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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wed 2007.09.15 17:53 조회 수 : 3482 추천: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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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가 인생1.......글 : 한 영 민

골프는 서양에서 시작되었지만 참으로 동양적인 운동이다.
골프는 우람한 체격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대신 엄격하고 정제된 마음을 필요로 한다.
세계 골프계가 비록 서양인들에 의해 점령당하고 있기는 하지만 단지 신체적 이유에 의한 것은 아니다. 동양의 경우 골프 역사가 짧아 저변이 넓지 않다는 것이 유일한 이유일 것이다. 정신 수양을 위해 동양적 수련을 하는 수많은 서양선수들을 본다면 골프의 미래는 오히려 동양인에게 달려있는지 모른다. 예로부터 눈에 보이는 물질을 가치로 여기는 서양문화보다 보이지 않는 정신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동양문화에 더욱 어울리는 운동이 골프다. 그래서 어떤 서양친구는 “젠(선: 禪)골프” 라는 책을 펴내며 동양의 정신문화를 골퍼들에게 전하고 있다.

골프의 색은 푸른 색이지만 단조롭다. 화려하고 다양한 색이 아니라. 정갈하고 단아한 푸른 색 하나로 만들어진다. 다양한 색채를 쓰는 서양화에 비해 단순한 색의 동양화의 느낌이다.
골프장의 사진을 보고 있자면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 링크스 코스의 사진도 마치 파도가 멈춘 것 같은 정적을 느낀다. 그래서 골프장의 사진은 많은 갤러리가 몰린 장면보다는 안개 낀 아침 캐디도 없이 한 두 명의 동반자가 날리는 소리 없는 샷의 모습이 더욱 어울린다.
하얀 공이 그리는 샷의 괘적은 마치 정성 컷 돌본 난초의 모습과 같다.
너무 동양적인 모습 아닌가?

동양적인 모습과 서양적인 모습의 차이는 무엇인가?
먼저 자연을 보는 관점에서부터 달라진다. 동양에서는 자연을 함께 호흡하는 조화의 대상으로 보지만 서양에서는 정복의 대상으로 본다. 이 관점은 골프를 하는 태도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만들어 낸다.
서양인들은 골프를 자연과 싸우는 과정으로 보고 정복하려고 하지만 동양인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자 노력한다. 조화 속에 함께 호흡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오랜 세월 지구를 개발하며 살아온 인간의 무모한 시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이제 우리는 깨닫고 있다. 과연 자연은 정복과 개발의 대상인가, 아니면 조화와 보존의 대상인가?

골프는 서양인의 욕망처럼 정복을 추구하는 운동이 아니다. 동양의 그것과 같이 겸손한 자세와 조화, 화합을 필요로 하는 게임이다.
그래서 골프는 공격과 정복, 개발을 선(善)으로 아는 서양인들의 세계에서 생겨났는지 모른다, 그들에게 자연의 힘과 조화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려고.
골프에는 게임의 경쟁자를 상대라 부르지 않고 동반자라 부른다. 이것만 봐도 골프의 기본정신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동반자는 사람 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푸른 자연과 땅과 하늘과 맑은 공기마저 골프의 동반자가 된다. 골프는 경쟁하는 게임이 아니다 서로 배려하고 함께 가는 동반의 게임이다.

골프에서 가장 큰 화두는 겸손과 조화다.
골프를 정복하려는 자는 끝내 무너지고 만다. 공이 숲으로 향했을 때 자신의 부족함을 수긍하는 자는 자연의 엄정함을 아는 이는 3온 1펏의 파도 이룰 수 있지만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며 일시에 자연을 정복하려는 자는 숲속에서 사흘을 헤메도록 만드는 것이 골프다.
골프는 자연과의 조화와 화합을 권한다. 정복과 투쟁심을 버리라 한다.
투쟁과 정복을 목표로 하는 골프는 항상 불안하지만 겸손과 조화를 심어둔 골프는 언제나 평온한 자신을 보여준다. 장타자가 기복이 심한 것은 공연한 것이 아니다. 한방의 대박을 노리는 인생이 항상 고달픈 것과 무엇이 다르랴?

