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문화
 
성경 창세기에 대홍수가 끝난 후 노아가 포도 농사를 짓고 포도주를 마셨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그리스 신화에는 디오니소스가 포도 재배와 양조법을 전파했다는 대목이 있다.
 
인류 문명의 시작과 더불어 음주가 시작된 셈이다. 알코올은 대략 BC 7000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1만 년 전에 인류가 마셨다는 근거가 발견되고 있다. 
 
밀폐된 청동용기에 보관된 술이 중국 북부에서 발견되었는데, 4000년 이상 된 것으로 학계에서는 추정한다. 
 
무역 분쟁 해결에도 도움이 되는 알코올
 
‘한 잔의 술은 재판관보다 더 빨리 분쟁을 해결한다’는 말이 있다.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 에우리피테스(Euripides)의 말이다. 무역을 하다보면 분쟁도 따라오기 마련이다. 복잡한 분쟁을 해결하는 것은 냉철한 이성보다 때로 한 잔의 술일 때도 있다. 
 
필자가 술로 분쟁을 해결한 사례는 많다. 또한 거래가 잘 이어지지 않은 바이어들과 한 잔 술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풀고 거래를 성사시킨 경우도 많다. 
 
필자의 경험상 ‘예(禮)를 다하여 상대방과 마시며 자기절제가 이루어진다면’ 술은 비즈니스에 큰 도움이 된다. 술도 배워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또한 음주는 사람의 성품을 비추는 거울이므로 상대의 인성을 파악하는 좋은 수단이기도 하다.
 
필자는 전 세계를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바이어나 협력업체 관계자들과 술을 곁들인 오찬과 만찬을 했다. 시대에 따라 마시는 술도 변화하고 품질도 다양하게 바뀌었다. 
 
필자가 지금까지 가장 많이 마신 술은 한국술을 제외하고는 와인이다. 그 다음은 위스키, 바이주(白酒), 맥주, 코냑, 럼, 보드카, 황주(소흥주), 사케 등이다.
 
술에 대한 미학은 누구에게나 있으며 필자 또한 그렇다. 술이 비즈니스의 세계로 오면, 단순한 알코올의 개념을 넘어선다. 비즈니스에서 상대방의 인격과 철학을 확인하는 기회가 된다. 
 
‘지상담병(紙上談兵)’이라는 말이 있다. 종이 위에 병법을 논한다는 말인데 즉, 이론만 능하고 실전에 약한 병통이라는 말이다. 술은 비즈니스에서 실전이다. 술에 대한 예의와 술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비즈니스 세계에선 문제가 될 수 있다.
 
홍콩에서 술과 함께했던 비즈니스
 
1993년 무렵, 필자의 첫 해외 출장지가 홍콩이었다. 그곳에서 인생 최초의 바이어를 만났다. 우락부락하게 생겼지만, 업무에 대하여서는 프로의 경지에 오른 분이었다. 그는 필자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도와주었다. 
 
그는 특히 술에 관해서는 이미 신선의 경지에 오른 분이었다. 필자와 비즈니스 미팅을 할 때면 코르크 마개가 부서질 정도로 오래된 브랜디를 꺼내 한잔 마시며 시작하곤 했다. 미팅 후 저녁식사 자리에선 함께 소흥주(紹興酒)를 마셨다. 뜨거운 물에 술병을 넣어 온도를 적당히 올려 마시는데, 그 맛이 대단했다. 그는 술을 마시면서 가격을 흥정하고 정보를 열심히 수집했다. 대단한 열정과 낭만을 가진 바이어였다. 
 
세월이 흘러 필자가 중국에 공장을 세우려 전국을 다니다가 멈추어 중국법인을 시작한 곳이 소흥(Shaoxing)이었고, 지금까지 이곳에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제는 현지 지역민이 됐다. 소흥주를 만드는 사장들과 막역한 친구가 되었고, 소흥주 소믈리에(sommelier) 경지에 이르렀다.
 
