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8

kimswed 2009.06.14 08:31 조회 수 : 3328 추천: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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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나쁜 골퍼

골프는 머리가 나빠야 잘 친다는 말이 있다.
뭔 말인가? 풀이를 하자면 라운드 중 실수한 샷은 기억하지 말고, 스윙 시에는 한가지만 염두에 둘 정도로 단순해야 한다는 말인 것 같다. 실수를 기억하고 있으면 그것이 머리에 각인되어 스윙 시마다 밀려드는 불안감으로 또 다른 실수가 반복적으로 나올 수 있으니 그런 실수를 금방 잊을 정도로 단순해야 하고, 머리 좋은 사람은 쓸데없이 여러가지를 동시에 생각하여 스윙의 일관성이 무너질 수 있으니 좋은 머리보다는 그저 한가지만 몰두할 수 밖에 없는 좀 둔한 머리의 골퍼가 공을 잘 칠 수 있다는 역설적인 논리다.

유명 프로 골퍼 탐 왓슨이 한동안 슬럼프에 빠져 예선 탈락을 밥 먹듯이 하고 있을 때 그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샷을 할 때 백 가지 생각이 다 떠오른다”고 털어놓았다. 생각이 많아지면 몸은 어느 생각에 따라야 할지 모르고 뒤죽박죽이 되어버려 정작 목표점을 잊고 공은 제멋대로, 절이든 교회든,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만 향한다는 것이다. 너무 머리를 많이 써서 자청하는 불상사다.
반면에, 공만 보면 아무 생각이 없는 것처럼 거침없이 때려대는데 공은 핀으로 항상 향하는 골퍼도 있다. 유명 여성 프로골퍼 크리스티 커의 스윙이 바로 그런 전형이다. 특히 그녀의 퍼팅 스트록을 보고 있자면 너무 경솔하게 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거침이 없다. 그런데 그녀의 퍼팅 순위는 기백명의 여성 골퍼 중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페어웨이 안착률과 그린 적중률도 상위를 자리잡고 그 결과, 상금순위도 2위를 달리고 있다. 이 선수의 경우 타고난 둔한 머리 때문인지 아니면 의도적인 훈련에 의한 것이지 모르지만 아무튼 골프를 단순하게 만들어 쓸데없는 사고의 개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골프는 생각 없이 대충 치는 것이 적합한 방법인가?
골프를 정신적으로 언급한 서적들을 뒤져보면 적당한 각성(覺性, 정신이 깨어 있음)수준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즉 너무 긴장 해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너무 이완되어서도 안 된다는 말이다. 즉 머리를 써야 하는 이성적인 사고가 너무 개입되어서도 안되지만 아주 없어서도 안된다는 뜻인 것 같다.
 골프는 대다수의 다른 운동과는 달리 순간적인 반응을 요구하는 운동이 아니다. 골프는 정지된 공을 가격하는 운동이니만큼 감각적인 순간 반응보다는 의식적으로 만드는 정형화된 동작을 의도적으로 수행하는 정적인 운동이다.
감각적인 운동신경을 사용하여 반응하는 다른 운동은 게임 도중에 다른 생각이 개입될 여지가 적지만, 골프는 샷을 할 때도 정지된 공을 바라보고 어떤 샷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려해야 하고 샷과 샷 사이에 존재하는 정적인 시간에는 드넓은 코스 끝자락에 감춰진 듯 보이는 홀을 어떻게 공략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전력적 사고를 필요한 운동이다.
그렇다고 골프에서 속도가 무시되는 것은 아니다. 일단 마음을 정하고 스윙을 시작하면 아무리 길어야 1.5초 이내 엄청난 순간 속도를 만들어 클럽을 휘둘러야 한다. 그런 빠른 속도의 스윙에서는 역시 감각적인 운동신경이 적절히 작용해야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골프의 특성은 바로 이것이다. 정(靜)과 동(動)이 함께 공전하며, 감각적 운동신경을 작동시키는 감성과 치밀한 판단에 필요한 이성이 공존하는 게임이다.

그럼 골프에서 감성적인 상태란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골프에서 가장 빠른 육체적 동작, 즉 스윙을 행하는 순간이다. 스윙에 필요한 근육이나 자세를 세세히 계산하고 관리하는 이성적 사고를 접고 그저 공을 목표지점으로 날려 보내는데 필요한 감성적 기능을 최대한 작동시키는 상태를 말한다. 스윙 중에서도 이런 감성적 감각이 가장 강하게 작용하는 것은 풀 스윙이다. 이것저것 생각할 것도 없이 최대의 힘으로 휘두르는 순간이니 상대적으로 이성적 사고의 역할이 적다.
그러나 숏 게임의 경우, 30야드나 50야드를 보낼 때 스윙의 크기를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고 그에 맞춰 의도적인 동작을 해야 하니 다른 사고가 개입될 여지가 다른 샷보다 많다. 사고의 개입이 많을수록 스윙에 필요한 근육의 작용을 방해 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얘기다. 그래서 골프 클럽이 14개나 있는 것이다. 긴 클럽 하나로 스윙의 크기를 조절하며 게임을 해도 되지만 그런 의도적인 스윙이 만만치 않으니 가능한 가장 감성적인 동작인 풀 스윙으로 게임을 진행하도록 각기 다른 클럽이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점점 게임이 치열해지며 앞으로 전개될 게임의 결과에 대한 불확실이 높아지고 잘해야 한다는 이성적인 압박(긴장감)이 커지면서 스윙이 엉기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짧은 스윙의 순간에 잡다한 신호를 뇌에 전달하게 되면 뇌에서 근육으로 전달하는 경로를 혼란케 만들어 스윙을 망치게 한다는 얘기다. 즉 스윙 시에는 가능한 사고의 개입을 막는 것이 스윙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는 방안이 된다.