그러나 골프는 때로는 용기를 가지라 한다. 티 그라운드 앞에 펼쳐진 해자드의 위용을 극복할 용기를 요구한다. 드넓은 그린 중앙보다 그린 한쪽에 고고히 서있는 핀을 향해 달리는 용기에 버디의 과실을 안겨준다. 남들이 다 긴 드라이버를 들고 오르는 티 그라운드에서 짧은 아이언을 빼어 드는 것도 용기가 없으면 하기 힘든 일이다. 남들이 다 입는 옷이 꼭 나에게도 어울리는 것은 아닐 수 있다.
당신도 자연의 힘만큼의 기(氣)를 지녀야 진정한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하는 거다. 자연은 정복의 대상은 아니지만 두려움의 대상 역시 아니다. 겸손과 두려움은 다르다. 두려움에 움추려진 기(氣)로는 1미터 퍼팅도 성공하지 못한다. 겸손한 눈에는 잔디 결의 흐름이 보인다. 겸손은 자신의 능력을 오차 없이 가늠한다. 스스로 감당 못 할 시도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능력 안의 과실은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능력을 파악하면 겸손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생긴다.
골프는 겸손으로 다져지고 용기로 성장하고 조화로 완성된다.

골프는 상황을 파악하는 현명함과, 자신의 능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솔직함을 요구한다.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아는 자 만이 물러설 때와 나아갈 때를 구분하는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능력이 모자람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단지 모자람을 방치하는 태만과 안일을 책망할 일이다.

골프는 실수를 덜하는 게임이다. 항상 안정된 샷이 승리를 거머쥔다. 그러나 실수가 없는 골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번의 실수는 회복할 기회가 언제나 있다. 단지 반복되는 실수가 나락을 만들 뿐이다. 빼어난 성취는 뼈저린 실수와 그것을 극복하려는 시도에서 만들어 진다. 실수가 그대를 진정으로 강하게 만든다고 믿을 수 있는가?

이 모든 수식에 골프대신 인생을 넣어보라. 무엇이 골프이고 무엇이 인생인가?
그래서 골프는 인생 자체 보다도 더 인생같은 운동이다.


golf 2....

손은 어느 때 모으는가?
기도를 할 때 우리는 두 손을 모은다.
간절한 마음이 누군가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두 손을 맞잡고 마음을 모아 기도를 올린다. 심란한 생각으로 갈갈이 찢어진 마음을 두 손으로 정성 컷 모아 소망을 기원한다.

합장을 함이란 먼저 자신의 마음을 모우는 행위다. 손바닥에 기를 모아 체온을 느끼며 모든 번뇌와 갈등으로부터 벗어나 한 마음이 되었다는 증거로 우리는 모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몸 앞에 두고 고개를 숙인다. 가장 겸손한 인간의 모습이다. 누구의 작품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빵 한 조각과 수프 한 그릇의 초라한 식탁에서 기도하는 외로운 농부의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형상 중에 하나다.
“이 음식으로 생명의 소중함과 농부의 손길을 기억하게 하소서”

두 손을 모우는 인사 법은 여러 문화에서 나타난다. 불교에서의 합장 역시 인도 문화권의 인사 법에서 시작되었다. 태국에 호감을 느끼는 이유 중에 하나도 바로 두 손을 합장하여 코앞에 올려 상대에게 존경을 표하는 인사 법이 좋아서 인지 모르겠다.
두 손을 모아 상대에게 가지런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겸손을 뜻하는 행위다. 상대에게 존경전하며 나의 겸손을 알리는 행위다. 나는 그대에게 적의가 없고 마음으로 그대를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있다는 표현이다.

악수를 나누는 것은 서구의 인사 법이다. 그들 역시 체온을 나눔으로 마음을 전달한다. 단지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 좀더 간단하고 직설적이다. 힘있고 따뜻한 악수는 상대에게 나의 호의를 전달하고자 함이고 맥없이 손가락 일부만을 쥐어주는 것은 당신은 별로 나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님을 알리는 표현이다. 상대의 손을 두 손으로 합쳐 잡는 것은 역시 존경의 표시이고, 서로 두 손을 사용하여 맞잡는 악수는 의기가 통함을 말해주는 가장 분명한 표현이다.

이렇듯 인간의 마음은 행동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두 손을 맞잡고 저주를 퍼붓지는 못한다. 양손을 모아 겸손의 인사를 하며 상대를 조롱하는 마음을 갖지 못한다. 행동이 마음을 지배하는 증거다. 마음이 이악스러워 질 때 스스로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여보라. 겸손의 마음이 절로 솟는다. 세속에 물든 마음이 정화됨을 느낀다. 가끔 시간이 나면 그저 두 손을 모아 마음을 하나로 합쳐보라. 산만하고 불안하던 마음이 어느새 사라진다.

