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뒤에서 보는 무역

 

페인트팜(주)_방글이 실장

페인트

 

 영어를 하나도 못했던 나는 미국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미국에 가면 뭐라도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2010년 미국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영어라고는 ‘헬로우’ 밖에 못하는 내게 어떻게 추진력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에이전시를 통해서 미국에 있는 한국 업체에 취직이 확정되었다. 그때 나이 27살. 나는 그냥 한국을 떠나 외국으로 도망가고 싶어 하는 평범한 회사원이었고, 결혼적령기를 앞둔 평범한 여자였다. 그러던 중 나는 인생의 반려자를 만났다. 비행기 표를 끊기 전 마지막 선택의 갈림길에서였다.

 

미국행 대신 결혼에 골인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미국에 가겠다고 소리치던 나는 연애 1년 만에 결혼식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결혼 6개월 만에 첫째를 임신하여 출산하고, 8개월 만에 둘째를 임신하면서 나는 연년생 엄마가 되었다. 내게 사회생활과 직장생활은 더 이상 없을 줄 알았다. 결혼, 육아에만 몰두를 한 탓인지 둘째를 출산한 뒤 몸의 이상과 함께 산후우울증이라는 무서운 위기가 닥쳐왔다. 둘째를 출산한지 3개월만의 일이었다.
 남편은 내가 첫째를 임신했을 때 나와 함께 만들어놓은 페인트 쇼핑몰을 운영하는 동시에, 아버님의 건설업을 이어받기위해 아버님 아래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남편은 자신의 일이 자신의 성향과 성격에 맞지 않는다며 새로운 꿈을 꾸고 있었다. 산후우울증이 찾아오니 제일 힘든 쪽은 남편이었다. 나는 매일 신랑의 퇴근시간만 되길 기다렸고 밤늦게 힘들게 일하고 퇴근하는 남편을 쥐 잡듯 했었다. 당시에 나는 나의 힘듦과 우울함을 남편에게 알리기 급급했다.
 새로운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내가 아버님의 사무실에 가서 함께 일하고, 아버님의 사무실과 분리된 곳에서 다른 업무까지 함께 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아예 페인트 판매를 접는 건 아니었다. 아버님, 어머님의 도움을 받으면서 훨씬 수월하고 평탄하게 새로운 사업도 도전할 수 있었다.

 

