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5

kimswed 2009.05.03 03:26 조회 수 : 3399 추천:738

extra_vars1 ||||||||||||||||||||||||||| 
extra_vars2 ||||||||||||||||||||||||||||||||||||||||||||||||||||||||||||||||||||||||||||||||||||||| 


운칠 기삼

어때? 오늘 공 잘 맞았어?
웅 그냥 그런대로 맞았어, 드라이버는 잘 맞는데 아이언이 나빠서 좋은 스코어는 안 나왔어.
그래 다음에는 잘 맞겠지 뭐.

어느 골퍼들이 서로의 게임이 끝난 후 지나치다 만나 나누는 인사말입니다.
어떻습니까? 이상한 점 없나요? 별로 없죠?

그럼 이 대화를 영어로 풀이하면 어떨까요?
Hey guy, how about the game? Did you do well?
Well, so so, I hit driver well but made a lot of mistake with iron shot. So, I did not get good score.
Oh, sorry about that but don’t worry. You can get good game soon again
대강 이렇게 될 겁니다. 좀 엉성한 영작이라도 봐주시기 바랍니다.

내 의지가 담긴 행동을 능동이라고 하고,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외부 요인에 의해 행동이 이루어질 때 이를 수동이라고 합니다.
다시 위에 있는 영문 문장을 좀 살펴보세요. 전부 능동태 문장입니다. 주어가 확실하고 그 주어가 행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서두에 나오는 한글 문장을 보십시요. 전부 수동태 문장입니다. “맞는다” 라는 동사가 수동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 동사의 주어가 직접 행동을 할 수 없는 공이기 때문에 주어가 바뀌지 않는 한 수동태 문장을 쓸 수 밖에 없습니다.
그 한글 문장을 엄격하게 해석한다면 내가 스스로 드라이버를 잘 때린 게 아니고 드라이버가 자기 스스로 잘 맞았을 뿐이고 아이언도 내가 잘못 친 것이 아니고 아이언이 스스로 잘 안 맞았을 뿐이다 라는 해석이 됩니다. 실제로 채를 휘두른 사람의 책임이 아닙니다.

‘맞는다’ ‘맞았다’ 라는 수동적인 단어는 주로 골프에서만 사용됩니다.
다른 운동에서는 이런 말을 안 씁니다. 테니스에서도 ‘잘 치다’ ‘못 치다’가 되고 야구 역시 ‘잘 치고’ ‘잘 던지고’ ‘잘 잡고’ 등 모두 능동적인 단어를 씁니다. 농구도 마찬가지로 잘 넣었다, 잘 던졌다 하겠죠. 어떤 운동에도 수동적인 단어로 그 행동을 표현하는 방식은 없습니다. 골프가 유일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 날까요?
골프 공이 가만히 서있어서 그런가요? 아무튼 한국어로 표현되는 골프에서는 주어가 치는 사람이 아니고 무생물인 공입니다.

이런 저런 사례를 들다 보니 저도 헷갈립니다. 도대체 왜 한국인들은 자신이 골프를 치면서 주어를 공으로 바꾸어 말할 까요?
혹시 한국 골퍼들은 자신의 샷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무의식적으로 담고 플레이 하는 것은 아닐까요? 내가 친 게 아니고 공이 맞은 것이다 라고 표현함으로 자신을 국외자로 만들어 실수에 대한 책임을 면하고자 함인가요?

그래서 이런 시험을 해보고 싶습니다.
“맞았다”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 “오늘은 공이 잘 맞아” 가 아니라, “오늘은 내 샷이 좋아” 로 바꾸고 “오늘 왜 이렇게 안 맞지” 가 아니라 “오늘 왜 이렇게 못 치지” 라고 말하는 방식을 능동적으로 바꾸면 골프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궁금합니다.
짧은 퍼트를 놓치고 ‘젠장, 안 들어가네’ 하고 푸념하지 말고 ‘젠장, 그런 짧은 거리도 못 넣었네’ 하고 책임 소재가 자신에게 있음을 상기시키는 어법을 사용한다면 골프 스코어가 좋아 질까요?
 
아마 이렇게 말투를 바꿔서 그 결과가 달라지는 사례는 그린에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넣는다’ 라는 말을 할 때와 ‘들어간다’ 라는 말을 할 때 나타나는 행동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넣는다는 말은 내가 공을 홀에 넣는다 가 되어 결과에 대한 책임 역시 자신에게 돌아옴을 느끼며 가능한 집중하려고 노력하지만 후자의 경우 공이 홀에 들어간다 가 되어 심리적으로 (공이 알아서) 들어갈 수도 있다는 요행을 기대하는 부분이 커지게 됩니다. 그렇게 다른 마음으로 임하는 퍼팅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확률적으로 전자의 경우가 홀에 공을 넣을 확률이 훨씬 높다고 믿어지지 않습니까?

골프는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죠. 운이 7할이고 기술이 3할이다 라는 얘기인데 고스톱에서 유래한 말로 보이는데 골프에서도 흔히 인용됩니다. 정말 골프는 그렇게 운이 작용하는 게임인가요?
사실 골프를 제대로 표현하자면 기칠기삼이 될 것입니다. 운이 아니라 정신을 나타내는 기(氣)가 7이고 기술을 의미하는 기(技)가 3이라는 말이죠. 그렇습니다. 골프는 운이 작용하는 게 아니고 정신의 기가 작용합니다.
이렇게 유추하다 보면 우리가 왜 수동적인 단어를 사용하고 행동하는 주체를 공에게 넘기는 버릇이 있는지 알 뜻합니다. 즉 우리는 골프를 운이 작용하는 게임으로 인식하고 싶은 것입니다. 자신이 골프를 못 쳐서 남에게 진다는 자괴감을 던지고 단지 내가 운이 없어 공이 안 맞았다 라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야 스트레스도 덜 받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이 굳어지면 발전이 없어집니다. 제가 어프로치로 핀 가까이 붙이면 운이 좋다고 말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 골프친지 20년이 다가오는데 아직도 백돌이 신세를 면치 못합니다. 샷을 운으로 생각하는 한 절대로 샷이 좋아질 턱이 없습니다. (반성해라 김사장).

자 이제 슬슬 결론이 내려집니다. 골프는 운이 아닙니다. 운보다는 정신의 기(氣)가 훨씬 크게 작용합니다. 그러니 요행을 바라는 어투를 버리고 자신의 의지를 확인하는 능동적인 단어를 사용하여 스스로 기를 높이는 훈련을 해 봄직합니다.
친다, 때린다, 넣는다, 굴린다 등등, 자신이 주인이 되어 골프를 주도하며 그 결과에 책임지는 자세를 갖는다면 스코어에 관계없이 정신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책임 있는 골프를 즐길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정신이 골프에 작용하는 영향력이 얼마나 지대한지는 말씀 안 드려도 다 알고 계십니다.
이제부터 골프는 ‘(공이) 잘 맞는다’가 아니고 ‘(내가) 잘 친다’입니다. 그래서 오잘공 (오늘 제일 잘 맞은 공) 아닙니다, 오늘 제일 잘 친 샷 (오잘샷)입니다. 한문으로는 금일호타(今日好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