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6

kimswed 2009.05.03 03:27 조회 수 : 3608 추천: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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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에서의 만찬

골프 한 라운드는 몇 홀 입니까? 물론, 당근, 18홀 입니다 
어느 블러그에 뜬 글을 보니 한국의 어느 골프장에는 19번째 홀이 있는데 18홀을 마치고도 아쉬움이 남은 골퍼들을 위해 19홀을 만들어 아쉬운 마음을 일부라도 풀라는 뜻으로 준비했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아니니 그냥 믿고나 말거나 하며 넘기도록 하죠.

그런데 실제 우리들의 골프 라운드는 과연 몇 홀로 되어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저는 20홀이라는 생각입니다.
정규라운드가 18홀이고 사전 1홀과 사후 1홀 해서 모두 20홀입니다.

사전 1홀이라는 것은 정규 라운드를 시작하기 전에 선행되는 만남입니다.
일종의 탐색전이자 준비과정입니다. 식사로 비유하자면 주 메뉴가 나오기 전에 입맛을 돋우는 에피타이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을 0번 홀이라고 명명하도록 하죠.
0번 홀에서는 곧 필드에서 4-5시간을 함께 보내야 할 정겨운 동반자와 만남의 인사를 나누고 커피라도 한잔 들면서 환담을 나누며 서서히 본 게임의 열기를 높여가는 과정을 밟습니다. 서로 그 동안 안부를 묻고 골프 실력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지 살피며 이제 곧 적으로 등장할 동반자의 동태를 파악하는 지피(知彼)의 시간으로 활용되기도 하고, 골프장에 붙어있는 연습장에 나가 가볍게 몸을 풀어주며 샷을 점검하는 지기(知己)시간으로도 사용됩니다. 이렇게 지피지기를 하면 어찌 되죠? 백전 백승이라는데, 골프에는 잘 적용되는 격언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장갑을 벗으면 웃을 수 있는 확률이 훨씬 높아지겠죠.

그런데 0번 홀에는 절대로 얼굴 안 비치고 티 오프 타임이 임박해야 헐레벌떡 숨찬 모습으로 1번홀 티 박스에 직접 나타나는 친구들이 있죠?
어쩌다 한 두 번이 아니고 매번 이런 일이 일어나는 친구라면 아마도 그리 훌륭한 골퍼로 칭송 받지는 못할 겁니다. 이런 사람이 골프를 잘 친다면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어떤 운동이든지 본 게임을 하기 전에 몸을 풀어주는 준비운동이 필수인데 헐레벌떡 티 오프 타임 맞추기에 급급한 사람이 좋은 게임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골프는 맨탈이 70프로 이상 차지하는 운동인데 시간적 여유를 못 갖는 골퍼가 정신적 여유를 가질 리 만무합니다. 스스로야 뭐 일단 티 오프에 늦은 것은 아니니 뭐 그리 미안해 할 필요 없다며 자위를 하겠지만 그런 생각으로 자기 합리화를 찾는 동안 다른 동반자들은 벌써 앞으로 벌어질 라운드에 집중을 하고 있으니, 이미 출발이 늦은 셈입니다. 당연히 라운딩 도중에 그 대가를 치르기 마련입니다.
기본적으로 라운딩을 함께 할 동반자와의 인사 정도는 티 박스에 오르기 전에 하는 것이 좋지 않을 까 싶습니다. 안부인사를 겸한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오늘의 게임 방식에 대한 의견도 교환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오늘 라운드의 전체 일정을 대강 정하게 되고, 하루를 함께 즐길 마음의 준비를 하는 시간, 귀한 자리 아닌가요?

