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나라테크

kimswed 2016.05.25 08:23 조회 수 :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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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할까? 참 많은 고민을 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무역이 좋아서 우리 회사에 근무하던많은 직원들을 이대로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만큼 잘 할 자신은 없었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짧은 인생이 왠지 모르게 오늘을 위해서 준비되어온 시간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24살의 어린 나이에 ㈜나라테크의 대표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농기계 부품, 중장비 부품, 자동판매기 부품을 일본으로 수출하는 회사입니다.

 

24살에 중소부품업체 승계
1994년 초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중학교 진학을 앞둔 시기였습니다. 어느 날 저녁 아버지께서 저에게 여권과 항공권을 주시면서 “내일부터 5일간 일본 출장을 갈 예정인데, 너도 같이 가는 거야”라고 하셨습니다. 일본어는 전혀 말하지도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아버지랑 출장을 다닐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더 앞섰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와의 출장을 통해서 저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상당히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아버지가 너무나도 멋있어 보였으며,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중에 커서 아버지처럼 비행기를 타고 해외를 다니는 멋진 사장이 되고 싶다고 말씀드렸던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 합니다. 그 때 아버지께서 저를 데리고 가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 무역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 출장이 계기가 되어 일본이라는 나라와 무역에 계속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012년 일본의 교토대학에 교환 학생을 다녀오게 되었으며, 2014년에는 한국무역협회가 주관하는 ‘청년무역 인력양성 프로그램’의 7기 교육생으로 무역협회에서 2개월간 공부를 하면서 무역에 대해서 좀 더 깊이 배우고, 일본 업체에 파견되어 현지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무역아카데미 청년무역 프로그램 거쳐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수년간 투병생활을 했기 때문에 회사의 경영 상태는 많이 좋지 않았습니다. 매출의 99%가 수출이었던 회사였기에 회사를 회생시키기 위해서는 수출을 늘리는 것밖에 길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실전은 달랐습니다. 그간 많은 경험을 하였지만 지금도 회사의 대표라는 자리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먼저 그동안 우리 회사를 믿고 거래해 주신 고객들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에는 대부분 한 번 거래하기가 어렵지만, 거래를 하기 시작하면 10~20년 거래를 하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거래처도 잘 바꾸지 않는 기업이 많습니다. 우리가 거래하는 업체 중에서 설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거래하는 곳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후계자가 없거나, 회사의 비전이 없다고 생각될 때에는 거래처를 변경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회사와 거래해준 기존 고객들에게 저와 회사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서 한달 동안 일본의 고객 모두를 일일이 만나 인사하고, 회사의 비전과 목표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저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거나, 능력에 대해서 의심을 하는 거래처도 있었습니다. 그런 거래처는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찾아가서 지속적인 거래 요청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다행히 기존 고객들 모두 우리 회사와의 인연을 계속 맺어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항상 신세지고 있습니다”
일본어에는 ‘이쯔모 오세와니 나리마스’(いつもお世話になります)라는 말이 있습니다. 항상 신세를 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e-메일을 쓸 때 처음 문장으로 잘 쓰이며, 거래처 사람을 만나서 인사할 때나, 전화를 걸었을 때의 첫 인사말 등 다양하게 사용이 되는 말입니다. 우리 회사에 주문을 했던 기존 고객들에게 큰 신세를 졌고 후계자가 바뀐 상황에서도 거래를 지속해 주는 것이 너무나도 고마웠습니다. 이렇게 회사를 믿어준 고객들을 위해서는 어떻게든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신용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인생의 롤 모델인 청쿵그룹의 리카싱 회장은 20살에 사업을 하였고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은 22살에 사업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두 분의 공통점은 어린 나이에 사업을 시작하였지만 신용을 목숨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겼다는 것이라 합니다. 특히, 외국과의 무역거래에서 신용을 잃고 거래를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문에 대해 납기를 어기는 일이 절대 없도록 하였고, 만약에 늦어질 것 같으면 손해를 보더라도 항공으로 제품을 보내거나 직접 들고 가서 고객이 원하는 날짜에는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품질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검사한 후 출하시켜 고객들이 우리 제품을 믿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고객들에게 다양한 VE/VA(비용대비 가치 효용성)를 제시하여 구매 코스트의 상승을 막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에 따라 고객들이 우리 회사를 믿고 점차 더 많은 발주를 해주었습니다. 다른 거래처들도 소개시켜 주시기도 하여 영업을 하지 않아도 신규 제품을 수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례도 생겨나 매출이 점차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납기·가격으로 신뢰 쌓아
한번은 아주 큰 실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신규 거래처의 담당자로부터 5년간 7억 엔 정도의 인콰이어리를 받게 되었습니다. 금액이 큰 건이라 어떻게든 수주하고 싶은 마음에 담당자에게 이 건에 대해서 귀사의 부장님이나 사장님과 미팅을 하고 싶다고 연락을 하였습니다. 며칠 뒤 담당자로부터 우리 회사에 보낸 인콰이어리를 취소하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너무 황당하였지만 뭔가 잘못한 게 있으니 저렇게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당장 일본에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들어보았습니다. 그 결과 일본의 회사는 직급이 낮더라도 담당자에게 많은 권한을 주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부장이나, 사장이랑 얘기를 하려드는 부분에 대해 기분이 나빠서 그랬다고 하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담당자에게 예의를 다 갖추고 사과를 하였습니다. 일본까지 와서 사과를 하는 성의를 봐서 용서를 해주었고 다시 인콰이어리의 기회를 받고 수주도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담당자와 너무나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이제는 저에게 따뜻한 조언과 도움을 주는 조력자 되어주었습니다. 그 담당자가 알려준 팁 중 하나는 거래처에 처음으로 방문할 때 담당자만큼 중요한 사람이 두 사람이 더 있다는 것입니다. 정문에서 지키는 경비원과 커피나 차를 가져다주는 여직원이라고 합니다. 담당자들이 종종 경비원이나 여직원에게 손님의 태도나 인상에 대해서 물어보기 때문에 이 사람들한테도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일본 비즈니스는 담당자가 좌우
일본과의 무역에서는 고객관리가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거래처가 국내라면 자주 가볼 수 있지만 외국이다 보니 자주 가기도 어려울뿐더러 비용적인 부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는 속담처럼 일본과의 거래에서는 이런 부분이 더욱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간사이지방과 큐슈지방 사람들의 경우에는 이러한 관계 맺음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것 같습니다. 영업을 가서 만났던 사람들이나 전시회에 갔던 사람들을 만난 뒤 처음에는 전화도 많이 하고 메일도 많이 보내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점점 연락도 안하게 되어서 고객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나름대로 원칙을 만든 것이 20-40-90-1 원칙입니다. 한 번 만난 고객이 나의 진정한 고객이 될 때까지 20일에 한 번은 메일로 안부를 묻고, 40일에 한 번은 전화를 걸어서 잘 있는지 목소리를 확인하고, 90일에 한 번은 고객을 직접 찾아가고, 1년에 한 번은 연하장을 보내는 영업 원칙입니다.