1990년대 초반과 중반 홍콩은 경기가 활화산처럼 좋았다. 중국의 중계무역항으로서의 역할과 세계의 무역의 중심지로서 대단한 번성을 누리고 있었다. 대다수 홍콩 무역업자들이 많은 부를 이룬 시기였다. 
 
당시 홍콩 바이어를 만나면 그들은 필자에게 항상 최상급 코냑과 저녁을 준비했고, 식사 후에는 최고급 벤츠로 호텔까지 배웅하여 주었다. 코냑은 귀하고 비싼 술이었고 홍콩에서 상류층 신분의 표시였다. 
 
그런데 1997년 홍콩의 주권 반환 이후 정치적 변화와 더불어 와인이 물밀 듯 들어왔다. 많은 바이어들이 열풍처럼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와인 마시는 것이 독특했다. 
 
생맥주잔에 와인 두 병을 붓고, 스프라이트(사이다 종류) 2병과 얼음, 레몬 몇 조각을 넣어 섞어 마시는 것이었다. 매우 달콤하고 술술 잘도 넘어갔다. 잊지 못할 와인 칵테일(?)이다. 
 
고급 와인을 사이다와 마시다니, 지금 생각하면 와인에 대한 예의가 없었던 것 같고, 너무 아깝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급 위스키에 맥주를 섞어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2020년대 중국에서는 규모가 큰 회사들이 전 세계 최고의 와이너리에서 와인을 직접 수입하여 손님들이 오면 대접을 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최근 중국의 음주 문화는 3가지로 분류되는 것 같다. 일반대중들과 젊은이들은 주로 맥주를 마시며, 상류층들은 와인이 대세이다. 동북3성이나 중서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바이주가 주류다. 
 
한국과 중국의 음주 문화 차이는 한 가지로 귀결된다. 중국인들은 술은 많이 마시지만 대취하거나 술 마시면서 싸움을 하지 않는다. 또한 거리에서 타인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례가 거의 없다. 밤을 새워 술 마시는 경우도 없다. 밤 11시경이면 무조건 자리에 일어나 귀가한다.
 
▲15년을 거래한 코스타리카 바이어들과 함께. <사진=필자 제공>
중남미와 아프리카의 음주 문화
 
중남미에서는 저녁시간이 매우 길다. 중요한 파티의 시작은 저녁 9시경인데 새벽 3시까지 이어기도 한다. 파티의 중요도나 초대하는 손님의 경중에 따라 다른데, 시간이 길어지면 환대를 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필자가 출장을 가면 친한 바이어들은 20여명 정도의 인원을 모아 성대한 파티를 열어준다. 순수한 마음이겠지만 과시를 좋아하는 그들에게는 좋은 행사이기도 하다. 
 
중앙아메리카에서는 음악과 춤이 많아 여기에 익숙하지 않은 필자로선 항상 괴롭지만, 남아메리카 지역의 파티는 바비큐와 와인을 동반한 식사가 대부분이어서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도 파티 문화가 있다. 경제력이 두둑한 바이어들은 고급호텔에 초대하여 만찬을 즐기는 경우가 많다. 반대의 경우에는 집으로 초대를 하여 현지음식을 대접한다. 
 
아프리카 음식은 먹기가 힘들어 어려움을 겪지만, 호텔에서는 서양식 음식이 일반적이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여하튼 파티나 만찬에 초대를 받는 것은 거래관계에 있어서 좋은 징조다. 
 
필자가 가장 맛있게 마셨던 술은 ‘럼’이다. 과테말라 출장 중에 맛을 본 과테말라산 사카바(Zacapa23)다. 풍미와 맛의 깊이가 좋고 가격도 매우 우수하다. 병의 허리에는 일일이 현지인들이 손으로 만든 야자수 나무 밴딩(Banding)이 되어 있어 쉽게 구분이 된다. 더 좋은 것은 숙취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러시아, 몽골, 카자흐스탄 등에서 생산하는, 면세점에서는 판매가 되지 않은 보드카들이다. 보드카를 추운 겨울에 일주일 정도 얼리거나 냉동고에 보관하여 슬러지 상태가 되었을 때 마시면 그 맛 또한 일품이다. 
 
