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산되는 베트남의 도박 문화

kimswed 2020.07.11 17:10 조회 수 : 141

정부, 골프장 내기 금지령까지 내려
사회주의 원칙상 도박은 불법
만연한 '뒷돈' 문화, 손 쉽게 번 돈 도박 확산에 기름
경마,축구 내기 등 스포츠 베팅 합법화 움직임도
코로나19로 위축된 관광산업 부활 명분
 "50만동 다발을 물 쓰듯"…확산되는 베트남의 도박 문화 [인사이드 베트남]

 

‘스윙 포 비즈니스(swing for business)’ 베트남에서 골프를 지칭할 때 쓰는 표현이다. 신체 단련이나 매너를 위한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를 위한 것이라니,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베트남 사람들의 직설적인 표현 방식에 적잖이 놀랐다. 잔디밭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설혹 스포츠 정신에 어긋나더라도 용인된다는 의미여서다.

베트남에서 골프는 상류층들의 사교 문화로 시작됐다. 1990년대에 하노이 북쪽 동모라는 지역의 호숫가에 첫 번째 골프클럽이 개장한 이래, 하노이의 내로라하는 이들이 하노이 유일의 ‘하노이골프클럽’의 멤버였다. 클럽 구성원은 정관계 및 재계의 주요 인사들을 망라했다. 2010년대 들어 베트남 경제가 아시아를 휩쓸었던 외환위기에서 벗어나 부활의 기지개를 켜자 골프장도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베트남 전역에 골프장으로 허가를 받은 프로젝트가 약 260건에 달했다. 그나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고 부동산 시장이 타격을 받으면서 정부로부터 허가장을 받은 골프장 프로젝트는 90건 정도로 축소됐다. 

골프가 상류층들의 사교 모임으로 얼마나 활성화돼 있는 지는 매년 개최되는 ‘그들만의 리그’의 면면만 봐도 알 수 있다. 매년 6월 초에 열리는 ‘12간지(干支) 경기’가 대표적이다. 12개 띠별 대항전인데 전국 규모로 열린다. 각 띠를 대표하는 강자들이 모여서 자웅을 겨루는 셈이다. 올해는 84년생 개띠가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다고 한다. 나이를 중시해 띠별로 모임을 가지는 베트남 특유의 문화를 반영한 경기다. 전국 클럽대항전도 얼마 전 성료됐다. 1990년대에 비해 요즘은 골프를 매개로 한 사교 클럽이 워낙 많아져서 그들만의 리그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 중에서도 ‘G7’이라 불리는 클럽이 가장 유명하다. 고위급 인사들이 대거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골프 문화가 비즈니스와 사교용으로 정착되다보니, 50만동(약 2만5000원)짜리 다발을 주고받으며 내기를 하는 모습은 골프장의 흔한 풍경이 돼 버렸다. 베트남의 부자들 중에선 지갑 없이 현금만 들고 다니는 이들이 꽤 많다. 50만동 지폐를 두툼하게 고무줄로 묶어서 사용하는데 골프장에서 수천만동을 내기로 쓰는 일도 허다하다. 워낙 내기를 즐기다보니, 경기 방식도 굉장히 엄격하다. ‘PGA 룰’은 기본이고, 베트남식 내기 룰까지 더해서 최대한 ‘내기의 긴장감’을 높인다. 예컨대 Par3 홀과 Par5 홀에선 각각 니어리스트(nearest)와 롱기스트(longest)를 뽑는데 만일 ‘니어’나 ‘롱기’ 후보가 파(Par)를 잡지 못하면 벌금을 내는 식이다. 게임 방식도 굉장히 복잡하다. 4명이 팀을 이뤄 18홀을 돌면 보통 3~4개의 게임이 동시에 진행된다. 골프장에서 이뤄지는 내기가 얼마나 지독했던지 정부는 지난달 15일부터 골프장에서의 내기를 엄격히 금지시켰다. ‘고위 공직자 중 한 명이 골프장 내기에서 돈을 심하게 잃었나보다’라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정도로 과연 내기 금지령이 실효성을 가질 지는 의문이지만, 베트남에서 내기, 더 나아가 도박 문화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 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상류층 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도 도박 문화는 상당히 깊숙히 퍼져 있다. 골프장 캐디, 마사지, 유흥주점 등 고된 서비스 직종에 뛰어든 베트남 여성들은 대부분 남편이 도박에 빠져 폭력을 일삼다 이혼한 사연 하나쯤은 갖고 있다. 베트남 재무부에 따르면 베트남의 복권 시장 규모는 연간 30억 달러(약 3.2조원, 2015년) 이상이다. 한국의 로또 시장과 비슷하다. 1인당 GDP는 한국의 10분의 1 수준이지만, 로또는 비슷한 규모로 팔린다는 얘기다. 복권 한 장에 1만동(약 500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크기다. 지방별로 복권 사업자들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2014년 통계에서 이미 베트남 복권사업자는 총 63개 성시에 65개에 달했다. 2016년엔 말레이시아에서 해외 업체까지 진출했다. 사업자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다양한 방식을 적용한 새로운 유형의 복권도 등장하고 있다. 최고 당첨금액이 120억동(약 6억원)에 달할 정도다. 경마처럼 여러 숫자 조합 방식을 적용해 기존 복권보다 당첨액을 1500배 가량 높인 것도 나왔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도박은 죄악이다. 원칙상 도박 산업은 모두 불법이다. 중국도 마카오를 예외 지역으로 했을 뿐, 본토에선 도박을 금지하고 있다. 베트남 역시 국영기업들이 사업자인 로또를 제외하고 모든 도박은 불법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도박이 상당히 만연해 있다. 카지노만 해도 홍콩의 유명 업체인 태양성그룹이 다낭에서 대규모 ‘정켓(junket, 백화점의 임대매장과 비슷한 개념으로 카지노 운영자와 계약을 맺은 에이전트가 VIP 고객을 유치해 종합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운영 중이다. 중국과의 접경지대인 몽카이, 라오까이 등을 비롯해 캄보디아, 라오스 국경 지대에도 카지노 사업장이 여럿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경 지대의 카지노 사업장은 지하자금이 유통되는 통로로 활용된다는 게 정설이다. 캄보디아만해도 베트남계가 경찰청장을 지낼 정도로 베트남의 영향력이 강한 곳이다. 중국과의 접경지대엔 주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의 화교들이 카지노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의 도박 문화가 번성한 이유에 대해선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KOTRA 하노이 무역관은 2016년 11월에 ‘베트남은 지금 로또 열풍’이란 보고서를 내면서 복권에 관대한 문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내기 또는 도박을 불법활동으로 규정한 오늘날에도 판돈을 건 닭싸움, 소싸움 등이 단속 기관의 눈을 피해 성행하고 있다. 베트남은 예로부터 내기 형태의 놀이 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베트남은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서 경마장이 가장 일찍 들어선 곳이기도 하다. 1893년 사이공(현 호찌민)에 사이공경마협회가 결성되면서 공식적으로 경마 산업이 시작됐다. 프랑스 식민 지배자들이 그들의 유흥과 재원 마련을 위해 지은 것으로 유럽에서 경주마를 들여왔다고 한다. 사이공을 중심으로 한 남베트남이 북베트남에 패망한 1975년 문을 닫을 때까지 경마장은 상당한 호황을 누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베트남 사람들은 1990년대 중반 붕따우성에 그레이하운드 경주장이 들어서면서 경마에 대한 향수를 어느 정도 달랬다. 붕따우 경견장은 ‘보트 피플’ 중 한 명이었던 베트남계 호주인 사업가가 만들었다. 주말이면 가족 단위로 꽤 많은 사람들이 달리는 개(犬)들의 모습에 환호한다. 