골프는 겸손의 운동이다.
두 손을 모아 공에 자신의 기를 전달하는 골프는 바로 겸손을 필요로 하는 운동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골프에는 인생이 담겼다고 말한다.
자만심에 가득한 삶은 타인에게 두려움을 심어 줄 수는 있지만 존경의 마음은 얻지 못한다. 두 손이 따로 움직이는 스윙은 때로는 힘있어 보이긴 하지만 정제된 샷을 보여주지 못한다.
진정한 고수는 겸손할 뿐이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흩어지지 않는 겸손을 아는 이가 진정한 고수다.

골프는 마음을 모우는 운동이다. 두 손을 한 손처럼 뭉쳐 마음을 기를 모아 스윙을 하는 운동이다. 두 손 사이에 작은 틈이라도 있다면 마음을 흩어지고 공은 제멋대로 달린다.
그래서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그립을 잡는 법이다.
어떤 형태의 그립이든지 한가지 지켜야 할 것은 두 손 사이에 어떤 틈이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왼손 엄지 위를 오른 손바닥 생명선이 가지런히 덥혀 한 손이 되면 마음 컷 공을 때릴 수 있다.
흔히 그립을 잡는 세가지 방법을 알려주면서도 가장 중요한 양 손 사이의 틈에 대하여 말해주는 이들이 별로 없다. 어드레스부터 스윙이 끝나는 피니시까지 양 손 사이에 한치의 틈이 없다면 공은 똑바로 멀리 간다. 양 손 사이의 틈 만이 아니고 손가락의 간극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더욱 이상적인 스윙이 가능하다.

두 손바닥이 하나로 합쳐지고 두 손이 달린 팔뚝이 가장 가깝게 모아진 체 스윙이 이루어지면 완벽한 샷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스윙 내내 두 팔뚝 사이의 간극이 변화되지 않으면 자연히 두 손으로 백 스윙을 하게 되고 또, 두 손으로 공을 내려 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두 손바닥이 한 몸으로 뭉쳐진 체 피니시가 이루어 지면 스윙은 완성을 만난다.

그래서 그립이 스윙의 전부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립과 어드레스를 보면 그 사람의 골프를 알 수 있다. 오만한 힘을 자랑하는 겁 없이 용감한 사람인지 겸손한 골프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인지 그 모습만 보아도 짐작이 간다.

겸손하지만 힘있는 스윙을 갖고 싶은가? 너무나 쉽다
겸손한 마음으로 양 손바닥을 합쳐 잡고 마음을 모아라. 다섯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있겠냐 마는 그래도 당신이 힘을 보태야 할 친구는 가장 작고 힘없는 새끼 손가락이다. 엄지와 검지는 이미 힘이 넘친다. 내버려 두어도 제 힘을 언제나 발휘하는 친구들이다. 다섯 자식 중 가장 가진 것 없이 태어난 새끼 손가락에 힘을 불어 넣고 네가 없으면 안되다고 전해줘라. 그리고 마음의 기를 모아 겸손하게 두 손으로 공에게 인사하라.

공은 그대 마음을 받아 저 멀리 푸른 페어웨이를 향해 가볍게 날아갈 것이다.
공이 숲으로 향한다면 그대가 겸손치 못함이다.
공이 오비 지역으로 달린다면 그대의 자만을 꾸짖는 것이다.

두 손을 모았는가? 겸손을 잃지 않았는가?
golf 3...

골프에서는 대화를 제한하는 규칙이 있다. 즉 게임에 도움이 되는 어떤 대화도 금지한다는 조항이 있는데 그저 권장사항이 아니라 안 지키면 2 벌 타를 가하는 엄격한 규칙이다. 상대의 스윙에 대한 조언이나 거리에 대한 조언 등 뭔가 게임에 도움이 될만한 대화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한때 미국의 LPGA에서는 갤러리 속에 섞여있는 한국 선수 가족들과의 한국말 대화에도 의혹의 시선을 보낸 적이 있다. 혹시 한국말로 게임에 도움이 될만한 소리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을 한 것이다.