현재 필자가 좋아하는 술은 단연코 와인이다. 1993년 홍콩 바이어들과 식사하면서 와인을 배웠는데, 중남미를 다니면서 이해도를 완성하게 되었다. 30여 년 동안 마시다 보니 와인 라벨만 보고도 대략 맛이 있는지 없는지 구분할 수 있다. 
 
최근에는 아르헨티나, 칠레, 미국산 와인을 즐긴다. 가격도 저렴하고 품질도 우수하다. 유럽산 중에서는 이탈리아산이나 스페인산을 주로 마신다. 가성비가 매우 좋다. 
 
바이어를 초대할 경우 와인을 접대
 
외국에서는 바이어를 식사 자리에 초대할 경우 필히 좋은 와인을 준비한다. 만약 와인을 잘 몰라, 혹은 비용을 이유로 저렴한 와인을 선택했고 맛이 형편없다면 그 날 초대의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좋은 와인을 준비했다면 바이어는 매우 만족할 것이고 그 만족감은 거래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므로 가능한 술에 대한 공부도 필요하다. 
 
한국인 지인 중에 본인이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식사자리에 와인 한 병 없이 바이어와 식사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낀 적이 있다. 상대의 취향은 고려하지도 않고 어떻게 글로벌 비즈니스를 할 수 있겠는가.
 
필자가 경험한 음주 문화 중 엄격하지만 매우 힘들었던 사례가 있다. 필자의 공장이 있는 중국 절강성 소흥(Shaoxing)은 옛 월나라의 수도였다. 소흥주로도 유명하지만 루쉰과 주은래의 고향이기도 하다. 
 
상하이 공항에서 비행기 타는 사람을 분석하면 상하이 사람들이 아니라 소흥, 항저우, 온저우 사람들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그만큼 성공한 사람들과 부자들이 많다. 소흥의 주법은 대단하며 절도가 있다. 
 
식사를 하기 전 빈속에 술부터 마시는 경우가 많은데, 규칙이 매우 무섭다. 식사를 9인이 같이 한다고 하면 8인의 손님들에게 술을 일일이 권하는데, 필히 각각의 사람들에게 가득채운 술 한 잔을 권하고 본인도 다 마셔야 한다. 
 
반 잔을 마시면 예의가 아니다. 결국 빈 속에 8잔을 마셔야 하는데 쉴 새 없이 8명에게 자기소개와 안부까지 전언하며 10여 분 내에 마무리를 한다. 매우 어렵고 위험한 주법이지만 다들 항상 그렇게 한다. 필자는 최대 15명과 식사를 하면서 예(?)를 다하느라 고생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시작한 후에는 더 마시라고 강권하지 않는다.  
 
탈무드에 ‘술 마시는 시간을 낭비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 시간에 당신의 마음은 쉬고 있다’라는 말이 있다. 
 
술을 잘 다루면 건강에도 좋다. 다만 술은 마음이 풍성한 사람에게는 보약이지만 술로써 이익을 취하려 하는 사람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술은 술이므로 그 가치를 잘 향유하는 것이 좋다. <다음 호에 계속>
 
▲정병도 사장은 1999년 4월 인조피혁제조 및 바닥재 수출회사인 웰마크㈜를 창업한 이후 경쟁기업들이 주목하지 않던 아프리카, 중남미 시장을 성공적으로 개척해 주목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지구 60바퀴를 돌 만큼의 항공 마일리지를 쌓으며 ‘발로 뛰는’ 해외마케팅을 실천했다.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경기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공부했고 고려대학교에서 국제경영석사 과정을, 청주대학교 국제통상 박사과정에서 이문화 협상(CROSS CULTURE NEGOTIATION)을 공부했다. 저서로 ‘마지막 시장-아프리카&중남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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