우리 좀 더 재미있는 일 해볼래?
 우리 자신만의 아이템 없이 단순하게 판매만 하다 보니 마진율이 매우 낮을 수밖에 없었다. 둘이 일을 해도 결혼 전 내 급여보다 수익이 적다보니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우리에겐 새로운 사업 아이템이 필요했다. 이곳 저곳 새로운 페인트를 찾아다녔고, 기존에 보지 못한 새로운 페인트를 개발하고 싶었다. 우리만의 특색 있는 페인트, 우리가 필요한 페인트를 개발하고 만들어 내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SPaint를 개발하게 되었다. 그것이 우리의 첫 번째 아이템이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제조업이라는 업태를 걸 수 있을만한 아이템을 개발한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작은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페인트팜의 디자인실장이다. 지금까지 회사 생활을 몇 번을 해봤지만, 무역 및 수출업무는 해외무역 담당자들의 고유 업무였다. 나는 주로 무역과는 무관한 자리에서 근무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업을 시작하고 자본금이 바닥날 때 쯤 여러 기관의 수출 지원사업을 찾아 “우리를 좀 도와주세요, 우리는 이런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사업계획서를 제안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당시 지원했던 사업체 중 하나가 우리 아이템으로 중국 업체와 사업을 해보겠다고 연락을 했다. 남편과 나는 마냥 들떠서 “우리 아이템을 몇십 억, 몇백 억에 사겠다고? 우리가 드디어 무역을 시작하는구나!”라고 환호를 외치기도 했고, “대박! 로또를 만났다”면서 축배를 들면서 들떠있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1년에 몇 백억짜리 총판 계약을 맺는다는 것은 쓴 고배였다.
 우리 부부는 소통이 잘 되어서 서로가 누구를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대화하고는 한다. 어느 날 남편은 사업을 할 때 “더 신중해야겠어. 우리가 잘되면 좋지만, 설사 안 돼도 실망하지 않고 다시 다른 바이어를 찾으면 돼”라고 말했다. 우리의 선택이 잘못되었으니 조금 기다렸다 다시 해보자는 말이었다.
내가 이때 느낀 쓰디쓴 기분은 고배가 아니었을까. 시기상조로 축배를 든 우리는 1년 동안 중국시장에 단 1개의 제품도 팔지 못하고 많은 샘플만 버리고 시간과 열정도 허비하는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고배를 마신 뒤 만난 KITA 멘토
 우리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사업을 막 시작하면서 많은 것을 갖지는 못했지만, 시간적 여유가 그래도 조금은 있었을 때 이런 아픔을 느끼고 배운다는 것이 보통의 운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름 젊은 나이에 사업을 시작해서일까? 40년 이상 사업을 해온 부모님 슬하에서 자란 자녀끼리 결혼하고 사업을 시작해서일까? 내 생각에는 두 가지 모두 중요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우리를 믿고 조언해주는 많은 멘토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가장 힘이 되는 멘토는 부모님이다. 누구보다도 우리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4명의 든든한 지원군으로서 우리를 항상 뒷받침하고 계신다.
‘무역을 해야겠구나.’ 생각하면서 발을 들여놓은 것은 무역협회였다. 남편은 무작정 찾아간 무역협회에서 인생의 스승님을 만났다고 신이 났고, 나 역시 무역협회 자문위원님이 의지가 됐고, 든든했다. 그 후 남편은 1주일에 한번씩 무역협회를 찾았고 자문위원님의 멘토링을 받았다. 무역협회 대전지역본부에서 활동하고 계신 P 자문위원님은 우리 아이템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면서 우리가 하고 싶어 하는 무역에 대해 유익한 조언을 해주셨다.
 사실 나는 P 위원님과 독대를 해본 적은 없다. 항상 남편과 함께 사업을 하는 파트너의 입장으로 P 위원님과 미팅하고 조언을 얻었을 뿐이다. 그분은 내가 평소에 알고 있던 선생님, 교수님의 이미지와는 매우 다른 느낌이었다. 선생님과 교수님께 배우기 위해서는 일정한 비용을 지불해야하며, 만일 일대일 개인 교습이라면 그 비용은 몇 배가 될 것이다. 하지만 무역협회에서 만난 위원님은 1년에 협회에 회비로 내는 돈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의 아이템과 우리 회사의 사정, 우리의 방향 등을 꿰뚫어보고 계셨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등대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호통 맞은 ‘고문으로 와주실래요?’
 일주일에 한 번 매주 수요일 8시에 남편은 회의 자료를 든 직원들과 함께 위원님을 만났다. 그리고 대쪽같이 깨지기 일쑤였다. 매주 수요일이 무서울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그때 무섭다고 그만뒀으면 지금의 우리는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족집게 과외처럼 우리에게 닥쳐올 위기를 잘 맞추시는지, “보문산에 가서 돗자리를 깔아도 되겠다”는 농담을 건넬 정도로 우리를 내다보면서 대비책을 마련해주셨다. 가끔은 예고 없는 전화를 받기도 한다. “지금 생각난 게 있어서 말해줘야 할 것 같은데 시간되나요?” 그러면 남편은 주저 없이 달려간다.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에서다. 그리고 그 예측은 항상 옳았다.

