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프리카의 중심 에티오피아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나무 하나 없는 드넓은 초원이 보인다. 공항에 내리면 귀가 아프고 며칠 동안 힘이 든다. 술이라도 한 잔 마시면 폭탄주를 마신 것처럼 잘 취한다. 사람들은 매우 친절하고 상냥하다. 한국처럼 독자적인 문자와 언어를 가졌고, 유럽 열강에 종속되지 않은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금은 경제 상황이 매우 힘들고 어렵지만, 미래를 위한 그들의 도전을 느낄 수 있다. 바로 동아프리카 중심국가 에티오피아다. 
 
필자가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이 출장을 많이 다녔던 나라다. 아디스아바바공항을 거쳐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다니면 매우 효과적인 일정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필자에게 아프리카 시장 도전에 큰 영감과 좋은 결과를 준 곳이기도 하다. 공을 많이 들였고 고생도 많이 한, 아프리카 교두보로서 가치가 있는 시장이다.
 
필자가 에티오피아에 진출한지는 이미 12년이 넘었다. 
 
초기 몇 년 동안은 오더가 적어 낙심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 시장에서 1위를 하겠다는 신념으로 1년에 13번이나 출장을 다녔다. 
 
직원들과 교대로 다니면서 집중적으로 바이어 방문과 마케팅을 하여 보니 몇 년 사이 업계 선두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인도, 중국, 한국 업체들의 경쟁을 모두 물리쳤다. 
 
불광불급(不狂不及), 그러니까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 딱 맞아 떨어진다. 필자는 에티오피아에 미쳤기 때문에 마침내 목표에 도달했다.
 
어려운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던 이유
 
필자의 회사가 에티오피아 시장에서 최고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몇 가지 있었다. 
 
첫째는, 가격 경쟁력이었다. 필자의 회사는 중국에 공장을 두고 있으므로 최저가로 에티오피아 시장을 공략했다. 그리고 제품 인지도가 어느 정도 형성되었을 때 한국에서 만든 고가 제품을 판매하는 전략을 썼다. 
 
이 시장은 항상 제품의 질보다는 가격을 우선했기 때문에 최저 가격으로 밀어붙여서 경쟁자들이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쉽지 않은 전략이지만, 아프리카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려면 가격은 매우 중요하다. 
 
가격이 저렴하다고 해서 품질도 떨어지면 바이어 구매가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품질유지도 병행했다.
 
둘째, 결제 방식의 어려움을 극복했다는 점이다. 
 
글로벌 무역에서는 다양한 결제 방식이 존재하지만, 에티오피아에서는 신용장(L/C)과 서류인도방식(CAD)이 주로 사용됐다. 그러나 두 방식 모두 매우 난해하고 골치가 아프다. 일반적인 L/C나 CAD라고 생각하면 큰 문제가 발생한다.
 
문제란 이런 것이다. 
 
L/C로 수출을 이행한 후 통지은행(ADVISING BANK)에서 추심을 하는데, 일반적으로는 일주일이면 모든 은행업무가 끝나지만 에티오피아와의 거래에서는 상황이 매우 다르다. 
 
이 나라는 외환보유고가 항상 바닥이어서 국제거래에서 대금지연이 만연해 있다. 
 
실제로 바이어가 이미 대금을 개설은행(OPENING BANK)에 지불하고 선사에서 물건을 찾아갔지만, 통지은행으로 돈이 입금이 안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 과정이 지연되면 3개월에서 6개월까지 수출대금을 못 받는다. 자금이 부족한 회사는 상당한 위험에 노출된다. 
 
CAD도 마찬가지다. 수출을 이행을 한 후 서류를 매입은행에서 개설은행으로 보내는 간단한 방법이지만, 바이어가 시장이 좋지 않으면 서류를 서둘러 인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수출이행 후 최대 12개월까지 대금을 받지 못할 수 있다. 설령 물품대금을 은행에 지불하고 바이어가 물건을 찾아가도 은행에서 외화가 부족하면 또 몇 개월이 걸린다. 
 
필자의 경우에는 보통 수출대금 회수를 6개월에서 8개월 정도로 예상하고 업무를 진행했다. 
 
에티오피아 바이어 중 E기업은 기억에 오래 남아 있다. CAD로 110만 달러가량의 오더를 받아 선적을 했는데 13개월 동안 물건을 찾아가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여러 차례 출장을 가서 어르고 달래 대금을 받은 적이 있다. 고통이 컸지만 그 덕분에 사람 보는 법에 대해 공부하게 되었다.
 
필자는 이러한 문제를 극복해 가면서, 이렇게 위험하고 어려운 시장에 누가 들어오겠는가 하는 ‘우문’이 들었다. 이어 경쟁자들이 들어오기 쉽지 않은 시장이므로 장기적으로 위험관리만 잘한다면 거래를 지속할 수 있다는 ‘현답’에 도달했다. 
 
결국 어려운 결제 방식으로 인해 경쟁자들이 많지 않은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에티오피아 시장은 당분간 외환보유고 부족으로 어려움이 많겠지만, 해결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궁즉통(窮卽通)’이라는 말이 있다. 궁하면 통한다. 포기하지 않으면 방법은 솟아나올 것이다. 
 
