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세력의 종말과 그 이후
몽골인들이 중국으로부터 철수할 때 그들이 중국에 대한 통치권을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었으며 재탈환을 위한 노력이 계속 계승되어가면서 지속되었다. 중국(明)의 정책은 몽골인들을 중국문화권으로 끌어들이면서 몽골 씨족 사이의 분열을 적극 조장하여 강력한 부족 연맹의 형성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1399년 몽골 쿠빌라이家의 마지막 군주가 키르기즈족의 두목에게 피살됨으로써 쿠빌라이 황실의 시대가 종료되고, 튀르크계 부족 키르기즈가 단기간 세력을 잡다가 몽골계 부족이었던 오이라트(Oirat)부족이 강성해지면서 스텝에 몽골제국을 재건하려는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하게 되었다.
오이라트는 칭기스칸제국 당시에는 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였으나, 1436년부터 1439년까지 동부스텝에 거주하는 몽골 부족들을 지배하기 위한 군사작전을 성공리에 수행하여 세력이 강성해지자, 지배자 에센(Esen)이 황제임을 선언하면서 「오이라트제국」을 탄생시켰다. 오이라트는 중국의 명나라와 적대적인 관계를 가졌고, 여러차례 무력 충돌을 하였다. 1455년 내부 분열로 인해 에센이 살해되면서 오이라트제국이 종료되고, 스텝은 다시 혼란에 빠졌다.
이동안에 스텝에는 여러 소규모 집단이 등장하여 패권 장악을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였으나 안정을 찾지 못했고, 새로 부상한 동(東)몽골부족 세력에 의해 다시 평정된 것은 근 10년이 지난 1482년이었다. 이 부족의 지도자는 다얀칸(Dayan Khan)이었고, 그는 칭기스칸 가문의 후손임을 주장하며, 자신의 제국 건설의 노력을 칭기스칸 전통의 계승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는 대적 세력을 물리치고 동몽골의 절대 세력으로 자리를 굳혔으며, 중국 침공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1517년, 중국 명나라와의 대전투에서 패한 후, 내분 등의 이유로 인해 중국과 화평을 유지했다. 그 후, 다얀칸의 손자 알탄칸(Altan Khan)은 중국과의 관계를 화평의 관계로 정착시켜 명(明)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지속하였다.
알탄칸(Altan Khan)의 재위 기간은 특별히 몽골족이 대대적으로 티베트불교를 수용했던 시기로 그 중요성을 가진다. 티베트불교는 원나라 조정에 <紅敎> 혹은 <개혁되지 않은 종파>라는 이름으로 존재했었다가, 이 종파의 타락상에 반발하여 14세기 말엽 총카파(Tsong-kha-pa)라는 인물의 주도로 개혁운동이 일어났다. 그는 황교(黃敎)를 창시하였고, 그로부터 반세기 이내에 주도적인 종파로 교세를 확장하여 티베트를 신권정치 국가로 만들었다. 이후, 티베트국은 달라이 라마(Dalai Lama)가 다스리는 나라가 되어, 달라이 라마가 1958년 인도로 피신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 종교의 목표는 티베트제국을 건설하는 것이었고, 그 방법으로 군사활동이 아닌 적극적인 포교 활동을 국가의 기본 정책으로 삼았다. 티베트의 종교 지도자는 과거 몽골의 쿠빌라이와 팍바(P'ags-pa)라마의 절친하며 긴밀했던 관계를 그들의 종교적 위치를 증진시키는 기회로 이용하였고, 알탄칸은 티베트의 종교 지도자와의 관계를 통하여 쿠빌라이의 이름에 따르는 권위를 가지고 일부 통제가 어려웠던 몽골족들에 대해 자신의 위치를 선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몽골지도자 알탄 칸은 티베트 불교에 귀의하였고, 그 후 티베트인들은 적극적으로 선교 활동을 벌여 결국 몽골족의 생활을 티베트의 전통문화가 지배하게 되었다.