 

정기적 메일-전화-방문으로 바이어 관리
처음 영업을 할 때는 우리 제품을 써달라고 부탁하듯이 영업을 하였지만, 인맥이 넓어지고 고객들을 가족이나 친척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니 그들이 오히려 더 챙겨주려 합니다. 일본을 방문할 때는 주문서 한 장, 인콰이어리 한 장이라도 쥐어서 보내려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은 일본에 방문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가 되었지만 매주 가는 일본 출장길이 설레고 기대됩니다.


최근에는 엔저로 인해서 일본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아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입국심사를 받는 데만 1시간 이상이 걸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며 특히 간사이공항의 입국심사가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오전 비행기를 타고 가도 공항에서 나올 때는 점심시간이 되는 때가 있습니다. 한국무역협회에서 회원사를 대상으로 발행해주는 APEC 기업인 여행카드(ABTC)가 제겐 매우 유용합니다. 이 카드를 발급받게 되면 입국심사 전용통로가 있어 입국시간을 대폭으로 단축시킬 수가 있으며 출장의 효율도 높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중국에 갑자기 출장을 가야 하는 경우에 비자(VISA)를 발급받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ABTC에 중국이 등록이 되어 있으면 VISA없이도 당일 출국이 가능합니다.

 

신속한 납품위해 일본에 15개 물류창고
일본에 대한 수출 금액이 매년 커지기는 하였지만 영업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 회사가 수출하는 곳이 대부분 OEM(주문자 상표부착 생산) 공장인데 물량이 많아지면서 고객들로부터 거래하는 물류업체에 납품을 해달라는 요구를 받는 사례가 많아졌습니다. 수출은 컨테이너 단위로 하는데 그것을 보관할 곳이 없고, JIT(Just-In-Time) 시스템 도입으로 필요한 물량만 공급받기를 원하는 고객들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유통라인을 정비하여, OEM 업체의 공장 1km 이내에 물류창고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비용이 들었지만 반전이 생긴 것이 일본 OEM으로부터 다른 거래처 제품들도 우리 창고에 보관했다가 납품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어, 매출이 저절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우리 회사는 현재 일본 각지에 15개(관동지방 7개소, 관서지방 7개소, 큐슈지방 1개소)의 물류창고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터득한 노하우를 가지고 중국, 태국, 인도네시아, 인도 등에 진출한 OEM 업체들을 위한 현지 물류창고 확보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이 구축되면 태국과 중국에 있는 건설기계 메이커와 농기계 메이커에 보다 신속하게 부품을 공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10년 동안 수출 한 번 잘해서 어떻게든 아버지와 직원들이 피땀 흘려 이끌어 온 회사를 살려보자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며 달려왔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일본에 데리고 가지 않으셨다면 지금의 회사도 없었을 것이고 저도 이 일을 하고 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2015년 1천만 달러 수출탑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았던 초창기인 1996년 무역의 날에 아버지께서 받으신 100만 달러 수출탑을 보면서 내가 과연 이것보다는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하면서 걱정한 적이 많았는데 벌써 300만 달러, 500만 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하였고, 2015년 무역의 날에는 1,000만 달러 수출탑을 수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매출도 10년 동안 10배 이상 늘게 되었습니다. 일본에만 수출하던 회사가 이제는 미국, 중국, 유럽, 동남아사아로 시장 다변화를 이루었고 판매 아이템들도 많아졌습니다. 주변에서 도와주신 많은 고객들과 직원들에게 너무나도 감사할 뿐입니다.


저는 올해 아들과 함께 같이 갈 일본 출장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21년 전 아버지가 나에게 심어주신 무역인의 꿈이라는 씨앗을 이제는 우리 아들에게도 심어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또 한 명의 리틀 무역인이 자라 청년 무역인으로 성장해가는 것을 응원해 볼 작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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