받는 열대성으로 건기와 우기로 구분한다. 10월부터 그 다음해인 5월까지는 비가오지 않는 건기철이고, 6월부터 9월까지는 우기철이다.

우기철엔 매일 비가 내려 그리 덥지 않으나, 습도가 약 90%이상을 유지한다. 비가 내리지 않는 건기철은 다시 조금 서늘한 11월-2월 까지와 가장 더운 3월 - 5월로 구분된다. 강우량은 지역에 따라서 큰 차이가 나며 연간 평균 약 2,000mm정도다.

 

라오스는 국토 면적에 비해 인구가 매우 적은 편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민족간의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인한 유혈의 충돌, 프랑스 식민지 독립 투쟁에 의한 희생, 베트남 전쟁시 미군의 무차별 대폭격에 의한 희생. 그 밖에 열악한 위생환경으로 인한 높은 영아사망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또한 라오스에 공산주의가 들어선 1975년을 전후하여 수 많은 사람이 자유를 찾아 서방 및 태국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라오스의 인구성장률은 2.5%, 15세 이하의 어린이 비율은 전체 42.7%, 65세 이상 노년 인구는 전체 3%이다.

 

참고로 베트남 전쟁시 미군이 라오스에 투하한 폭탄은, 무려 400만 톤에 이른다. 포격 이유는, 북 베트남의 지도자들이 미군의 포격을 피해 베트남 접경 라오스 밀림으로 피신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호찌민을 비롯한 북베트남 지도자들이 한때 라오스 밀림의 토굴에서 생활하며, 베트남전쟁을 지휘한 바 있다.

미국 폭격기들은 비밀리에 베트남 국경을 넘어, 라오스와 베트남 국경지대에 무차별 폭격을 감행했다. 지금도 폰싸반(Phonsavan)을 비롯한 국경도시에선 뇌관을 제거한 커다란 불발탄을 식당이나 주택 전면에 장식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국경지대 밀림엔 미군이 비행기로 살포한 지뢰들이 아직도 제거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어, 화전민들의 피해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알려지지 않은 전쟁’으로 표현하고 있다.

 

라오스는 남북의 길이가 2,069Km에 달하며, 국토의 약 70%가 산악 지대이다. 이들 산악지대의 대부분은 험한 정글로 남북으로 이어진 산맥이다. 높이가 2,000m 이상인 산은 9개가 있으며, 최고봉은 2,850m인 비아산이다. 이들 산은 남북으로 펼쳐져 있어 베트남과 중국과의 자연적 경계를 이루고 있다. 산지와 고원엔 메콩강과 이어지는 지류와 메콩강 본류가 흐른다.

 




메콩강은 티벳에서 발원하여 중국을 거쳐 인도차이나 6개 나라를 통과하는 전장 4,800km의 거대한 강이다. 또한 지구상에서 가장 오염이 덜된 강으로, 세계인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으며 동시에 인도차이나 6개 나라의 젖줄로 큰 사랑을 받으며 유유히 흐르고 있다.

메콩강은 각국의 주민들에겐 풍부한 단백질을 공급해주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은혜를 베풀고 있다. 바다가 없는 라오스로선 특별히 더욱 더 소중하다. 다양한 야생 동식물이 살아가고 아름다운 경관을 소유한 훌륭한 삶의 터전이다. 메콩강은 라오스의 지역 주민 뿐만이 아니라, 정부에서도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라오스를 통과하는 메콩강의 총 길이는 1,898Km로 인접한 나라 중 가장 길게 흐른다. 메콩강 전체 수량의 35%를 차지하고 협곡도 많아, 수력발전소 건립의 최적의 장소이다. 라오스 정부에서는 풍부한 메콩강 수량을 이용한 수력발전소를 건설, 태국과 베트남, 캄보디아로 전력을 수출하여 국가의 주 수입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메콩강은 무역 및 모든 면에서 라오스의 주요 교통 요충지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강을 중심으로 태국과 국경을 이루고 있으며, 강을 통한 왕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메콩강을 사이에 두고 태국과 라오스 두 나라는 메콩강 협정을 체결하고, 총 8개의 국경 사무소가 설치 운영되고 있다. 이 국경사무소는 각종 무역 및 인적 교류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가슴이 통하는 사람과의 여행은 항상 새롭고 즐겁다.
조창인형과의 오랜 여행 동행은, 많은 주위 사람들의 오해와 질시를 받는다. 심지어, 크리에이션의 주요 필진들에게 까지. ‘오랫동안---. 지겹지 않냐, 너희들 무슨 사이냐?’고 질문 한다. 하긴, 외국인 눈으론 더욱 이상할 일이다. 신체 건강한 젊은 사내 둘이 한 방을 사용하고, 밤이면 방안에서 긴 시간을 보내고---‘ 하지만 형도 나도 신경 쓰지 않는다. 뭐~ 우리의 성 정체성은 아무 문제 없고, 마음 편하고 서로에게 가르침을 주는 여행의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형은 나에게 글 쓰는 법과 인생에 대한 시야를 넓혀주고, 난 형에게 사진의 시야를 넓혀준다.

