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손한땀

kimswed 2019.03.20 06:45 조회 수 :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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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에 환경 가치를 더하다

 

한손한땀_정도혁 대표

재활용품

 

 공무원이었던 아버지가 갑자기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가서 살자고 했다. 당시 직장을 다니던 누나만 대구에 남고, 부모님과 나는 남아공으로 향했다. 누나를 골리는 맛으로 사는 짓궂은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남아공이 나의 첫 무역 대상국이 될지 상상조차 못했다.

 

짧았던 남아공과의 첫 인연

 2011년 남아공은 도로 확장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한해 전 치렀던 월드컵 때문인지 곳곳에 신축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남아공은 학창시절을 보냈던 울산과 비슷했다. 남아공에 도착한 아버지는 지인의 도움으로 간판이나 판촉물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그곳에서 사진관을 차렸다.

 낯선 것이 주는 자극도 잠시, 타국에서의 생활이 그리 재미있지만은 않았다. 무엇보다 언어의 장벽이 생각보다 높았다. 영국 식민지였던 남아공은 영어가 공용어 중 하나다. 그러나 당시 나는 영어가 짧아 현지인들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언어에서 생활까지 불편 천만인 곳에서 결국, 고등학교 3학년을 다 마치지 못하고 누나가 있는 대전으로 홀로 귀국해 검정고시를 치렀다. 고등학교 졸업장은 받았지만, 어느 한쪽에도 편입되지 못하는 나는 남아공에서도 한국에서도 이방인 같았다. 현실을 잠시 피하자 하는 마음으로 입대를 신청했지만, 입영 날짜가 1년 후였다.

 

남아공 판자촌에서 ‘한손한땀’이 태동하다

 평소 비주얼 머천다이저(VMD) 쪽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패션 비즈니스과에 들어가게 된건 입대 전 1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침 누나도 서울로 취직해 함께 신촌에 터를 잡았다.
 제대 후 졸업 작품을 준비해야 했다. 창작 브랜드 컨셉에 맞춰 부스를 구성해야 했는데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해 여름,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방학은 시작됐고, 머리도 식힐 겸 부모님이 계시는 남아공으로 여행을 갔다.
 어머니가 운영하는 사진관은 남아공 빈민촌에 자리해 있었다. 가게로 향하는 길, 허물어져 가는 판잣집 사이에서 폐플라스틱을 줍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10대 후반의 젊은 남자들이 생계를 위해 누군가 버린 알루미늄 캔이나 페트병 같은 것들을 줍고 있었다.
 폐플라스틱을 줍는 풍경이 눈에 밟히던 2016년 당시 한국에서도 미세먼지가 사회적 문제로 급부상했다.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았다. “환경과 패션을 접목해야겠다” 막연하게나마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인간 역시 지구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브랜드에 환경의 가치를 담고 싶었다.
 졸업 작품으로 본래 ‘필슨코리아’ 같은 작업복 브랜드를 구상하고 있었지만, 기존 아이디어를 버리고 원점으로 돌아왔다. 에코 패션에 대한 자료 조사부터 다시 시작했다. 원유가 주원료인 패션 산업은 환경 오염의 주범이었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리바이스나 갭 청바지의 원산지를 살펴보면 대부분 남아공이나 마다가스카르 등이다. 특히 청바지는 염색을 위해 화학 염료를 대량 사용하지만, 이들 국가는 산업 육성을 위해 환경규제를 엄격하게 하지 않는다.
 고민했다. 버려진 청바지를 이용해 업사이클 브랜드를 만들 수 없을까. 그때 발견한 것이 일본 브랜드 쿠온(KUON)이다. 쿠온의 생산방식은 기계를 통한 공정이 아닌 일본 전통 바느질 방법으로 조각난 천을 이어 제작한다. 닳은 곳에 천을 덧대는 패치워크 기법으로 버려진 청바지를 이어서 옷을 만들어보자 그렇게 ‘한손한땀’이 탄생했다.

