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글/이종남

kimswed 2008.06.11 06:16 조회 수 : 3774 추천: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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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남 목사의 중국선교여행기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시편 16:6)

창골산 봉서방 칼럼리스트이며 한국 성경분문연구원의 원장, 대한신학교 성경해석학 교수, 장로교연합신문 편집국장인 이종남 목사(인왕교회)가 지난 5월 2일부터 12일까지 중국선교여행을 다녀왔다. 장춘시, 교하시, 길림시, 연길시, 썅영, 매호구 지반 등의 도시와 마을에 한족교회와 조선족교회를 방문하고 왔다. 선교여행 속에서 얽힌 얘기를 담아 봤다.


중국은 하나님이 재어준 구역이다.
 

중국은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광대한 나라다. 도시마다 건물도 대륙성의 기질로 세워져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의 생김새도 얼마나 다양한지 천차만별이다. 중국에 10일 동안 머물면서 중국의 일부분을 접한 느낌은 너무나 많아 지면으로 다 할애하지 못할 것이다.
2일 장춘공항에 도착하여 안내자인 공 전도사님과 함께 숙소에 여장을 풀고 내일을 위한 준비를 했다. 3일 토요일 장춘시에서 떨어진 연화라는 마을에 있는 한족교회에서 말씀을 증거 했다. 오전 9시 20분부터 시작한 말씀은 10시 30분까지 전하고 10분 휴식 후 10시 40분부터 12시까지 증거하고 점심 식사 후 2시 30분까지 말씀을 증거 했다.
말씀의 내용은 내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과 예수님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 교회요, 천국이며, 영생이라고 이것이 성탄절이요, 부활절이라는 핵심적인 진리를 전했다. 말씀을 받는 한족들의 “아만”(중국식 발음으로 아멘)이 얼마나 우렁찼는지 모른다.
이 교회는 삼자교회의 질투로 인해 정부에서 철거하여 반 이상이 예배당이 파손되어 사용할 수 없는 가운데 성도의 지원으로 자신의 집에서 임시예배 처소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중국당국은 이 사실을 외부에 알려 질까봐 회유책으로 그 옆 터에다 교회를 건축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건축을 진행하려고 한다. 필자의 중국선교여행을 위해 헌금하신 것 중 일부를 헌금했다.
한족교회는 조선족교회와 달리 물질이나 재정의 도움보다는 말씀을 사모하고 은혜를 추구하고 있어 말씀의 오묘함을 요구하고 있다. 오히려 조선족보다는 한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정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직접 나서서 단기선교나 선교사 파송보다는 한국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한족을 한국에서 신학공부를 지원하여 목회자를 양성하는 것이 바람직하게 생각한다.


조선족들에게 올바른 신앙 확립이 절실

(교하시 조선족교회)

연하 마을에서 선교여행을 마치고 장춘시로 다시 돌아와 저녁 식사 후 교하시로 이동했다. 저녁 8시 침대로 된 버스에 몸을 싣고 12시 40분에 도착하여 여관에 숙박을 한 후 교하시 조선족교회에서 오전 예배와 점심 식사 후, 오후 찬양예배를 인도했다. 조선족은 통역이 없이 한국말로 말씀을 전하게 되어 아주 좋았다.
조선족은 코리아 드림으로 한국에 가서 돈을 벌었던 조선족은 조선족 마을에 머물지 않고 대도시로 떠나거나 벌어 온 돈을 흥청망청 사용하여 도저히 발붙일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관계로 그 많던 조선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가족관계가 깨어져 이혼하는 등 불균형의 집단들이 형성되는 아쉬움을 갖고 있었다. 중학교, 초등학교가 사라지고 앞으로 3년 안에 조선족들이 교육 받을 학교가 사라질 전망이라고 예견한다.
이 모두가 신앙의 확립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도 있지만 한국에서 오직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신앙마저 잃어버리는 등 문제가 항상 대두되어 있었다. 조선족교회 안에서 성도들끼리의 잦은 마찰과 신앙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한 이기집단의 생활로 전락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조선족들은 그 곳에 머물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대 도시나 다른 도시로 이동하여 집단공동체의 형성을 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저녁시간에 담임목사와 짧은 시간동안 성경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가 5일 하루 종일 교하시 목회자와 직분자들을 위한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다. 원래 일정은 그 근처에서 한족 목회자들에게 말씀을 전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공안당국의 조사로 인해 실행하지 못했다. 흑룡강, 훈춘시 등, 멀리 떨어져 있는 한족들이 80여 명이 모여 말씀을 듣고자 직접 차를 가지고 와서 필자를 모시려고 했지만 그쪽 사정과 분위기로 인해 포기하고 교하시 목회자와 직분자들에게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한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