그렇게 시작된 골프 라운드, 뜨거운 열기 속에 정규 18홀을 마칩니다.
간단히 맥주 한 모금으로 게임의 열기를 식히고 샤워를 마치고 이제 식사를 겸한 라운딩 후기를 나누는 마지막 홀이 시작됩니다. 디저트를 먹을 시간입니다. 골퍼들은 이런 자리를 19홀이라고 부릅니다.
19홀은 동반자와의 친교시간입니다.
이 시간에는 골프 라운드의 무용담을 나누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를 들면서 메인디쉬에 대한 평가를 내리듯이 말이죠. 17번 홀에서 OB 만 안 나도 70대를 치는 건데, 마지막 홀의 드라이버가 300야드 나간 것을 봤느냐, 이번에는 졌지만 다음에는 쉽지 않을 게다, 등등 게임 중에 일어난 사건을 아쉬움을 담아 늘어 놓습니다. 혹시, 게임 중에 룰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면 그 것 역시 다시 한 번 리뷰하는 토론시간이 되기도 하고, 다음 라운딩에 대한 약속을 정하는 등의 의견을 교환한 후 세상사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골퍼가 아닌 사회인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지는 감성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0번 홀에서 나오는 대화의 주제가 주로 골프에 한정되어 있다면, 19홀에서의 대화는 주제가 특별히 규정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을 통해 자신이 어떤 동반자들과 골프를 공유하고 있는지 깨닫게 되는 것이죠. 골프는 잘 못해도 엄격하게 룰을 지키는 올곧은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느니, 골프 실력만큼 인격도 높은 내공을 쌓은 인물이라느니 하는 등의 느낌 말이죠. 또한 자연스럽게 각 개인의 정치적 성향, 종교적 가치관, 직업과 가정사 등 지극히 개인적인 애기도 나누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중한 19 홀을 별 생각 없이 생략하시는 골퍼들이 있습니다. 라운드 후 당연히 함께 식사를 나누는 것으로 인식된 관례를 깨고 바쁜 일이 있다며 제 길을 가는 골퍼. 마치 만찬에 와서 주 메뉴만 먹고 디저트도 생략하고 자리를 뜨는 것과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참 쿨(cool)해 보이기도 합니다. “게임 끝났으면 그걸로 충분하고, 별 도움 안 되는 무용담을 나눌 시간이 아깝고, 그래서 나는 이제 그만 갈뿐이고, 생각대로 하면 되고,” 뭐 이런 결연한 의지를 가진 친구로 보이죠.
그런데 만약 그 친구가 라운드 시작 전 0번홀 만남도 생략하고 티 박스에 헐레벌떡 나타난 친구라면, 자신도 모르게 또 버려진 동반자들 잠시 그 친구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그것이 아쉬움이든 그리움이든 말입니다.

이렇게 골프라는 게임은 참 요구하는 것이 많은 간단치 않은 운동입니다.
육체적 효과만을 누리기 위한 운동도 아니고, 그렇다고 또 승부만을 가리기 위한 게임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니 반드시 동반자와의 교분이 필수 조건입니다. “당신이 골프를 한다면 이미 내 친구” 라는 말처럼 골프를 매개로 좋은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어쩌면 골프 그 자체보다 더 귀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골프는 후미진 중국집에서 혼자서 짜장면으로 때우는 간이 식사가 아닙니다. 서로 존중하고 배려해야 할 소중한 친구들과 격식을 갖춘 정장을 입고 마주한 필드에서의 만찬입니다.

이제 왜 골프에는 그토록 귀찮고 복잡한 에티켓과 룰이 요구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지 않습니까?
 
자, 이렇게 0번 홀의 에피타이저와 18홀의 메인디쉬 그리고 19홀의 디저트까지 들고나면 이제 오늘 하루 골프 라운드의 대 장정이 끝나게 됩니다. 아쉬운 이별의 인사를 나누고 밤의 열기가 시작되는 사이공 거리를 뒤로 하고 각자 집으로 향합니다. 다시 필드에서 만날 약속을 상기하며 말이죠.

어떻습니까? 골프 한 라운드는 18홀이 아니고 20홀이 된다는 것, 그럴 뜻 한가요? 
그런데, 오늘 마시는 에스프레소는 어째 좀 씁쓰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