 

지원심사 과정에서 선수들 만나 위축

 졸업작품 부스를 만들기 위해 공사장을 기웃거렸다. ‘한손한땀’은 업사이클 브랜드기 때문에 폐자재로 선반을 만들고 싶었다. 공사장에 양해를 구하고 버리는 나무판을 주워 왔다. 톱은 동사무소에서 빌렸다. 옆에서 100만 원짜리 졸업작품이 완성되어가는 동안 한손한땀 부스 제작비는 6만원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넝마로 채워진 부스는 제법 그럴싸했고, 반응도 좋았다.
 아버지는 졸업 후 남아공에서 자신의 사업을 물려받기를 원했지만, 졸업 전시회는 사업 가능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한손한땀’을 시장에 내놓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지만, 제조업을 벌일 자본이 없었다. 구직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개인 투자자가 나타났다.
 결국, 투자는 받지 못했지만 사업을 시작할 동기부여가 됐다. 초기 자본을 마련하기 위해 투자자에게 보였던 사업계획서를 다듬어 몇 개의 정부 지원사업에 공모했다. 기술과 혁신을 주제로 하는 지원사업에 서류를 통과한 업체들이 면접을 위해 모였다. 막상 가보니 기가 죽었다. 다들 정말 혁신적인 기술들을 선보였고, 소위 선수들이었다. 반소매 티셔츠를 아무렇게나 주워 입고 온 나는 정장을 입은 선수들 틈에서 움츠러들었다. 가진 것이라곤 자신감뿐이었는데, 믿었던 ‘빽’이 사라지자 설명도 버벅댔다.
 ‘떨어지겠구나. 죽기보다 싫지만 먹고 살려면 남아공에 가서 아버지 사업이나 물려받아야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포기는 일러! 일단 유통으로 수익구조 만들자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초기 자본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한손한땀’ 수익 모델을 ‘업사이클 제품 수입·유통과 이를 위한 플랫폼’으로 수정했다. 국내 소개되지 않은 브랜드를 찾다 남아공 편집숍에서 보았던 가방이 떠올랐다. 트럭 방수천을 재활용한 가방이었는데 독특한 디자인이라 눈여겨보았던 제품이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지난 6월 남아공 케이프타운으로 향했다. 아름다운 관광도시에 소재한 ‘시랜드’의 대표는 나를 흔쾌히 만나줬다. 그는 업사이클에 대한 이해와 유통 경험이 풍부한지 물었다. 업사이클은 공부를 제법 했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지만, 경험은 공부로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누구나 처음은 존재한다. 모교 교수가 조력자가 되어 줄 것이라고 설득하자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그곳 대표가 선물한 가방을 들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거의 한 달 간 연락을 기다렸지만, 가타부타 대답이 없었다. 기다리고만 있는 건 성미와 맞지 않았다. 함께 일하고 싶다는 취지의 장문의 메일을 대략적인 사업계획서를 첨부해 보냈다.
 간절함이 통했을까. 7월이 되자 ‘시랜드’ 측에서 계약하자는 연락이 왔다. 현재 ‘시랜드’ 제품을 제3국 수출 및 국내 유통을 추진 중이다. 그로부터 다시 한 달 후 ‘2018년 기술혁신형 창업기업 지원 사업’과 소상공인진흥공단의 ‘성공불융자 사업’에 선정됐다. 떨어질 줄 알았는데 죽으라는 법은 정말 없는 모양이다.

 

폐자원을 활용해 수출하는 것이 목표
 국내 폐기물 처리 문제도 심각하다. 지난 4월 중국 폐재활용품 수입 거부 문제로 ‘쓰레기 대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섬유공장은 판매해도 하자가 없는 제품까지 폐기하고 있다.
 국내에는 가격 경쟁력이 없지만, 아직 남아공은 폐자원 가치가 높다. 더욱이 보츠와나, 나미비아, 짐바브웨 외에 우간다, 말라위, 잠비아, 콩고 같은 인접 국가에서는 남아공으로부터 제품들을 구매해 자국에 유통한다.
 ‘한손한땀’은 현재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가장 큰 소매점과 액자 공장 및 광고 회사를 운영하는 포토 글로리(Photo Glory) 그룹사와 MOU도 체결했다. 데코타일 회사인 스페이스 갤러리(Space Gallery)사에는 폐기 인조 가죽을 수출하기로 협정했다. 실무경험이 적어 무역현장에서의 계약에 걱정이 많았지만 한국무역협회의 수출지원 서비스 및 현장 자문을 적극 활용했다.
 현재 잡화, 액자 부속품, 상장 케이스, 폐기물과 각종 디자인 및 광고 품목까지 수출을 진행 중이다. 인조 가죽 폐원단 수출 물량 확보는 울산에 살았던 것이 도움이 됐다.
 무궁무진한 폐자원을 활용해 한손한땀 제조 제품을 수출하는 것이 궁극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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