LPGA나 PGA에서 뛰는 프로 골퍼들의 모습을 보면 심각하기 그지 없다. 여간 해서 자연스런 미소가 나오지 않는다. 경쟁자이긴 하지만 자신과 같은 라운딩을 하는 팀의 동반자와도 대화를 나누는 꼴을 못 봤다. 물론 게임에 집중하다 보니 남들과 대화를 가질 여유가 없겠지만 단순히 그런 것만은 아닐 수 있다. 잘못 대화를 나누다가 조언으로 사려되는 발언이라도 나올까 봐 조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면 프로들의 골프는 진정한 골프가 아니라 목구멍이 달려있는 직업의 수행일 뿐이다.
그래서 오늘 이 주제에서 프로들의 게임에서 나누는 대화는 열외로 하기로 하고 일반 골퍼들의 라운딩 시 대화와 그 의미를 살펴보자.

먼저 여성분들에게 의외의 사실을 하나 알려드리겠다. 여성분들의 예상과는 달리, 남자들은 여자들과 골프 치는 것을 그리 반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더욱이 그 여자 동반자가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관계라면 더욱 그렇다. 친구나 동료의 부인이라도 되면 그날 라운딩은 인내를 필요로 하게 된다. 왜 그러냐고 묻는 사오정 같은 분이 있겠지만 설명은 생략하겠다. 이런 질문을 다시 하는 사오정은 아무리 상세히 설명해줘도 이해를 못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모임에 부인을 데불고 나오면 뭐라고 타박은 할 수 없지만, 제발 나보고 같이 치자며 손짓하지 말 것을 기원하게 된다. 원초적인 골프 대화를 즐기는 골프들의 습성에 의해 생기는 이성 골퍼 기피증이라는 병명인데 의외로 이 증세를 보이는 남성 골퍼가 많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남편의 모임에 따라 나가시길 바란다.

골프라는 운동이 홀에 공을 넣는다는 모양새 때문인지 골퍼들의 대화에는 자연스럽게 성에대한 얘기가 자주 등장하게 된다. 별 것이 아닌 소리에도 묘한 상상을 하며 서로를 바라보고 킥킥대는 것이 라운딩 중에 나누는 대화 중의 하나다. 평소 그리 젊잖고 고상하던 사람들이 왜 골프장에서는 이런 음담패설에 가까운 대화를 거부하지 않는가? 그 이유는 골프가 갖는 구조적 모양새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을 열어 두었다는데 있다. 즉 서로 믿을 만한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자리의 대화가 다른 자리로 옮겨갈 위험이 없다고 믿는 것이다.

얼마 전 신문에서 한 대권주자의 차명 재산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면서 어떤 인간이 골프장에서 다른 사람들과 라운딩을 하며 나눈 대화에서 그 부분에 대한 증언을 한 사람이 있다고 기자들에게 떠벌리는 기사를 봤다.
그 정치인 골퍼의 폭로 성 발언 기사를 보고 이 글을 쓰고 싶어 진 것이다. 골프장에서의 대화를 기자들을 불러다 까발리는 수준미달의 인간이 국회의원이라고 자리를 잡고 있으니 나라 꼴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골프는 인생과 가장 닮은 운동이라고 한다. 어떤 운동이든 다 해석하기에 따라 인생과의 유사점이 발견될 수 있지만 골프가 유난히 인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바로 대화가 가능한 운동이라는데 있지 않나 싶다. 골프만큼 대화가 자유롭고 또 필요한 운동이 있는가? 동반자와의 대화, 자신과의 대화 그리고 자연과의 대화를 나누며 즐기는 운동이 골프다. 그리고 우리의 삶 역시 많은 대화를 통해 발전하고 풍성해지지 않는가? 부모님과의 대화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지식을 익히고, 책과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삶의 방법을 배우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골프를 치기 위해 동반자를 만난다지만 사실은 동반자와의 대화를 위해 골프장을 빌린다는 설정이 더욱 어울리는 운동이 바로 골프다.
골프장이라는 곳은 참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곳이다. 앞뒤가 탁 트인 넓은 필드와 화창한 태양 아래에서 서 너 명의 친구들과 4-5시간을 함께 거닐다 보면 어느새 함께 한 동반자와의 마음의 문이 열린다. 그들과 뭔가 각별한 사이가 되는 것 같고 실제로 못할 얘기가 없는 친근한 관계로 인식되게 만드는 곳이 바로 골프장이다.
그래서 골퍼들은 긴한 대화가 필요할 때 대상자를 골프장으로 초대한다. 남들이 알면 결코 도움이 안 되는 은밀한 주제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탁 트인 필드에서 에티켓을 지선으로 내세우는 골프라는 운동을 매개로 함께 걸으면 아무리 비밀스런 얘기라 할지라도 스스럼 없이 나눌 수 있는 곳이 골프장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골프장은 골퍼들만이 갖는 최상의 대화의 장이다.
그 속의 대화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원초적 농담이 될 수도 있고, 나라의 운명을 바꾸는 정치적 거래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사업의 명운이 걸린 무거운 주제일 수도 있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서로의 마음을 연다는 것이다. 마음을 열고 나눈 골프장에서의 대화는 필드에 묻어지고 다시 끄집어 내 시비를 가리는 경우는 없으리라는 믿음이 있기에 골퍼들은 대화를 위해 골프장을 찾는 것이다."

