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3

kimswed 2009.05.03 03:24 조회 수 : 2957 추천: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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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라 봐,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지난주는 한국 골퍼가 세계를 제패한 주였읍니다.

신지애 선수가 LPGA 대회를 우승하고 양영은 선수가 PGA에서 우승하는, 커플 승전보가 들려왔습니다.

두 선수 다 대단 합니다. 오늘은 이 애기로 골프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시죠.

신지애 선수, 뭐 그런 선수가 다 있나 싶네요. 고작 2주전에 9 오버를 치며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셔 우리에게 심각한 충격과 함께 적잖은 실망을 안겨준 그녀가 2주 후에는 우승컵을 거머쥐고 환한 미소를 날립니다. 일주일 전 태국에서 열린 대회에서도 그녀의 성적은 명성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13위인가 했죠. 이제는 신지애도 골프의 수수께기에 빠져 한동안 슬럼프를 겪는 것이 아닌가 우려가 자연히 생겼었습니다. 그리고 싱가폴에서 열린 이번 대회, 한국에 별로 호의적이지 않은 HSBC라는 영국계 은행에서 주최하는 메이저급 대회의 1,2 라운드 역시 이븐파와 1 오버파를 치며 부진이 지속되는 감을 주었는데 3라운드에 들어 갑자기 사람이 바뀐 것처럼 펄펄 날기 시작합니다. 보기를 하나도 기록하지 않고 6개의 버디를 만들어 졸지에 순위를 공동 5위로 끌어 올립니다. 그러나 3라운드에서 선두를 달리는 호주의 케서린 헐이라는 선수는 이미 11언더파로 신지애와 6타 차이로 선두를 질주하고 있던 터라 우승은 힘들게 보였습니다. 오히려 유선영이라는 한국 선수가 2타 차 3위에 올라 그 선수의 선전에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거참, 신지애의 별명이 파이널 퀸이라는 것 아시죠? 마지막 날 무섭게 몰아쳐 우승컵을 앗아간다고 붙여진 별명이라고 합니다. 역시 그 별명답게 신지애 선수는 마지막 라운드에서도 6개의 버디를 기록하며 제풀에 무너진 선두권의 선수들을 다 제치고 우승컵을 들어 올립니다.

다른 선수들 입장에서 보면 신지애는 기를 질리게 만드는 선수입니다. 처음에는 슬슬 노는 듯 한가하게 치다가 마지막 날이 다가오면 무섭게 집중하며 반드시 넣어야 할 퍼팅을 넣으며 우승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다가서는 모습이 마치 계단을 올라 한발한발 다가오는 유령처럼 선두권의 선수들에게 공포마저 안겨줍니다. 처음부터 몰아치며 확실하게 우승을 하곤 하던 세계 랭킹 1위, 멕시코의 오초아에게서 느끼는 체념과는 전혀 다른 공포입니다. 체념은 다음의 기회를 노릴 수 있게 만들지만 공포는 기회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절대 무게입니다. 손에 쥐고 있어도 언제 날아갈 지 모른다는 불안이 스며들며 스스로 손을 놓아 공포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게 만드는 고차원의 압박입니다. 필드를 지배하는 능력을 지닌 타이거 우즈나 잭니콜라스 등 세기의 골퍼들만이 지닌 특징입니다. 사실 신지애의 우승은 단지 언제냐 하는 시간 문제였지, 하느냐 못하느냐는 존재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우승 컵을 거머쥔 신지애의 수줍은 미소 속에는 필드를 지배하는 최고 실력자의 자부심이 담겨 있습니다. 한 세기에 한 명 나오기 힘든 여자 골퍼로 그 이름을 떨칠 것으로 기대합니다. 

