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여행후기56

kimswed 2006.10.06 18:44 조회 수 : 1568 추천: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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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에 혼자 여행하게 된건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혼자 여행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지난 날에도 그랬듯, 앞으로도 혼자 여행하는 시간이 많을 것이다.

태국의 국경 도시. 아란야쁘랏텟.
자주 이곳을 지나쳤지만, 하루를 보내는 건 4년만의 일이다.
그때 기억 속의 여행자들은 어디 있을까?
그들도 아란을 생각하면 나와 함께했던 시간을 기억할까.
나도 그들의 기억 속에 살아 있으면 좋겠다.
 

 

국경을 넘는다

아침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국경은 한적하다.

배낭을 보고 삐기들이 달려든다.
삐끼들 또한 오랜만에 상대해 본다.
초보여행자처럼 삐끼들을 따른다. 때론 무시하며, 때론 필요를 느끼며.

비자를 받는다. 입국 스탬프를 받는다. 입국 절차가 끝났다.
이제부터 삐끼들과의 본격적인 실강이가 남아있는 셈이다.
캄보디아를 몇 번 왔는지는 그들에게 상관이 없다.
어떤 언어를 쓰는지도 상관없다.


나는 외국인이고,
그들은 외국인을 상대로 돈을 벌어야 하는 삐기들이다.
흥정에서 졌다. 강하게 삐끼들을 다그치지 못했다.
화를 내지도 않았다. 무리하게 깍으려 하지도 않았다.
적정요금-물론 현지인들보다 더 낸 적정요금을 알면서도 흥정은 손쉽게 끝났다.
삐끼들의 완벽한 승리다.

현지인보다 두 배는 더 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이상을 냈는지도 모른다.
삐끼들은 먹이를 나누듯 자신의 역할에 따라 이윤을 배분하고 있다.
픽업 트럭 바로 뒤에서, 기사에게 건네준 요금을 제외하고
자신들의 몫을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한명의 희생양과 여러명의 탈취자.
그들의 역할을 끝났다.
삐끼는 삐끼의 역할을 여행자는 여행자의 역할을 마친 셈이다.
모두 스스로의 역할에 충실했던 것이다.

 

길가에는 물을 던지는 사람들이 간간이 나타났다

캄보디아도 신년 연휴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동남아 일대에서 공통되게 행해지는 물 축제다.
작은 비닐 봉지에 담겨진 물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던지고 있다.

마음대로 던질 물도 없는 사람들.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게 흥청망청의 축제도 사치인 것이다.
한 나절 만에 도착한 작은 도시.
도시에도 축제 분위기가 흥겹다.외국인이 많지 않은 도시다.

지나가는 외국인이 현지인에게 흥미를 끄는 곳.
서로에게 어색한 웃음만을 보내야 하는 곳이다.
이방인인 내가 현지인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볼거리가 되야했다.

순박한 사람들.
내게 물을 던지지 못한다. 던지는 시늉만을 하는 꼬마들.
하지만 어누 누구도 작은 공만한 물 풍선을 던지지 못한다.
사원에 들렸다. 누군가가 내 얼굴에 파우더를 묻혔다.
용감한 동네 처녀 두명, 그들이 내 얼굴을 습격한 것이다.
얼굴에 묻혀진 파우더로 인해 이방인은 현진인 눈에 잘 띄게 됐다.
호기심 어린 눈들이 나를 보고 즐거워한다.
 


식사를 한다

자리에 앉자마자 꼬마 거지가 다가온다.
내가 외국인인 것을 아는 것일까? 아니면 일상적인 몸짓일까.
거지들과도 편하게 눈을 마주칠 수가 없다.
작은 돈을 줄 수도 있었는데 쉽지 않다.
돈을 주는 것이 도움이 될까? 아니면 돈을 주지 않는 게 도움이 될까?
여러번 같은 경험을 한다하더라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거지는 거지대로 여행자는 여행자대로 스스로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소녀는 옆자리에서 100리엘(약 30원)을 얻었다.
행복해하는 표정이 아니다.
하긴 그돈으로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푸짐하진 않지만 적지도 않은 밥과 반찬과 차가운 음료를 가진 나는 부자여야 하는가?
음식을 남긴 것이 미안하게 느껴졌다. 소녀는 여전히 테이블 사이를 돌아 다닌다.
남긴 음식을 소녀에게 줬다. 비닐봉지에 담는다.
어머니를 갔다 줄건지, 개밥으로 쓸건지는 알고 싶지 않다.
작은 연민내지는 사치에 대한 미안함으로 소녀에게 남은 음식을 건넸을 뿐이니까.
소녀는 행복하지 않는 모양이다. 얼굴에 여전히 미소가 없다.
소녀는 언제 행복해 질까? 10달러를 건넨다면 행복해 할까? 아니 놀랠지도 모른다.