50이 다 되가는 나이에 누구에게 배운다는 말은 좀 부끄러운 말이다. 하지만 어떠한가. 죽을 때까지 배우는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이번 라오스 여행에서도 중요한 한가지를 배웠다. 아니 다시 인식한 계기가 되었다. 바로 몸에 밴 남을 배려하는 작은 마음, 기쁨이다. 때론 남을 위한 배려가 나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받아들이는 사람에겐 큰 기쁨과 행복의 시작이 된다.

정확한 년도는 잘 기억 나지 않는다. 2004년 겨울인가? 호찌민에서 밤기차를 타고 냐짱을 거쳐 다낭을 여행하고, 다낭에서 다시 하노이로 비행기로 이동하여 하롱베이와 하노이, 사파를 여행할 때이다.

우연히 하롱베이 정크선 위에서 한국인 관광객들과 조우했다. 중학교선생님, 회사원, 학생이라고 하기엔 좀 삭은 남성.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구성된 배낭 여행객들이다. 방학을 이용한 2달 일정의 촬영여행이라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보니 많은 준비를 해왔지만, 생각과 현실과는 많이 차이가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들로부터 여행을 함께 하면 좋겠다는 간청이 있었다. 내 일정과 큰 차이가 없고, 다른 부분은 변경하겠다는 부연설명. 썩 내키진 않았다. 필자는 하노이, 사파에 이미 스폰서가 있었고, 그들을 전부 이끌고 스폰서에게 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네들과 함께 다니려면 편한 잠자리와 맛있는 호텔 음식을 포기해야 한다.

베트남에서 15여일간의 여행을 경험한 그들의 얼굴은 이미 즐거운 여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흔히, 배낭여행객들을 ‘돈 없고 시간만 많은 사람들’로 이야기 한다. 그렇다. 여행을 다니면서 만나는 서양 여행객들을 보면, 빈대와 벼룩이 기어 다니고, 신경을 자극하는 작은 소음을 내며 날아다니는 모기들이 득실거리는 2~3불 짜리 게스트 하우스를 숙소로 사용한다. 식사는 어떠한가. 그네들 대부분은 한끼에 1~2불을 절대로 넘지 않는다. 늦은 밤 즐겨가는 까페에서도 맥주 1병으로 2~3시간을 굳세게 버틴다. 나로선 혀로 적시기만해도 30분이면 다 마시는 양인데도 말이다.

사진이라는 공통분모만 없었으면, 아마도 그들을 매몰차게 떼어버렸을 것이다. 한 수 가르침을 받겠다는 감언에 이끌려 고민 끝에 ‘낮선 만남, 어설픈 동반’이 되었다. 물론, 내 말을 하느님 말처럼 믿고 따른다는 전제 하에---.

 

혹독한 여행이 시작되었다. 그들과 동행하면서 스폰서의 일부를 포기하고, 내 몫으로 들어갈 비용을 절약해야 했다. 2박3일 도보 트레킹을 하루에 끝내고, 사진촬영을 위해 편하고 좋은 길을 버리고 수 많은 언덕을 오르내렸다. 힘든 일정이었지만 그들로선 만족할 여행이었다.

반대로 내 고통은 컸다. 편안해야 할 잠자리는 미니호텔로 변경되었다. 식사도 마찬가지다. 일인당 2~3불 정도 선에서 메뉴를 골랐다. 다행히 여러 명이기에 다양한 메뉴 선택할 수 있었다. 그들은 베트남 여행 15일 동안 거의 같은 메뉴로 식사를 했다며, 나의 메뉴 선정에 아무런 이의가 없었다. 아니 매끼니 감동이었다.

