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우드(Bollywood)’에 부는 변화의 바람
 
 
●인도 국민통합의 3축 : 영어, 크리켓 그리고 발리우드 영화 = 지폐에 새겨 넣는 15개 언어, 만 개가 넘는 카스트, 다양한 종교 등 거의 모든 것이 얽히고설킨 인도아대륙의 복잡함과 다양성은 유사 이래 자주통일을 해 본 경험이 없는 이 대륙 역사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1947년 인도 독립 이후 70여 년이 넘는 세월은 국부 간디가 열망했던 근대국가 인도가 그 실체를 조금씩 갖추어 가는 기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해서 근대국가 인도에는 인도, 인도인이란 정체성을 가져다줄 매개체 또는 촉매제가 어느 나라보다도 필요한데, 이 역할을 하는 것이 영어, 크리켓 그리고 발리우드로 대표되는 인도 영화다. 
 
인도의 영어 사용 인구 비중은 2010년 조사 기준 전인구의 10%(교과 반영으로 20% 가까이 늘었을 것이라는 추정도 많음)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도에서 영어는 지배계층의 언어이자 출세의 사다리 역할을 한다. 북서부 카슈미르부터 동양계 민족의 북동부 7개 주, 그리고 남부 드라비다계의 타밀나두 모두 언어는 다르나 지배층이나 여론 선도층의 주 언어, 일상 언어는 영어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에서 인구 대국인 인도의 성적이 시원찮은 가장 큰 이유는 온 국민이 크리켓 열풍에 빠져있기 때문이라는 농담조의 지적이 있다. 조그만 공터나 공간이 주어진 곳이면 어느 곳에서든, 심지어 히말라야 산간에서조차 크리켓이 일상이다. 
 
인도-파키스탄 간 크리켓 경기의 열기는 월드컵의 한-일전보다 몇 배 뜨거운 것 같다. 주로 영연방 국가들의 제전인 크리켓 월드컵에서 4시간 이상 진행되는 경기 도중 화장실도 못가는 인도인들을 수없이 보았다.
 
▲영화 ‘3 Idiots’ 포스터. 자료 : IMDb
●연간 2000편 제작 미국의 3배, 20억 관객, 인도인 1인당 연평균 1.5회 관람 = 우리에게 ‘발리우드(Bollywood)’로 알려진 인도 영화도 이런 통합 역할을 한다. 발리우드는 인도 북서부 해안 도시로 인도의 경제수도라 불리는 뭄바이의 옛 지명인 봄베이(Bombay)와 미국 할리우드(Hollywood)의 합성어다. 정확하게는 이 봄베이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인도 영화이지만, 인도 영화 전체를 대표하는 용어로도 전용되는 경우가 많다. 
 
한 해 인도에서 제작되는 영화는 연간 1500에서 2000편에 달해 물량 기준 세계 최고다. 전국에 있는 1만2000여 개 영화관에서 데뷔할 수 있는 영화는 이 중 수백 편에 불과해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연간 20억 관람객으로 1인당 연간 1.5편, 관람료 수입은 17억 달러 전후다. 
 
연간 700여 편을 제작해 12억 관람객을 유치, 110억 달러 관람료 수입을 올리는 미국 대비 제작 편수는 약 3배에 달하지만 1인당 1500원에 불과한 평균 관람료로 금액 기준 전 세계 3위 영화시장이다. 연간 200여 편 영화에 1인당 5.3회 극장을 방문, 12억 달러를 지출하는 영화 대국 대한민국보다는 뒤처지는 수치로 보인다. 
 
그러나 인도의 1인당 평균 소득이 2000달러대로 미국의 30분의 1, 우리나라의 20분의 1에 불과하고, 인도 인구의 약 50% 이상이 농촌에 거주하고 있다는 여건을 고려할 때 평균 120루피(약 2000원)에 달하는 입장료는 인도 일반 대중에 부담이 되는 금액이다. 그만큼 인도에서는 대중의 인도 영화 사랑이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인도 영화는 크게 춤과 노래가 같이 들어가는 ‘마살라 무비(Masala Movie : Masala는 복합 향신료)’ 장르가 전체의 90%를 차지한다. 인도 마살라 영화에서는 영화 내내 주인공(커플)의 춤과 노래, 그리고 군무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인도 영화에서 음악은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라 영화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핵심 요소다. 영화 상영 전 삽입곡이 시중에 먼저 배포되고, 이것이 인기를 끌면 영화흥행은 100% 성공이다. 입만 뻥긋하는 주인공의 수많은 노래를 불러주는 가수를 통상 ‘플레이백 싱어(Playback Singer)’라 불리는데 주연배우 못지않게 인기가 있고, 유명 영화작곡가 이름도 대중에 친숙하다. 따라서 인도에서 영화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연기에 더해 반드시 춤 실력이 갖춰져야 하고, 가창력이 가미되면 금상첨화다.
 
지금까지 인도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유치한 영화는 가상의 힌두 왕국 왕자, 바후발리(Baahu Bali)의 모험담을 담은 “바후발리 2, 더 컨클루전(속편)”으로 2017년 1억2000만 관객에 2억8000만 달러 수입을 올린 바 있다. 
 