식사값을 지불하고 자리를 잃어났다.
소녀는 주변을 맴돌며 구걸에 열중하느라 내가 자리를 떠나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 구걸할 능력도 없는 꼬마 거지. 들어가면 맞을지도 모른다.
그게 소녀 거지와 주인의 역할인지도 모른다.
소녀를 뒤로하고 자리를 일어선다.
잠시 그들의 공간 속에 출연했던 엑스트라가 퇴장하는 순간이다.
 

 

비포장 활주로에 먼지를 날리며 도착하는 비행기가 있는 공항이 있다

쌍발 프로펠레 러시아 비행기, 승객 4명, 조종사 3명, 승무원 2명.
얼마나 높이 날까 싶었던 비행기는 구름 위까지 날았다 내려왔다.
비행시간 한 시간. 지구의 끝에 온 듯한 느낌이 드는 오지에 도착했다.

라따나끼리 Rattanakiri.
이런 이름을 들어 본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공항이 비포장이라면 도시는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도시라고 부르기는 하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도시인지 마을인지 공항이 있던 곳에는 시장이 있고,
픽업 트럭이 스는 정류장이 있고, 호텔이 있다.

파란 하늘, 하얀 구름, 붉은 먼지, 자연 그래로의 모습을 간직한 곳.
자연은 하나의 풍경처럼 말없이 서있다.
어쩌면 자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연은 하나의 풍경처럼 그렇게 자라고 있었다.
어쩌면 흐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연은 하나의 풍경처럼 그렇게 흐르고 있었다.

검은 얼굴이 더욱 검게 보이는 사람들이 그림처럼 지나가고 있다.
 

 

호수가 있다

푸른 빛. 그걸 푸른 빛이라고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통상적인 의미의 푸른 빛이었다.
하늘 색에 따라, 바람에 따라 푸른빛은 변형을 거듭했다.

호수에는 아무도 없어야했다.
아니다.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 주는 게 당연했다.
컴퓨터 게임, 오락실 대신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 주어야 했다.

아이들의 미소가 가득하다. 검게 그을린 아이들.
호수는 그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주고 있었다.
호수에 뛰어 든다. 아이들 속에 뛰어 든다.
튜브에 몸을 기대고 하늘을 본다.
아이들의 움직임에 내 몸도 조금씩 움직인다.

대화는 통하지 않았다.
대화를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해야할 필요도 없었다.

아이들의 좋은 친구인 호수는
내게 좋은 휴식이 되어주고 있었다.

수없는 시간을 살았을 호수와 하늘은
아이들과 내게 좋은 친구가 되주고 있었는데,

어른이 되 버린 나는 아이들의 친구가 되주지 못했다.

 




이정표

베트남 68KM.
도로의 한 방향을 가르키고 있다.

한국의 고속도로를 달릴다면 30분이면 도착할 거리.
이곳에선 거리와 시간적인 개념의 상관관계는 필요없다.
이정표를 따라 간다면 국경에 닿을 수 있을까?
국경까지 길이 연결되어 있는지조차 확실치 않다.
국경은 열려있지 않다.
어딘가에서 끝이나야할 길을 부를 수 있을까?

길이 어딘가에서 끝남을 알면서도 길을 가려할까?  
되돌아와야 함을 알면서도.

하지만 결과를 예측하면서도 덤벼드는 일이 있다.
원점으로 되돌아 오면 시간만 보냈다는 후회보다,
그 길을 보고 왔다는 기쁨을 누릴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다.
길을 보고 되돌아 온 시간에 대한 보상은
길이 내게 준 기억과 추억과 정취만으로 충분히 보상이 됐을 것이다.
 