여행지 촬영을 하면서, 억지 시간을 내어 ‘현장에서 촬영요령, 올바른 앵글, 노출 등’을 조언해 주어야 했다. 저녁엔 각자가 촬영한 사진을 렌톱으로 보면서 품평회도 했다. 여행이 끝날 즈음, 그들의 사진 실력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그들은 스스로 찍은 사진을 보면서 행복감에 젓고 내게 고마워 했다. 그들과는 지금도 연락이 되며, 중학교 선생님은 내가 자신에게 사진의 눈을 띄게 한 스승이라고 말한다.

 

이번 여행에선 유독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대화를 나눴다. 또한 남을 진심으로 배려하는 마음과 기쁨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라오스의 수도 비엔띠엔에서의 이른 아침. 메콩강가의 깔끔한 한 레스토랑을 찾았다. 밤새 몸 안에 스며든 냉기를 몰아내기 위해 따스한 햇볕을 찾아 자리에 앉았다. 사약처럼 진한 에스프레소(Espresso) 커피 한잔과 두 손으로 쥐어도 가릴 수 없는 커다란 햄버거로, 거창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을 때이다.

 

“한국분 이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던진 말이다. 허술한 복장에 눈에 실핏줄이 핏발처럼 서 있고, 달랑 커피 한잔만을 마시고 있다. 한 눈에 밤새 술을 퍼 마신 배낭 여행객이다. 애써 대꾸를 피했다.

 

“아~예! 반갑네요”

“우린 베트남에서 왔어요, 이 친구가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거든요!”

--------중략,

 

마냥 인간성 좋은 조선배는 내 의견과는 상관없이 합석을 요청했다. 마지막엔----.

 

우리도 방비엔으로 갈 겁니다. 차가 없으면 같이 갑시다. 우린 스타렉스 9인승이라 자리가 충분해요”

 

숙소로 돌아와 배낭을 정리하면서 조선배가 던진 말이다.

 

“우린 수저와 침대하나만 더 놓으면 된다. 우리와 함께 다니면서 피폐해진 몸 컨디션도 정상으로 돌리고, 돈도 절약할 수 있을거야. 그만큼 여행기간도 더 길어지겠지.”

 

이미 벌어진 일이고, 어려움 사람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는 조선배의 배려와 선택에 이의를 제기할 필요는 없었다. 그의 천성이기 때문이다. 베트남에서의 출발과는 달리, 세 명의 남성들의 여행이 시작됐다.

5일 동안. 같이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같은 방에서 자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배낭여행하는 한국 학생들을 만나면 안타까워 하는 조선배가 그놈의 ‘황금종’을 쳐대는 덕택에 맥주 2 박스가 헛되이 날라갔다.

7일간의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우린 베트남으로 향했다. 방비엔에서 비엔띠엔으로 향하는 아침. 젊은 친구는 슬그머니 카드를 건네며 “형님. 차에서 심심하면 읽으세요.”

 

“예술가 형님들게---.

태국에서 미련 없이 비행기표를 버리고 라오스에 온 것 잘한 것 같습니다.

따뜻한 두 분의 마음에, 외로웠던 지난 여정이 잊혀졌습니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했던가요?

두분 형님들의 웃음과 여유로움 속에, 애쓰지 않고 유유히 흐르며 껴안으려는 무언가가 숨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략>

저는 일정을 변경하여 라오스에 좀 더 머물려 합니다.

무언가가 쉬었다가 가라고 자꾸만 당기는 것 같아서요---.

밀어내기 전까지 있어보렵니다.

몇일 동안 너무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행복하세요.

‘God, Budda and Mahomet bless you’

*추신: 두 분, 사이 좋은 모습이 아이처럼 해 맑아서 너무 좋아보입니다.”

 

한지로 만든 카드에 정성껏 쓴 편지였다. 가만히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한동안 잊고 살았다. 남을 위한 작은 배려가 남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한다는 사실을---.

 

최근 베트남 한인사회 곳곳에서 잦은 다툼이 있다. 남을 위한 배려 부족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사람 특유의 말장난과 아전인수격 상황해석이 싸움을 크게 만들었다. 모두가 자신의 잣대에 상황을 견주고 비교한다. 그래도 좋다. 정,반,합. 서로 틀리면 자료를 공개하여 어디서 틀렸는지 확인함이 마땅하다. 객관적 근거가 정의다. 실수가 있었다면 빨리 인정하고, 잘한(?) 쪽도 상대편의 어려움과 특수성을 인정하고 감싸주는 것이 미덕이다. 상대가 실수를 인정하면, 득의양양 기세를 부리기 때문에 쉽게 잘못을 인정하지 못한다.