신지애가 우승 소식을 전해주자 그 다음날 아침에는 양용은이 응수를 합니다.
PGA 혼다클래식에서 9언더파로 PGA 생애 첫 우승 소식을 전합니다. 양용은 선수의 별명은 바람의 아들입니다. 제주가 고향이라 생긴 이름이죠. 늦은 나이에 골프채를 잡고 4차례나 프로 자격시합에서 고배를 마시다 다섯 번째 프로 자격을 딴 후 2년 후인 2002년 한국에서 프로로써 생애 첫 우승을 합니다. 그때 최경주 선수는 PGA에 진출 2년 만에 첫 우승을 거둔 시기입니다. 그리고 국내에서 몇 차례 우승을 거둔 후 양용은은 일본으로 떠납니다. 일본에서 2년 동안 활동하며 4승을 기록하고 2006년 11월 유럽피안 투어에서 6년 승을 달리던 타이거 우즈를 꺾고 깜짝 우승을 차지하며 양용은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립니다. 그 후 2년간은 다시 고난의 시간이었습니다. 유럽피안 우승으로 획득한 세계 하이 랭커 자격으로 2007년 PGA 대회에 9번 출전하지만 마스터스 대회 30위가 최고의 성적이었습니다. 이미 2005년 과 2006년 PGA 등용문 Q스쿨에서 고배를 마신 적이 있던 양용은은 2008년 시즌을 위해 다시 Q스쿨에 도전하여 8위로 통과합니다. 그러나 시즌은 참혹했습니다. AT&T 클래식에서 거둔 9위가 최고의 성적이었고 결국 다시 다음 시즌을 위해 Q스쿨을 또 치러야 했죠. 지옥의 6라운드 Q스쿨을 18위로 통과하여 다시 자격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출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항상 대기자로 명단을 올린 후 기권자가 나오면 들어가는 처지인 모양입니다. 지난 달 소니 오픈에서는 대기만 하다 결국 출전도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도 대기자로 기권자를 기다리다 간신히 출전을 하게 된 것인데 이 기회를 양용은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우승.
마지막 라운드 마지막 홀에서의 샷은 정말 간장을 녹이는 긴장감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양용은과 선두를 다투던 롤링스라는 투포환 선수 같은 거구의 미국 친구는 8언더파로 이미 라운드를 마친 상황, 마지막 18홀에 올라 선 양용은은 9언더로 1타 차 선두입니다. 이 홀에서 파 만하면 우승입니다. 마지막 18홀은 540야드 파 5홀입니다. 웬만하면 다 2온이 가능한 홀이죠. 티샷을 페어웨이로 보내고 세칸 샷도 그린을 노리지 않고 아이언 샷을 합니다. 그리고 약 110야드 서드 샷이 남았는데 이때 양 선수의 얼굴은 긴장의 빛이 역력했습니다. 하긴, 보는 사람도 가슴이 떨리는 판인데 선수는 어떻겠습니까? 짧은 샷은 쉽게 왼쪽으로 당겨지는 거 아시죠? 양용은 선수 역시 극도의 긴장감 속에 날린 세번째 샷을 하자마자 오른 손을 놓고 얼굴을 찌푸립니다. 그런 양용은의 안타까움을 외면하듯 공은 왼쪽으로 날아갑니다. 그러나 그 시합을 지켜보는 한국인의 염원이 작용한 듯, 공이 그린을 벗어나지 않고 핀과는 왼편 약 10미터 이상 먼 곳에 떨어집니다. 자신의 긴장을 자각한 듯 그린으로 향하는 동안 물을 마시며 심호흡을 깊게 하며 정신과 근육을 이완시킵니다. 만만찮은 거리, 2펏을 하기 위해 신중하게 라이를 읽는 양 용은 선수, 그린 위에서는 평소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루틴을 거치고, 드디어 운명의 펏, 부드럽게 퍼터를 출발한 공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휘어지는 라인을 따라 흐르다 내리막 전에 잠시 멈추듯 하다가 다시 가속을 하며 홀 쪽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홀의 약 50센티 우측에 공이 섭니다. 이 펏을 지켜보는 1타 차 2위 롤링스는 실망한 얼굴로 클럽 하우스로 걸음을 옮깁니다. 우승을 확신하는 양용은 선수의 어퍼컷 세레머니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참피온 펏이 꽝하고 홀의 뒤 벽을 강하게 맞고 쇳소리를 냅니다. 환호, 그 자체였습니다.

양용은 선수가 대견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끈기로 드디어 꿈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집안 사정으로 대학을 가는 대신 골프장에서 일하게 된 것이 그의 인생을 골프에 바치게 된 계기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골프 인생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천재 소리는커녕 각종 프로 관문 테스트를 한번에 통과한 적이 없습니다. 선수로써는 그리 타고난 재능이 있던 친구가 아닌 셈이죠. 한국의 프로 등용문도 4번이나 떨어졌고 PGA도 2번이나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결국 그는 정말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 앞에 막아선 장애를 하나씩 넘어섭니다. 한국, 일본, 유럽 그리고 세계 최고의 PGA투어까지 우승의 족적을 남기며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최경주 선배가 걸었던 길을 그대로 답습하듯 밟아갑니다. 이제 양용은 선수는 2010년까지 투어 시드가 보장되었습니다. 아마도 더 이상 Q스쿨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듯합니다.
그런 믿음은 그가 천부적 재능을 지난 골퍼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각고의 노력으로 쌓아 올린 땀과 눈물의 성이기에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난 주는 참 행복한 한 주였습니다. 봐라 봐,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한국 골프 계의 경사를 보며 골프를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책의 제목이던가요 “하나님 내게 골프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골프를 즐기는 사람은 이미 하늘이 주신 또 다른 복을 받고 살아가는 셈입니다. 충분히 감사할 만합니다.
자, 헤이즐럿 커피 한 잔 할까요? 골프로 축복을 내려주신 하나님을 경외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