5일 교하시에서 선교일정을 마치고 4시 경에 길림시로 이동하게 되었다. 교하에서 길림으로 가는 길목에는 교하시가 자랑하는 석재공장들이 길 양좌우로 200여개가 세워진 모습은 너무나 장관이었다. 각가지 모양의 석재들을 제작하는 공장들이 교하 주변 산에서 돌을 채취하여 돌의 결에 따라 모양을 내고 작품을 만들어 중국뿐만 아니라 해외까지 판매하고 있다.
저녁 8시 20분에 도착하여 교회에서 예배를 갖지 못하고 한족 성도의 집에서 예배하게 됐다. 이유는 그 교회 성도 중 한 분이 정신이상으로 인해 중국공안당국과 종교국에다 신고하여 교회를 시끄럽게 하여 교회에서 예배를 할 수 상황이 되어 있었다.
10여명이 모여 예배했지만 말씀의 사모함이 뜨거워 “아만”의 소리는 우렁찼다. 1부 예배를 마친 후 휴식 시간에 안수를 해달라고 하여 함께 기도했다. 2부 말씀을 증거한 후 늦은 저녁식사를 전도사부부와 한 분의 성도와 함께 식사 했다. 식사 후 인터넷을 하려 PC방에서 한국에서 보내온 메일은 볼 수 있지만 답장을 하려고 한글호환이 되지 않아 겨우 영어로 몇 자로 전달했다.
6일 아침 일찍 기도회를 갖고 근처 목욕을 한 후 식사 하러 어느 식당에 갔다. 이곳은 빵과 죽을 파는 곳으로 출근하는 중국인들이 애용하는 곳이다. 너무나 사람들이 몰려와 자리가 없어 몇 십 분을 기다린 후에 자리를 식사하게 되었는데 옛 어른들이 중국집에는 항상 불이 나 시끄럽다는 말을 실감하는 자리였다.
1부 오전 9시20분부터 10시 50분까지 그리고 2부 11시부터 12시 20분까지 말씀을 증거 했다. 그 날도 중간 휴식시간에 안수기도를 원하여 함께 했는데 어제의 안수기도로 인해 집나갔던 남편이 되돌아 왔고 아픈 곳이 나았으며 문제가 해결되는 간증들이 있었다. 


중국역사의 뒤안길, 장백산을 향하여

(마지막 황제 궁안에서)

7일 아침 일찍 휴식을 위해 중국의 마지막 황제가 살았던 궁을 돌아보고 그 옆에 중국역사박물관을 돌아보며 중국 역사의 발자취를 보게 되었다. 중국도 한국처럼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많은 고통과 아픔이 있었던 나라다. 일본의 만행으로 인해 엄청난 역사의 뒤안길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중국역사박물관에서, 상단과 우측)

