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풍습 몽골전통혼례2

kimswed 2006.12.14 09:20 조회 수 : 2627 추천: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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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혼례복의 역사 
 

신부 혼례복은 혼인날 신랑과 신부가 마주서서 교배례를 거행할 때의 복장을 일컫는다.  [사례편람]의 혼례편에 옛날에는 혼례복에 염의를 착용하였는데 이것은 현의(玄衣)에 훈색단을 두른 것이라 하고, 조선조 중기에는 이러한 염의 아닌 홍장삼(紅長衫)이 속용되고 있다고 씌어 있다.

염의는 우리나라 사서에 '활옷'이라 설명하고 있다. [상방정례]에 보면 대군 부인의 가례 의복으로서 겹으로 지은 활의(豁衣)라는 옷이 나온다. 이것은 홍색 비단에 수를 놓은 옷이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혼례 신부가 백화의 포를 입는다 하고, 그 모습은 활수의 포의에다 대대를 띠었고 화제(중국제)에서 온 것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활옷은 화의로도 표현되었고 또 화려한 꽃무늬를 수놓은 데서 화포로 표현되기도 했다.  화포- 화의는 발음상 '화 ㄹ 옷'이 되는 가운데 다시 한자화하여 [상방정례]의 소위 활의가 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활옷)

(활옷 앞과 뒤)

                

( 활옷입은 신부 )

활옷(闊衣)

원래는 궁중에서 의식이 있을 때에 왕비가 입던 대례복이었으나 후에는 서민의 혼례복으로도 사용되었다. 활옷은 홍색비단에 청색으로 안을 받쳐서 만들었는데 이는 청색(여성)과 홍색(남성)의 화합을 의미하는 것이다.
홍색바탕 천에 숭고함과 부귀와 장수를 상징하는 연꽃 모란꽃 십장생 등을 가득히 수놓아 만든 활옷은 앞길이 짧고 뒷길이 긴 모양이며, 소매끝에는 색동을 대고 흰색 한삼을 덧붙였다. 

활옷에는 다홍색 바탕에 모란꽃, 연꽃 등과 더불어 장수(長壽)와 길복(吉福)을 의미하는 물결,바위,불로초,어미봉,새끼봉,호랑나비 등의 수 외에 '二姓之合', '萬福之源', '壽如山,富如海' 와 같은 글씨를 수놓았으며, 소맷부리에 하남이 달려 있다. 이 활옷은 황색 삼회장 저고리와 다홍 대란치마 위에 입었으며 대대를 띠었다.

수식(首飾)에는 용잠을 꽂고 큰댕기(도투락댕기)와 앞댕기를 드리웠는데, 큰댕기는 뒷댕기로서 주렴이라고도 한다. 이 뒷댕기는 검은 자주 비단으로 만들어 너비 10cm 정도에 길이는 치마 길이보다 약간 짧고 두 갈래로 되어 있는데, 이에는 찬란한 금박을 하고 위에는 석웅황이나 옥판으르 달고 밑에도 밀화나 금패의 매미 다섯 마리 정도를 달아 두 갈래 진 댕기를 연결해 주고 있었다.

 

큰댕기가 머리 위를 덮어 뒤에 매단 데 비하여 앞댕기는 앞에 드리우는 댕기로서 큰 비녀 양쪽 여유분에 감아 적당한 길이로 맞추어 앞 양 어깨 위로 드리웠다.  앞댕기와 뒷댕기는 혼례복에서는 짝을 이루는 것이었다.  이 앞댕기도 검은 자주색이 원칙으로 금박을 하였고 양끝에는 진주 또는 산호주 등의 장식을 하였다.  머리 위에는 칠보 화관을 썼다.   

활옷은 상류계급에서 착용한 것이고 일반인은 활옷 대신에 원삼을 입었다. 원삼도 활옷과 같이 활수의 포의에 대대를 갖춘 조선조 여인의 일반 예복이었는데, 궁중에서는 황후 황원삼, 왕비, 홍원삼, 비빈 자적원삼, 공주/옹주 초록원삼이었고, 반가에서는 초록원삼이었다.