▲필자의 회사가 참가한 아프리카 박람회장 부스에 에티오피아의 대학생들이 견학을 왔다. <사진=필자 제공>
에티오피아 시장의 특성과 상관습
 
어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지만 에티오피아 역시 비즈니스에 성공하려면 시장의 특성과 관습을 이해해야 한다.
 
첫째, 상대의 종교에 따라 협상의 방식과 폭이 달라져야 한다. 
 
에티오피아에는 정교와 이슬람이 비슷한 비율(에티오피아 정교 43.5%, 이슬람교 34%)로 존재하는데 협상 상대의 종교에 따라 다르게 응대해야 한다. 대체로 에티오피아 정교 신자는 협상 횟수가 적고 가격의 협상 폭이 크지 않은 반면 무슬림들의 경우 협상 횟수는 매우 많고 가격 폭이 커서 중동인들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는 게 정설이다.
 
둘째, 에티오피아인들은 다른 아프리카인들에 비해 순수한 면이 있으며, 대개 약속을 잘 이행한다. 
 
셋째, 거래 관계에 있어서 의리 또는 인간관계를 중시한다. 
 
넷째, 자국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크다. 이 나라 사람들은 오랜 역사와 인류의 기원설에 더해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열강의 침략에 맞서 자주권을 가졌다는 점에 대한 자긍심이 매우 크다. 
 
다섯째, 최근 해외유학을 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창업의 바람이 불고 있다. 
 
여섯째, 동양인들과 예의범절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拜人事, Greeting), 어른을 존경(長幼有序)하는 그들을 보면 매우 놀라게 된다. 
 
일곱째, 중국인과 인도인들에 의해 로컬 시장이 점령되지 않는 몇 안 되는 나라다. 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가 화교나 인도 상인들에 의해 많이 잠식되어 가지만, 에티오피아는 국가의 정책으로 에티오피아인들이 잘 유지하고 있다.
 
에티오피아는 정이 많이 가는 나라다. 한국인들을 환대하고 한국 정부나 구호단체 등에 항상 고마워한다. 
 
에티오피아는 한국 전쟁 때 참전해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준 나라다. 우리로서는 보은을 해야 한다. 
 
필자의 고향인 화천에서는 오래 전부터 에티오피아에 많은 기부를 해 왔다. 군민(郡民)과 군인(軍人)의 인구가 각각 절반 정도로 대략 6만여 명 정도인데 십시일반으로 12년 넘게 매년 1억2000만 원 정도를 참전용사 자손들에게 장학금이나 생활비로 지원해 주고 있어 마음이 따뜻하다. 
 
꿈을 향해 달리는 에티오피아인들
 
얼마 전 BTV에서 얀 필립 웨일 감독의 ‘꿈을 향해 달리다(2019)’라는 영화를 보았다. 에티오피아 영화다. 원제목은 ‘Running Against the Wind’이다. 
 
에티오피아 외딴 시골, 마라톤 선수를 꿈꾸는 아브디와 사진작가가 되고 싶은 솔로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마라톤은 에티오피아에서 인기 스포츠 종목이고 사진작가는 또 다른 인기 직업이다. 영화의 완성도가 꽤 높고, 아프리카를 이해하는데 매우 좋은 영화다. 
 
영화 속 마라톤 감독의 외침과 그의 구호를 따라 하는 선수들이 생각이 난다. “나는 거리 출신이다. 원하는 것은 꼭 이룬다.” 함축적인 젊은이들의 목표이자 도전일 것이다.
 
사진작가가 된 아브디는 첫 전시회의 이름을 ‘세상을 향한 이중적 접근’으로 정했다. 아브디가 바라본 세상은 이분법적인 불합리에 둘러 싸여 있으며, 기득권층과 다른 것들을 사진으로 보여 준다. 에티오피아의 현실을 대변한 것이다. 
 
영화 속 촬영 장소들이 평소에 많이 가 보았던 곳이라 반가웠다. 필자의 어린 시절이 떠오르고 고향친구들이 오버랩이 되었다.
 
필자의 꿈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그들에게 조그마한 도서관을 지어 주는 것이다. 많은 에티오피아 친구들의 간절한 요청이기도 하다. 열심히 노력하여 그 뜻을 이루고 싶다. 
 
조그마한 부자는 돈을 쓰지 않고 벌지만, 큰 부자는 돈을 쓰면서 번다는 말이 있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이야말로 가치가 있는 일 아니겠는가. <다음호에 계속>
 
 
▲정병도 사장은 1999년 4월 인조피혁제조 및 바닥재 수출회사인 웰마크㈜를 창업한 이후 경쟁기업들이 주목하지 않던 아프리카, 중남미 시장을 성공적으로 개척해 주목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지구 60바퀴를 돌 만큼의 항공 마일리지를 쌓으며 ‘발로 뛰는’ 해외마케팅을 실천했다.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경기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공부했고 고려대학교에서 국제경영석사 과정을, 청주대학교 국제통상 박사과정에서 이문화 협상(CROSS CULTURE NEGOTIATION)을 공부했다. 저서로 ‘마지막 시장-아프리카&중남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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