점심식사는 복음신학교 학장과 함께 식사한 후 오후에는 지반과 매호구에 가서 수요예배를 갖고 오후 9시 45분 열차로 연길시로 이동했다. 8시간 동안 침대열차를 타고 8일 아침 일찍 도착하여 그곳 한족목회자를 만나 잠시 대화를 나누고 장백산을 향했다. 일명 백두산인 장백산은 봄이 되어 나무마다 새순이 돋았지만 아직 꽃은 피지 않은 상태, 만약에 제대로 장백산을 보려면 6월 중순이나 7월 초순 경에 와야 제대로 구경할 수 있다고 한다.
장백산 공원까지 계속되는 차량이동이 공원 안에서 버스를 타고, 또 RV차량을 타야 장백산 꼭대기 정상까지 도달했다. 아직도 눈이 녹지 않은 부분이 많이 있고 정상에 있는 천지연은 아직도 꽁꽁 얼어붙었지만 햇살이 비쳐 천지연을 환하게 볼 수 있었다. 그곳으로 올라갈 때 한족 젊은 부부는 저를 부축해 주고 사진도 찍어 주는 등 너무나 정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이도백화에서 백두산까지 가는 길에 왕복으로 작은 택시를 대절하여 타고 가는데 운전사부부에게 복음을 전하는 등 아주 친밀한 시간을 가졌다. 그 뿐만 아니라 백두산 정상에서 필자를 부축해줬던 부부들이 내려올 때까지 차를 같이 타고 만나는 것이 이도백하에서 돈화까지 돈화에서 장춘까지 계속 이어져 전도하게 됐다.
장백산의 여정이 끝난 시간은 9일 오전 2시였다. 잠이 금방 오지 않아 안내해 주는 전도사님의 집에서는 가끔 한글로 인터넷을 할 수 있어 한국 소식을 접할 수 있어 천만다행이었다.

(백두산 정상 천지연에서 필자)

한족들에게 세례 및 성찬식과 심방

금요일 휴식을 충분히 취한 뒤 10일 장춘시에서 약 70리 떨어진 쌍영이란 곳에 한족교회가 있는데 큰 도로변 버젓이 간판과 십자가가 달려 있어 너무나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약 30여 명이 함께 예배를 드리는 데 도착하기 전부터 찬송하고 기도하는 등 뜨거운 교회였다.
세례와 성만찬에 앞서 요한복음 6:53~58의 말씀을 토대로 증거 했다. 그리고 세례식과 성만찬식을 거행했다. 빵이 아닌 원반처럼 생긴 중국의 밀떡을 서로 뜯으며 포도주를 나누는 가운데 감동의 시간을 가졌다. 마친 후 잠깐 휴식을 취한 뒤 말씀을 증거 하려고 하는데 안수기도를 받기를 원해 함께 기도했다.
참으로 기이한 것은 안수하기 전에 손은 아무렇지 않았는데 머리에 손을 얹어 기도만 하면 손이 떨리는 눈에 확연하게 보였다. 심지어 한족들에게도 설명하며 보여주기도 하면 기도했는데 안수 받는 이들마다 감동의 눈물이 있었으며 아멘의 소리를 크게 했다. 안수 받는 이들을 위해 의자에 앉혀서 했는데 담임전도사는 맨 땅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간절하게 기도를 받았다.
그리고 점심식사 후 여 집사님이 심방을 요청하여 갔는데 남편을 몇 년 전 교통사고로 인해 전신마비, 의식은 있지만 눈만 움직이는 상태, 아들은 신학교를 다니다가 우울증으로 쉬고 있는 상태였다. 말씀을 증거 하다가 우상에 대한 언급으로 여 집사는 그동안 몰랐던 대문 밑에 숨겨 논 우상이 있음을 실토를 하여 우상을 제거하고 벽에 붙어 있는 부적을 없애는 사건이 있었다.