세계 3위의 인도 영화산업 규모에 걸맞게 특급 배우에게는 세계 정상급 출연료가 지불된다. 일례로 세 명의 칸(Three Khan)이라 불리는 “샤루크 칸(Shah Ruk Khan)”, “살만 칸(Salman Khan)”, “아미르 칸(Aamir Khan)”의 영화 1편당 출연료는 통상 우리 돈 150억 원 이상이고 흥행 순수익의 약 60~70%를 이들 주연배우가 가져간다. 해서 30년 이상의 발리우드 경력을 자랑하는 샤루크 칸의 개인 자산은 8억 달러에 가까워 미국의 톰 크루즈, 조지 클루니를 넘어 세계 4위로 알려져 있다.
 
●‘탈리우드(Tollywood)’, K-무비 열풍 : 변화하는 인도 영화산업계 = 인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 영화의 변함없는 주제는 신데렐라적 사랑과 액션이다. 영웅에, 주연배우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신데렐라적 사랑의 여주인공에 자신을 대입한다. 짧은 2~3시간 동안만큼은 고달픈 현실도, 질곡의 카스트도 남의 이야기다. 
 
복잡하고 정치한 각본은 그리 중요치 않다. 앞뒤 전개도 맞지 않으나 카슈미르 계곡, 판공호(Pangong Lake), 라다크(Ladak) 등 인도가 자랑하는 세계적 절경을 배경으로 이어지는 춤과 노래에 대리 만족을 느끼고 대리 관광을 한다. 영화에서 대사보다 춤과 노래 비중이 훨씬 크다. 이것이 전통적인 인도 발리우드 영화의 특징이었다. 그래서 인도 영화는 인도 국민통합의 상징이자 용광로 역할을 해 왔고, 음으로 양으로 이에 대한 인도 정부와 보수 ‘국뽕’ 언론의 막대한 지원을 받아왔다.
 
그러나 발리우드 영화도 소득의 증가, 개방화의 진전, 언어와 종족을 달리하는 남부의 경제적 발전 그리고 ‘아바타’ 등 정교하고 화려한 인도 밖 영화의 영향으로 변화의 바람을 맞이하고 있다. 힌디어 영화를 대변하는 발리우드 영화는 이제 인도 영화제작 편수의 4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남부 지방 언어 텔루구(Tellugu)어(안드라프라데시 주민의 주 언어), 타밀(Tamil)어를 기반으로 한 현지 영화 비중이 각각 13%로 급속한 증가 추세다. 이미 인도 제1, 제2위 영화 제작사가 텔루구어를 사용하는 남부 텔랑가나(Tellangana)주나 주도인 하이데라바드(Hyderabad)에 위치해 있고 남부 영화의 영향력이 지속 증가하고 있어, 뭄바이의 발리우드에 빗대어, 하이데라바드 영화산업계를 일컫는 ‘탈리우드(Tollywood)’란 신조어도 만들어졌다. 
 
춤과 노래, 힌디어 일변도의 특성도 변화를 맞고 있다. 앞뒤 전후의 시나리오와 각본을 중시하는 영화의 인기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2017년 개봉된 마동석 주연의 영화 ‘범죄도시’에 기반해 2021년 개봉된 힌디 영화 ‘라데(Radhe, 힌디어로 성공을 뜻함)’를 비롯해 황정민 주연의 ‘국제시장’, 최민식 주연의 ‘올드보이’ 등 지난 20년간 20여 편의 한국영화가 인도 현지에서 리메이크된 바 있다. 
 
코로나 기간 중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영화와 드라마가 선풍적 인기를 끌고 2022년 넷플릭스 순위 1위를 기록한 ‘오징어 게임(Squid Game)’의 폭발적 인기로 인도 영화계도 각본과 시나리오의 중요성을 점점 더 인식해 가고 있다. 그 정점에 한국영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인도 현지 인식을 반증하는 사례다. 
 
지난 몇 년 인도 북서부 카슈미르주의 중국 접경지역인 라다크(Ladak)에 인도 및 한국 관광객이 4배 이상 급증했다고 알려져 있다. 2011년 인도 명문 IIT 델리대학교 공대생의 일탈과 성공을 배경으로 한 영화 ‘세 얼간이(3 Idiots)’가 인도를 넘어 중국, 일본, 우리나라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바 있다. 이 영화의 끝부분 배경으로 등장하는 해발 4000m의 아름다운 판공호 비경이 알려지면서 인도 히말라야가 네팔 히말라야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이 인도인들과 우리 영화팬들에 널리 알려진 결과다. 
 
경제를 넘어 대한민국과 인도 간 문화 협력과 상호 이해도 이제 차원을 달리해 가고 있다.
 
김문영은 1998~2002년, 2018~2021년 인도에서만 8년 동안 근무한 인도 전문가다. KOTRA 서남아지역본부장을 지냈으며 현재 우송대학교 SolBridge 국제경영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3,000년 카르마가 낳은 인도상인 이야기(2021)’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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