 

자신을 키워준 은혜를 잊어서도 안될 일이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권력으로 눌러서도 안될 일이다. 얼마 전 <호찌민한인회>에서 한인회장 명의로 베트남 정부 3처 4명과 한국대사관 및 영사관에, 베트남에서 발행중인 교민잡지 한곳에 대한 발행중지 요청 진정서를 제출했다. '한인사회를 분열시키고 총영사관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다.

한심한 일이다. 좀더 신중히 생각해야 할 일이었다.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불 태우는 격’이다. 초가삼간만 태우면 다행이다. 초가집 불이 이웃으로 번지듯, 한국어로 발행되는 모든 잡지들이 피해볼 수 있는 상황이다. 그 점을 노렸는지 알 수 없다. 이 기회를---.

해당 교민지도 매일반이다. 그 잡지는 2년여 동안 한인회보라는 이름으로, 사무실과 기타 부대시설을 무료로 이용했다. 광고영업에선 어떠한가? 타 교민지에 비해 월등히 유리한 교두보를 확보하면서, 어려움 없이 사세를 확장했다는 것은 모든 교민들이 다 아는 사실이다. 이 점에 대해선 타 잡지들도 할 말이 많지만, 교민사회를 위해 모두 참았다. ‘유종의 미’가 아쉬운 부분이다.

 

 호찌민 탄손녓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프놈펜 국제 공항을 거쳐 1시간 40분을 머무른 뒤 비엔티엔 왔타이 공항(Wattay)에 착륙했다. 국제 공항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은 규모다. 공항 직원들은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국방색 정복 착용이다. 한눈에 경직된 모습이다. 하지만 딱딱한 겉 모습과는 달리 매우 친절하다. 후진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급행료’도 요구하지 않는다. 여행객들도 한 줄로 길게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당연하지만 참으로 놀랄 일이다. 몇 가지 질문을 던져도 바쁜 와중에 짜증내는 기색을 전혀 찾을 수 없다. 친절하게 답변한다.

출국 심사에서도 눈빛이 마주치자 생긋 웃는다. 나도 웃었다.

첫 인상이 무진장 좋다. ‘반갑다. 라오스야!!’

 

공항엔 라오스 교민 한규석님이 마중 나와 있었다. 가볍게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숙소로 향했다. 한규석씨는 Earnway Trading., Ltd 회사의 임원으로 라오스에서 대규모 옥수수농장을 개발하고 있다. 농장에서 본격적으로 옥수수가 생산되기 시작하면, 한국과 라오스 양국에 큰 이익이 될 것이다. 라오스의 맑은 공기가 차량속으로 밀려들어왔다.

라오스는 베트남과 국경을 마주하는 이웃 나라임에도 베트남과 사람과 풍경이 확연하게 다르다. 호사스럽진 않지만 기초 위에 목조로 기둥을 세우고, 2층에 주거공간이 위치한 이색적인 주거환경. 한국인들처럼 둥그런 얼굴, 쌍꺼풀이 없이 눈두덩이 튀어나온 온순한 얼굴. 베트남에선 쉽게 볼 수 없는 맑은 계곡. 이 모든 것들이 잃고 있었던 것을 찾은 듯 흥미롭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30여년전 한국의 고향마을을 찾은 듯 하다.

 

저녁이 되어 한규석님이 호텔을 다시 찾았다. 첫날이고 하니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이유다. 메뉴를 정하다, 좋은 곳이 있다고 했다. 호텔에서 10분거리에 문더나잇이라는 식당으로 안내했다. 메콩강변에 위치한 제법 운치 있는 곳이다. 강 건너편으론 일몰이 진행되고 있었다. 한승원씨가 강 건너편은 태국의 농까이라고 설명했다.

좋은 사람과의 만남, 사나이들의 시간. 술이 빠질 수 없었다. 라오스의 명주 ‘비어라오’를 주문했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시원한 비어라오가 강 건너 작은 불빛처럼 나그네의 감정을 자극한다.


  • Created by: kimswed
  • Completed on: 25th Nov 2008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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