골프장에서 나눈 동반자의 마음을 공개하는 짓은 서로 양해되고 묵계된 대화의 불문율을 깨트리는 험한 짓이다. 더구나 그 대화의 진실 여부를 떠나 기자들을 모아서 골프장에서의 사적 대화를 마치 CNN에서 발표한 것처럼 엄숙하게 말하는 인간은 더 이상 골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인간이다. 골퍼의 자격은 상실해도 너절한 정치인은 될 수 있는 가 보다.

골프의 동반자란 서로 마음을 열고 스스럼없는 대화가 가능한 친구이고 또한 그 대화의 내용이 절대로 외부로 흐르지 않는다는 신뢰가 이미 쌓인 관계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정치인들이 골프장을 오염시킨 위의 사례를 통해 아무리 골프가 좋아도 골프장에서의 대화를 소화하지 못하는 인간과는 가능한 라운딩을 피하는 것이 신상에 좋다는 역설적인 교훈을 받은 셈이다.

골프장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며 골프를 즐길 동반자와 입 다물고 골프만 열심히 쳐야 할 마음의 이방인. 그대는 어느 쪽에 속하시는가?
golf 4.....

골프라는 운동만이 갖는 특징 중에 하나는 바로 서로 실력이 다른 사람들끼리도 승부를 겨룰 수 있도록 한 핸디 갭이라는 조항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운동의 경우 서로 실력 차이가 크게 나면 승부라는 것이 무의미 해진다. 그렇지만 골프에서는 서로 다른 실력의 동반자들이 공평한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그 실력 차이를 보완하는 공식적 제도가 있는데 바로 그것이 핸디 캡이라는 제도다.
핸디 갭이란 원래 승마경기에서 서로 무게가 다른 말들이 게임을 할 때 그 무게 차이만큼의 모래 주머니를 강자에게 달아줌으로 상대적으로 모자라는 부분을 보완해준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럼 핸디 갭의 어원은 어떻게 나왔는가?
핸디 갭이란 영어로 Hand in a cap의 약자다. 모자 속에 손을 넣는다는 말이다. 빈손을 넣는 것이 아니고 돈을 쥐고 남이 얼마를 내는지 보이지 않게 하도록 하는 것이다. 즉 돈이 적게 낼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치지 않기 위한 배려가 담긴 방식이다.

골프의 발생지이자 친구들과 술을 유난히 즐기던 스코틀랜드 인들이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그 술값을 낼 때가 되면 “자! Hand in a cap” 하고 외치면 각자 형편만큼의 돈을 모자 속에 넣어 술값을 모우는 방식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즉 형편이 좋은 사람은 많이 내고 안 되는 사람은 적게 내는 자유의지로 공동의 술값을 각출하는 방식이다.
이런 핸디 갭이 어떤 과정을 거쳐, 뭔가 모자람을 보완하는 행위를 호칭하는 것으로 발전되었는지 모르지만 이런 저런 의미를 짚어보면 그 이름에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째든, 골프장의 티 그라운드를 보면 보통 4개정도가 있는데, 거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나 힘이 약한 여성들을 위해 상대적으로 짧은 거리의 티 그라운드를 사용하게 하여 그 모자람을 보완하는 의미에서 마련된 것으로, 서로 공평하게 실력에 알맞은 게임을 즐기자는 배려가 담긴 대표적인 핸디갭 방식이다. 그러나 요즘은 같은 조에서 서로 다른 티 그라운드를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같은 티 그라운드를 사용하면서 핸디갭을 조종하는 것으로 게임의 공평성을 찾는데, 이게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내기 골프를 즐기는 한국사람들, 핸디갭 조정에서 밀리면 씨름의 샅바 싸움에서 밀리는 것과 같다는 생각인지 좀처럼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더구나 급한 성격으로 잃은 돈을 한번에 만회하고자 내기 돈을 중간에 수시로 올리기 일수인 한탕 지향성의 한국인의 게임 특징상, 핸디를 애초에 잘 못 정하면 낭패를 본다는 생각에서 인지 서로 만만찮은 자기 주장을 내 세우며 기 싸움을 한다. 이런 기 싸움은 과연 게임의 재미로 인정할 만한가? 사실 별로 아름다워 보이지 않은 기 싸움의 원인은 내기골프에서 흔히 사용되는 더블 업 (전 홀의 상황에 따라 다음 홀의 내기 금액을 두 배로 증가 시키는 것) 규정의 불합리에서 비롯된다.