메콩강이라고 이름을 가진 강은 익숙하게 느껴진다

티벳에서 베트남까지 흐르는 4,500킬로를 흐르는 강.

티벳에서,
중국 윈난에서,
라오스에서,
태국 북부에서,
캄보디아에서,
베트남에서
한번씩 본 적이 있는 강이다.

강을 거슬러 올라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시아의 어머니 같은 강이다.
내게도 어머니처럼 포근함이 느껴지는 강이다.
그래서 친숙한 것인지도 모른다.

양자, 황하, 나일. 이런 강들을 보았다.
유독 메콩에는 그리움이란 단어가 있다.
메콩강의 있던 곳에서는 매일 오후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붉은 색이 창백한 파란색으로 변하는 쓸쓸함을 보았기 때문일까.
더운 바람이 사라지면서 차가운 바람을 맛 보았기 때문일까.

메콩이 흐른다.
메콩을 따라 도시들이 형성되어 있다.
메콩을 따라 무역이 이루어진다.
메콩을 따라 사람이 살고 있다.
메콩을 따라 추억이 묻어있다.

메콩 강 주변의 도시들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오늘 저녁 붉은색이 차가운 기운으로 변해 버린 메콩 강변에 있는 도시 끄라쩨 Kratie.
캄보디아 어딘가에 있는 도시지만 캄보디아와는 다른 느낌을 받게한다.
처음 오는 곳이지만 한번은 왔던 것 같은 느낌이 느껴진다.
강바람 때문일까. 오래전 기억 속의 메콩강 바람을 기억하기 때문일까.

차가운 파란빛은 검은 어둠으로 변하며 메콩도 휴식을 취하려 한다.
날이 밝으면 메콩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사람들이 흐를 것이다.
어제도 그랬들이 오늘도....

 

하루를 돌아보면 기나긴 하루

하루가 길 게 느껴지는 건 먼 길을 온 때문이다.
배를 타고 4시간, 오토바이를 타고 국경을 넘고,
미니버스를 타고 국경도시로 이동하고, 버스를 타고 다섯 시간 만에 방콕에 도착한 탓이리라.

국경 도시 뜨랏 Trat.
매년 방문하고 있는 도시와의 인연을 올해도 이어갈 수 있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에게, 단골 식당의 종업원에게 인사를 하고 싶었다.
뜨랏 시장.
얼굴을 아는 사람은 없지만 시장이 주는 정취는 그대로 남아있다.
어제도 왔던 것 처럼.

버스는 어둠을 달려 밤이 더 깊기 전에 익숙한 도시로 나를 데리고 왔다.
너무도 익숙한 도시 방콕. 그리움과 미움과 정겨움과
추억들이 곳곳에서 묻어나는 도시 방콕에 도착했다.

집에 왔다는 느낌,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즐거움.
무엇보다 문명과 떨어져 있는 내게
여행에서 돌아와 도시가 주는 향기를 대하며 편해질 수 있었다.
가까이 두고 있으면 떠나고 싶은 도시지만,
멀어져 있으면 늘상 갖고 있던 무언가를 잃어 버린 느낌을 들게하는 도시.

도시의 밤은 한적하다.
도시만이 갖을 수 있는 구성요소들이 하나둘 씩 눈에 들어왔다 사라져갔다.

사람과 자연을 단절시키는 것들,
자연적인 흐름을 방해하는 것들,
인공적인 아름다움을 획일화 시키는 상업광고의 미소들...
도시는 변함이 없었다.

긴 하루를 보냈다.
몸은 지쳐있었다.
머리는 내게 쉬라고 몸에게 명령을 한다.
새벽 3시를 넘긴 시간.
잠을 이루지 못한다.

몸이 아직 살아있었다.
도시가 아직 잠들지 않았기 때문일까.
밤이 한참이 깊고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도시의 새벽이 있다.

자연속에서 어둠이 드리우면 잠을 자고,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눈을 뜨던 아침이 있었다.
도시가 완전히 호흡을 멈추면 도시 속의 몸도 편히 잠들 수 있을려나?
뇌에서는 자라고 명령을 하고 있었다.
눈에서는 자야할 시간이 넘었다고 재촉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