티베트의 종교지도자들은 달라이 라마를 몽골족의 알탄칸 후예 중에서 찾아 그를 티베트의 수도 랏사(Lhasa)로 가게 함으로, 랏사를 지배하면 몽골을 지배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하였다. 그 후 몽골인들이 대거 티베트불교로 개종하였고, 불교화된 몽골군의 군사력은 약화되었다. 외부의 침공이나 내부의 분열이 이루지 못했던 것을 티베트 불교는 2세기 이내에 성취한 것이 되었고, 18세기 중엽에 와서 몽골족은 이미 주변 정착 국가들에게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알탄칸이 사망하고 몽골인의 세력 중심은 내몽골 지방으로부터 코코노르(Kokonor, 靑海)지방 및 할하(Khalkha)의 몽골족 거주 지방 즉 오늘날의 몽골 인민공화국(외몽골)지역으로 옮겨졌다.
몽골 부족들의 티베트 불교화가 이루어지고 있던 거의 같은 시대에 스텝의 동과 서 양쪽에는 러시아제국과 만주제국(청나라)이라는 정착 세력이 등장하였다. 이들 제국들은 성립과 동시에 스텝으로의 팽창을 시도하였다. 이들의 팽창과 몽골족 내부의 분열, 무기의 발달등으로 인해 유목민족의 칭기스칸 제국 재건의 열망은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몽골족은 그 후 1920년대에 할하 몽골족이 독립을 쟁취할 때까지 스텝에서 정치적으로 전혀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할하 몽골족의 독립마저도 칭기스칸 제국의 전통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러시아 10월 혁명의 정신에 의존하여 성취된 것이었다.
그 후 몽골은 러시아제국과 일본, 중국의 정치적,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가 10월 혁명 후 반공산 세력인 백군의 지배하에 있게 되었다. 그러나 1920년 몽골에서도 몽골인민혁명당이 조직되었으며, 1921년에는 소련의 군사 원조하에 인민혁명당이 수도인 울란바토르를 점령하고 7월 11일 인민혁명정부를 수립하였다. 1924년에는 국호를 몽골인민공화국이라고 결정하였다. 최근에 구소련 붕괴에 따라 독자적인 노선을 걷기 시작한 몽골은 1991년 이후 사회주의 노선을 포기하고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한 자유주의 경제 체제를 추구하고 있다.
출처 : [기타] http://goodnews.co.kr/cksik/mtext/m5/m12.htm
몽골인들이 중국으로부터 철수할 때 그들이 중국에 대한 통치권을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었으며 재탈환을 위한 노력이 계속 계승되어가면서 지속되었다. 중국(明)의 정책은 몽골인들을 중국문화권으로 끌어들이면서 몽골 씨족 사이의 분열을 적극 조장하여 강력한 부족 연맹의 형성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1399년 몽골 쿠빌라이家의 마지막 군주가 키르기즈족의 두목에게 피살됨으로써 쿠빌라이 황실의 시대가 종료되고, 튀르크계 부족 키르기즈가 단기간 세력을 잡다가 몽골계 부족이었던 오이라트(Oirat)부족이 강성해지면서 스텝에 몽골제국을 재건하려는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하게 되었다.
오이라트는 칭기스칸제국 당시에는 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였으나, 1436년부터 1439년까지 동부스텝에 거주하는 몽골 부족들을 지배하기 위한 군사작전을 성공리에 수행하여 세력이 강성해지자, 지배자 에센(Esen)이 황제임을 선언하면서 「오이라트제국」을 탄생시켰다. 오이라트는 중국의 명나라와 적대적인 관계를 가졌고, 여러차례 무력 충돌을 하였다. 1455년 내부 분열로 인해 에센이 살해되면서 오이라트제국이 종료되고, 스텝은 다시 혼란에 빠졌다.
이동안에 스텝에는 여러 소규모 집단이 등장하여 패권 장악을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였으나 안정을 찾지 못했고, 새로 부상한 동(東)몽골부족 세력에 의해 다시 평정된 것은 근 10년이 지난 1482년이었다. 이 부족의 지도자는 다얀칸(Dayan Khan)이었고, 그는 칭기스칸 가문의 후손임을 주장하며, 자신의 제국 건설의 노력을 칭기스칸 전통의 계승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는 대적 세력을 물리치고 동몽골의 절대 세력으로 자리를 굳혔으며, 중국 침공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1517년, 중국 명나라와의 대전투에서 패한 후, 내분 등의 이유로 인해 중국과 화평을 유지했다. 그 후, 다얀칸의 손자 알탄칸(Altan Khan)은 중국과의 관계를 화평의 관계로 정착시켜 명(明)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지속하였다.