뒷돈 문화와 연결 짓는 시각도 있다. 쉽게 번 돈을 쉽게 쓴다는 논리다. 골프장에서 내기를 하는 이들 중엔 공직자들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총리 월급이 채 100만원도 안 되는 나라에서 고위 공직자들이 수십채의 아파트와 전원 빌라를 소유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베트남 투자를 계획하던 한국인 사업가인 A씨는 “베트남의 제법 큰 도시에 투자하기 위해 한국 정부측 인사와 함께 갔는데 베트남측에서 사업비의 30%를 리베이트로 요구해 크게 당황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공직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들에게도 뒷돈 문화는 일종의 관행처럼 성행하고 있다. 대학에선 학생들이 중간고사를 앞두고 십시일반 돈을 거둬 교수에게 전달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뤄진다. ‘완장’을 찬 이들이 그들이 가진 일말의 권력을 행사하면서 뒷돈을 요구하는 건 베트남에 고착된 관행이다.

베트남 정부는 골프장 도박 금지령을 내리는 등 도박 문화의 확산을 막기 위해 나름 노력해왔다. 하지만 코로나19가 그간의 금지 기조를 완화시킬 가능성이 높아졌다. 침체 일로를 걷고 있는 관광산업을 부활시키기 위해 도박 산업을 마중물로 활용해야한다는 의견이 높아져서다. 지난달 23일엔 국회의원,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 카지노와 경마장 사업을 하고자 하는 사업가들이 모여 컨퍼런스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스포츠 베팅’을 합법화하면 수십억 달러가 국고에 회수되고, 코로나19 이후의 관광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업자들은 베트남관광청(VNAT)의 추산을 인용해 해외 관광객이 1회 방문당 평균 400~600달러를 지출하고 있는데 스포츠 베팅을 합법화하면 관광객의 지출액이 1000~1500달러로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베트남 정부의 관광 수입이 매년 최소 80억~150억달러씩 증가할 것이라는 게 사업자들의 논리다. 

베트남 정부의 스포츠 베팅 활성화 방안은 우리 기업과도 관계가 있다.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지난해에 하노이시는 시 외곽에 경마장을 건립하는 방안을 허가한 바 있다. 베트남 내 한인 기업인 참빛그룹의 이대봉 회장이 경마 사업과 관련한 라이선스를 받았다. 온라인 경매까지 가능한 라이선스로 알려져 있다. 베트남에서 경마 사업을 하겠다는 한국 기업은 참빛그룹 외에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막대한 투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결국 이대봉 회장이 ‘경마장 아이디어’를 최종적으로 거머쥐었다. 한국마사회 직원들도 하노이, 호찌민 등지에 제법 나와 있다. 스포츠 베팅 합법화가 현실화된다면 한국 기업이 베트남 경마장 부활을 이끌게 되는 셈이다. 베트남 기업들은 한국의 주도에 대항하기 위해 하노이 뿐만 아니라 호찌민, 달랏 등지에서 경마장을 만들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 최남단의 휴양지인 푸꾸억섬에 카지노가 들어설 가능성도 높다. 푸꾸억은 베트남에서 유일하게 코로나 카지노 등 내국인 출입이 허용된 카지노를 두 군데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푸꾸억에서 지척에 있는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 30개 가까운 대형 카지노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도박 산업이라는 관점에선 여전히 미개척지다. 중국의 ‘큰손’들은 시아누크빌의 카지노에서 엄청난 돈을 뿌린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가뜩이나 재정 수입이 줄어든 베트남 정부가 사회주의적 원칙과 재정 확충이라는 현실 중 어떤 선택을 내릴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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