4명의 골퍼가 게임을 할 때 전 홀에서 한 사람이라도 트리플 보기 이상을 하거나, 버디를 하거나 혹은 3명 이상 동타를 이룰 경우 다음 홀의 내기 액수를 더블로 올린다는 것인데, 이건 무조건 강자에게 유리한 일방적 규정이다. 하수가 간신히 그 홀에서 잘 쳐서 상수들과 동타를 이루고 지갑을 안 열게 되었는데 “다음 홀에서는 더블 업이여” 하면 다음 홀은 십 중 팔구 하수가 잃게 마련이고, (두 개 홀을 연속해서 잘 치는 확률은 고수가 단연 높다.) 심리가 크게 작용하는 골프의 특성상 잘 치던 사람이 갑자기 무너지는 확률 보다는 그날 샷이 무딘 사람이 또 다른 실수를 범할 확률이 많기 때문에 트리플 보기를 한 사람에게 다음 홀은 더블 업이라는 규정은 트리플 보기를 하여 심리적인 흥분상태인 하수를 또 다시 구렁에 빠뜨리는 일방적으로 상수에게 유리한 조항이다. 앉은뱅이 턱을 차는 적반하장의 룰이다. 이 경우 더블 업의 선택권은 트리플 보기를 한 사람이나 하수에게 만 주어져야 한다. 상수나, 돈을 따고 있는 사람에게는 어떤 변경의 권리도 주어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내기를 할 경우 핸디갭의 차이에 따라 게임 방식에 합리적인 기본 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몇 가지를 들어보자.

하나, 스트로크 핸디를 10개 이상 주고 받아야 하거나 처음 라운딩을 하는 사람과는 원칙적으로 내기 게임을 안 하는 것이 좋으나 부득이 한 경우 적어도 스트로크 방식의 내기 게임을 해서는 안 된다. (어린아이 손목을 비트는 것과 같다.) 스킨스 게임 같은 홀 매치 게임을 하라. 운이 작용하는 스킨스 게임은 실력 만으로 승부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둘, 핸디를 10개 이하에서 주고 받고 내기게임을 한다면, 핸디가 낮은 고수이거나 게임에 이기고 있는 골퍼는 절대 중간에 내기 돈을 올려서는 안 된다. 몇 푼 잃었다고 고수임에도 불구하고 한번에 게임을 뒤집고자 내기 돈을 올리는 횡포를 부려서는 안 된다는 야그다. 이 행위는 이미 주어진 핸디를 삭감하겠다는 태도고 상수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게임을 하겠다는 비겁한 시도다. 내기 금액에 대한 변경의 권리는 무조건 하수에게만 주어져야 한다.

셋, 욕심 컷 변경이 가능한 내기 골프를 원한다면 반드시 같은 핸디의 동반자와 쳐라.

넷, 핸디 조정을 한 두 마디로 결정할 수 없는 사이라면 절대로 내기 게임을 하지 말고, 가능하면 라운딩 자체도 사양하는 것이 좋다. 즐기고자 한 골프가 스트레스를 가져 온다.

이런 생각의 바탕에는 핸디캡이란 원래 불리한 사람에게 그 불리를 보상하는 의미가 담긴 것이기에 부익부 빈익빈의 게임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평소, 연습은 등한시 하면서 부족한 실력을 핸디로 만 채우려 드는 일부 하이 핸디갭퍼의 행태도 칭찬받을 일은 아니다. 많은 연습과 노력을 통해 이룩한 고수의 실력을 핸디로 몽땅 삭감하고자 덤비는 모습은 마치 가진 자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고 데모 만 일삼는, 왜곡된 평등사상에 물든 한국의 일부 노동 조합의 행태와 다를 바 없다.

핸디, 받는 사람은 주는 데로 받고, 주는 사람은 달라는 데로 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