 

        

( 자적원삼 )

(황원삼)

 

원삼 (圓衫)

고려시대부터 대례복으로 궁중여인들과 신부의 웃옷으로 사용되어 왔다.  황후는 황색, 왕비는 홍색, 비빈은 자색, 공주나 옹주는 녹색원삼을 입었는데, 그 중에서 녹색원삼이 서민층의 혼례식에 사용되었다.  민간 원삼에는 금박을 하지 않았다.

원삼은 각기 그 색에 따라 깃도 같은 색이었으며, 소매에는 다홍과 황색의 양색색동이 달렸고, 소맷부리에는 한삼이 달려 있었다.  거기에 다홍색 대대를 띠었고, 계급에 따라 그 금박 문양이 달랐으니 황원삼에는 용문(龍紋), 홍원삼/자적원삼에는 봉문(鳳紋), 초록원삼에는 화문(花紋)이었다.  이의 수식은 궁중 의식에서는 큰머리, 어여머리로 꾸미기도 하였으나 족두리를 쓰는 것이 항례였다.  이러한 원삼차림은 신랑의 사모관대와 같이 서민층에서 신부용 혼례복으로 그 사용이 허용되었다. 

(원삼을 입은 신부)

대대(大帶)- 홍색 공단에 심을 넣어 만들어 금박무늬를 찍는다. 활옷이나 원삼을 입은 뒤 앞가슴께에 대대의 중앙이 오도록 대고 양쪽으로 돌려 뒤에서 묶어 늘어뜨린다.

(원삼,대대,앞댕기,도투락댕기)

앞댕기- 쪽 찐 비녀에 감아 드리움으로써 족두리나 화관에서 어깨를 거쳐 웃옷까지로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는 댕기로 검은 자주색 비단에 꽃무늬를 금박으로 중앙과 양끝에 찍고 끝에는 구슬을 10개 정도 궤어 달았다.

도투락댕기- 활옷이나 원삼을 입을 때에 화관이나 족두리에 맞춰 머리뒤로 늘어뜨리는 큰댕기로 검은 자주색 비단에 자수와 칠보로 화려하게 장식하여 만들었다.  지방에 따라서는 오색실을 붙이기도 하였다.

스란치마/대란치마

스란치마는 소례복에 입고, 대란치마는 대례복에 입던 치마이다.  금박무늬가 찍힌 천을 덧댄 스란단을 한 층 뭍인 것이 스란치마리고, 두 층 붙인 것이 대란치마이다.  가례나 길례 때는 속에도 남색 스란치마를 입었다.

 

(대란치마)

 

족두리

원래 몽고에서 여인들이 외출할 때에 쓰던 일종의 모자였으나, 고려말 우리나라에 들어온 뒤로 모양이 왜소해져 머리장식품으로 변하였다.

영조 때의 가발금지령에 따라 왕비나 세자빈이 칠보족두리를 쓰면서부터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는데, 궁중이나 양반집에서 의식용으로 소례복에 족두리를 썼다.  

조선조 중엽까지 부녀자의 머리형태는 얹은머리'였는데, 영정조에 이르러 얹은머리의 금지와 더불어 쪽찐머리로 개혁하고 족두리를 쓰게 되었다.  사치를 방지하기 위하여 족두리는 모두 흑색에 장식을 제한하였다.

 

 

당의(唐衣)

왕비나 세자비, 공주 및 외명부 등이 소례복으로 착용하고, 양반집 여인들은 대례복으로 착용하였다.

녹색비단에 홍색 단감을 대거나, 자색비단에 분홍색 안을 대어 만든 겹옷으로 소매가 좁고 겨드랑이 밑에서부터 유연한 곡선으로 트이고 밑도련은 반달 모양을 이루고 있다.

왕실에서는 당의에 금박을 찍어 입었으나 반가에서는 무늬없이 만들었다.  당의를 입을 경우 머리에는 화관을 썼다.

 

 

화관(花冠)

활옷이나 당의를 입을 때에 사용되었고, 일반 서민들은 혼례때만 사용이 허용되었다.  여러 가지 보석으로 장식함으로써 낭비가 매우 컸다. 

 

 

(족두리와 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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