 몇 달 전 스타트업이라는 죽음의 계곡을 넘으면서 우리는 위원님께 고문으로 일해 줄 것을 제안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단칼의 거절이 돌아왔다. 무역협회 전문위원으로 일하는 것이 젊은 기운을 받을 수 있어서 좋고, 또 본인만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해줄 수 있어서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실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위원님이 욕심났지만, 제안을 한 우리가 너무 부끄러웠다.
 “내 나이 이제 조금 있으면 칠십입니다. 내가 일할 수 있을 때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 노하우 다 가져가세요. 나는 지금 김 대표, 방 실장의 나이에 가질 수 있는 열정이 사라져서 조언자의 입장으로 생각나는 걸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내가 조언자로 남아 계속해서 조언할 수 있게 해주세요.
참 멋있는 분이었다. 내가 나중에 후배들을 위해서 이렇게 아낌없이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해외출장은 자존심보다 제품이 먼저
 결혼 전 나는 여행을 참 좋아했다. 2003년 대학에 입학한 이후 난 매년 해외여행을 다녔다. 부모님의 서포트도 있었지만 가까운 곳이면 어디든 나는 떠나야만 했다. 세상을 보는 게 너무 좋았다. 하지만 영어는 바닥수준이었다. 나는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지만, 언어에 대한 두려움은 항상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영어나 다른 외국어 공부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바디 랭귀지 1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할 만큼 해외에 나가서도 잘 돌아다니고 생활한다.
 하지만 비즈니스 출장은 그런 나를 비참할 정도로 작아지게 만들었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강의도 들어보았지만 아직은 한 발짝 뒤에서 서포트만 하는 역할이라 그런지 크게 부담스럽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영어가 잘 늘지 않는다. 나는 1년에 한두 번은 남편과 박람회에 참가한다. 무역협회의 지원을 받아 해외 박람회에 참가한 지 벌써 2년이 넘어가고 있다.
 캐리어 두 개에 소중하게 시연에 사용할 페인트와 프로젝터를 열심히 싸지만, 여자의 자존심, 옷 따위는 백
팩에 꾸겨 넣으며 출장을 다니곤 한다. 그러면서 느낀다. ‘내가 영어를 좀 더 잘한다면 도움이 되겠지.’, ‘앞으로는 열심히 하자!’ 30분마다 페인트를 칠하고 페인팅 쇼를 하면서 ‘우리 부스는 유명해질 것이다.’, ‘뭐라도 해보겠다.’라고 다짐한다. 그런 간절한 느낌과 노력은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가는 원동력일 것이다. 

 

60개국 샘플 보낸 후 성과 가시화
 ‘페인트로 세상을 바꾸는 기업, 페인트팜’이라는 슬로건으로 우리를 소개한다. 우리의 첫 번째 아이템은 SPaint (Screen Paint) 후면투사형 스크린 페인트이다. 유리창 안쪽 면에 페인트를 바르고 안에서 빔 프로젝터를 쏘면 바깥쪽에서 선명한 영상을 볼 수 있게 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설치가 용이하고 제거가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고 기존의 LED 옥외광고를 하는 사이니지에 비해 가격면에서 저렴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프로젝터, 영상기기, 온 오프 시스템 등 결합해야하는 제품들이 많아 제품이 완벽한 솔루션이 되기까지는 2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야만했다.
 2년 동안 60여 개국에 샘플 수출을 꾸준히 하자 이제야 조금씩 해외 바이어들이 우리의 아이템과 솔루션에 대해 만족스러워 하고 있다. 우리 제품을 6개월에서 2년여 동안 샘플 테스트 하는 나라도 있다. 샘플테스트를 마친 후에 사업성이 좋고 아이템이 우수해서 계약을 하고 싶다고 연락을 해오는 바이어가 있을 때마다 우리는 환호를 지르게 된다. 제품의 품질향상, IoT(인터넷 사물)와의 융합 등을 위해 지난 2년 동안 미친 사람처럼 쉴 새 없이 뛰어오면서 만들어낸 결과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부족하고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회사의 인원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회사가 단단해지고 있지만 우리는 예전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뛰어갈 것이다. 사업 3년차에 접어드는 스타트업 회사를 경영하는 남편의 한 발 뒤에서 바라보는 무역이라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미친 사람처럼 뛴다고 해서 결코 인정받기 쉽지 않은 분야다. 하지만 우리는 좋은 기관과 좋은 멘토의 도움을 받아 바른 방향으로 걸어왔기 때문에, 그래도 조금이나마 인정을 받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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