장춘시 교회에서 성령강림절과 어버이주일

장춘시에 있는 모 교회는 성령강림절과 중국은 10일이 어버이날로 지낸 그날을 어버이 주일로 지켜 200송이의 꽃을 준비하여 예배를 가졌다. 이 날 준비했던 꽃보다 더 많은 정년들이 참석하여 예배를 가졌다. 오전에는 성령강림과 어버이 공경에 대한 말씀을 증거 했으며 오후에는 찬양예배를 가졌다. 그리고 어는 집사님 댁에 심방요청으로 방문하였는데 식당 일로 인해 너무 힘들어 하는 가운데 심방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그 집사님에게 아주 합당한 성경구절을 제시하여 집사님에게 위로와 용기가 되어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리고 집사님에게 희망의 말씀으로 신앙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이로 인해 2일부터 12일까지 중국선교 모든 일정을 마쳤지만 아쉬움이 너무나 많았다. 필자보다 더 유능한 목사님이 오셔서 말씀을 증거하고 치유의 역사를 일으켜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회한을 느낀다.
다행히 필자는 무엇이든지 말 먹는 식사의 습관과 어느 곳에 가도 잘 적응하는 습관이 있어 그렇게 불편하지 않았다. 안내하는 전도사도 부담이 되지 않아 너무나 좋았다고 한다. 어느 교회 화장실은 백 미터 이상이 되어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복음을 전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너무나 알차고 의미 있는 선교여행이었다.
이 모두가 필자를 위해 기도와 성원으로 이루어 진 것이며 여러분들이 지원해 준 헌금을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으며 중고핸드폰, 넥타이, 필기도구, 카레라이스, 빵, 김 등을 너무나 적절하게 사용하게 됨을 알려 드린다.


중국선교에 아쉬움과 회한을 느끼며

(장백산 공원 앞)

필자를 안내했던 전도사에게 많은 한국 목회자들이 방문하여 선교의 불씨를 일으켰고 부흥의 활력소가 되어 도전과 자극이 된 반면, 소수 목회자들이 와서 중국을 깔보고 흉을 보는 등 어이가 없는 언행으로 말미암아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중국에 선교하러 오면 거기에 맞는 음식과 숙박을 해야 한다. 그런데 누추하고 정갈하지 못하여 그리고 입에 맞지 않을 수 있지만 “내가 거지새끼인 줄 아냐?”하여 민망하게 만들고 숙박과 식사에서 흠을 잡아 설교시간에 언급하는 등, 자신의 본질을 망각하는 목회자들이 있어 한국교회에 망신을 주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진정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국의 거지새끼가 아닌가? 마태복음 5:3의 말씀대로 성령의 감동감화하심으로 말미암아 천국의 거지가 된 사람의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우리는 거지새끼인 것을 알고 올바르게 처신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의 복음을 들고 온 외국 선교사들이 입을 것과 먹을 것, 그리고 잠자리 하나 그들에게 만족한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풍토병으로 인해 죽어가면서 복음을 위해 불평불만 없이 복음을 전한 것을 잊고 있는지
중국에 왔다면 거기에 따른 문화와 습관에 절대적으로 따를 수 없다고 하지만 주는 대로 먹고 자는 곳을 마련해 주면 감사히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의 습성에 따라 음식이 맞지 않을 수 있으며 잠자리도 불편할 수 있다. 심지어 화장실의 문화가 발달된 한국에서 살다가 50~60년대의 화장실을 사용하려면 아마 기가 막힐 것이다.
중국에 가서 복음 전하려고 하는 목회자나 선교사 그리고 평신도들은 이 점을 감안했으면 한다. 중국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의 전권대사로 방문한다면 그곳에 문화와 습성에 따른 모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처럼 행동해야 하며 그곳 상황에 따라 발맞춰   가야 한다.

 (박물관에서 필자)

그곳에 가서 대접받으려고 하지 마라. 한국의 목회자이니까? 대단한 사람으로 착각하지 말라. 한국에서 대접 좀 받았다고 거기서도 대접받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그곳에 개돼지처럼 대접받았다고 억울해 하지 마라. 심지어 복음 전하다가 강도도 만나고 순교까지 당하는데 목숨만 살아서가는 것만 해도 다행인 줄 알아야 한다.
앞으로 중국선교를 위해 한국교회는 새로운 정책을 세워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선교를 전문으로 하는 기관에 교육을 받아 선교하는 분들은 그래도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러나 일부 목회자나 평신도들의 언행으로 인해 한국교회에 누가 되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 당부 속에 선교여행의 일정을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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