알탄칸(Altan Khan)의 재위 기간은 특별히 몽골족이 대대적으로 티베트불교를 수용했던 시기로 그 중요성을 가진다. 티베트불교는 원나라 조정에 <紅敎> 혹은 <개혁되지 않은 종파>라는 이름으로 존재했었다가, 이 종파의 타락상에 반발하여 14세기 말엽 총카파(Tsong-kha-pa)라는 인물의 주도로 개혁운동이 일어났다. 그는 황교(黃敎)를 창시하였고, 그로부터 반세기 이내에 주도적인 종파로 교세를 확장하여 티베트를 신권정치 국가로 만들었다. 이후, 티베트국은 달라이 라마(Dalai Lama)가 다스리는 나라가 되어, 달라이 라마가 1958년 인도로 피신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 종교의 목표는 티베트제국을 건설하는 것이었고, 그 방법으로 군사활동이 아닌 적극적인 포교 활동을 국가의 기본 정책으로 삼았다. 티베트의 종교 지도자는 과거 몽골의 쿠빌라이와 팍바(P'ags-pa)라마의 절친하며 긴밀했던 관계를 그들의 종교적 위치를 증진시키는 기회로 이용하였고, 알탄칸은 티베트의 종교 지도자와의 관계를 통하여 쿠빌라이의 이름에 따르는 권위를 가지고 일부 통제가 어려웠던 몽골족들에 대해 자신의 위치를 선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몽골지도자 알탄 칸은 티베트 불교에 귀의하였고, 그 후 티베트인들은 적극적으로 선교 활동을 벌여 결국 몽골족의 생활을 티베트의 전통문화가 지배하게 되었다.
티베트의 종교지도자들은 달라이 라마를 몽골족의 알탄칸 후예 중에서 찾아 그를 티베트의 수도 랏사(Lhasa)로 가게 함으로, 랏사를 지배하면 몽골을 지배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하였다. 그 후 몽골인들이 대거 티베트불교로 개종하였고, 불교화된 몽골군의 군사력은 약화되었다. 외부의 침공이나 내부의 분열이 이루지 못했던 것을 티베트 불교는 2세기 이내에 성취한 것이 되었고, 18세기 중엽에 와서 몽골족은 이미 주변 정착 국가들에게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알탄칸이 사망하고 몽골인의 세력 중심은 내몽골 지방으로부터 코코노르(Kokonor, 靑海)지방 및 할하(Khalkha)의 몽골족 거주 지방 즉 오늘날의 몽골 인민공화국(외몽골)지역으로 옮겨졌다.
몽골 부족들의 티베트 불교화가 이루어지고 있던 거의 같은 시대에 스텝의 동과 서 양쪽에는 러시아제국과 만주제국(청나라)이라는 정착 세력이 등장하였다. 이들 제국들은 성립과 동시에 스텝으로의 팽창을 시도하였다. 이들의 팽창과 몽골족 내부의 분열, 무기의 발달등으로 인해 유목민족의 칭기스칸 제국 재건의 열망은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몽골족은 그 후 1920년대에 할하 몽골족이 독립을 쟁취할 때까지 스텝에서 정치적으로 전혀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할하 몽골족의 독립마저도 칭기스칸 제국의 전통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러시아 10월 혁명의 정신에 의존하여 성취된 것이었다.
그 후 몽골은 러시아제국과 일본, 중국의 정치적,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가 10월 혁명 후 반공산 세력인 백군의 지배하에 있게 되었다. 그러나 1920년 몽골에서도 몽골인민혁명당이 조직되었으며, 1921년에는 소련의 군사 원조하에 인민혁명당이 수도인 울란바토르를 점령하고 7월 11일 인민혁명정부를 수립하였다. 1924년에는 국호를 몽골인민공화국이라고 결정하였다. 최근에 구소련 붕괴에 따라 독자적인 노선을 걷기 시작한 몽골은 1991년 이후 사회주의 노선을 포기하고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한 자유주의 경제 체제를 추구하고 있다.
출처 : [기타] http://goodnews.co.kr/cksik/mtext/m5/m1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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