우리는 흔히 샷에 집중하라는 얘기를 한다. 어떻게 어디를 집중하라는 말인가? 공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이 집중인가? 이때 말하는 집중이란 바로 감성을 살리라는 말이 아닐까 쉽다. 잡다한 오만 가지 생각 다 지우고 목표점만을 염두에 두고 그 동안 연습에서 익힌 스윙을 믿고 그저 감성적으로 클럽을 던지라는 말이다.
흔히 집중을 하라고 하면 긴장감을 높이라는 말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긴장감을 높이면 각성 수준이 높아져 근육이 긴장되어 샷이 더욱 꼬이게 만든다. 즉 거꾸로 샷을 방해하는 수행을 하는 셈이다. 집중을 하라는 말은 테니스 선수가 날아오는 공을 향해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듯이 충분히 감성적, 감각적인 상태를 유지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코스 공략은 충분히 이성적이어야 한다. 코스 공략에 감성이 개입되면 숲 속에서 바늘 구멍 같은 틈으로 공을 보내고자 하는 무모함을 보이게 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럴 경우 목표점이 너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 샷에 대한 불안감으로 각성 수준이 높아져 샷이 더욱 꼬이게 된다. 그래서 거의 100% 실패한 샷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성적인 코스 공략이란 그런 경우 실패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고 우선 안전하게 페어웨이로 나간 후 연습장에서 치듯이 평탄한 페어웨이에서 다음샷으로 핀을 공략하는 게 성공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골프 스윙은 감성적(감각적)이어야 하지만 그 외의 시간은 이성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골프가 요구하는 맨탈 상태다. 그래서 골프 라운딩 내내 골퍼들은 감성과 이성을 교차적으로 사용해야만 한다. 마치 요들 송을 부를 때 진성과 가성이 교차하면서 조화를 이룬 하모니를 만들어 내듯이 감성과 이성이 균형적 조화를 이루어야만 원하는 골프 게임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맨탈 관리란 바로 이성과 감성의 교차를 효율적으로 시기적절하게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골퍼는 순간마다 전혀 머리를 사용하지 않는 근육 맨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이성적 사고가 차고 넘치는 신중한 천재가 되기도 하는, 심성적 카멜레온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암튼 참 복잡한 운동임이 분명하다. 

 

불행한 골퍼, 행복한 골퍼

요즘은 점점 골프가 싫어진다. 싫어지는 이유는 너무나 단순하다.
공을 생각만큼 잘 못 치기 때문이다.
특히 드라이버거리가 급격하게 줄은 후에 도무지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지 않으니 티샷부터 속이 상하고 남들보다 50야드나 뒤에서 두 번째 샷을 롱 아이언으로 준비할 때는 왠지 서글프고 심하면 서럽기까지 하다.
웬만한 남성들보다 두 배는 두껍고 튼튼한 이만기형 다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드라이버가 50야드나 적게 나가는 원인을 도무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연습을 게을리 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나는 대로 쥐 새끼 풀방구리 드나들듯이 자주 다니고 땀을 두어 바가지나 쏟으며 연습을 함에도 불구하고 바람 빠진 자전거처럼 도무지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수년 전만 해도 토너먼트에서 장타상을 타기도 하고 나름대로 거리에 관한 한 뒤질 것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불과 수년 만에 완전히 똠방 신세가 된 것이다.
그래도 드라이버 거리가 안 나서 골프가 싫어지는 것만은 아니고 생각대로 안 되는 골프를 치며 속상해 하는 너절한 모습을 동반자들에게 보여주는 자신이 싫어져 골프를 접을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원래 마음을 감추는 표정관리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유아적 성격의 소유자라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필드에서 필자의 얼굴만 보면 게임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뻔히 보인다.
이렇게 필드만 나가면 발가벗어야 하는 자신이 점점 싫어지는 것이다.
그런대도 누군가 라운딩을 하자는 전화만 오면 거절을 못한다. 전화하는 사람의 얼굴을 생각해서 거절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라운딩의 유혹을 스스로 떨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곤 또 나가서 진상을 치고 다시 속이 상해 돌아와 혼자 씩씩 거리며 울분을 삼키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싫어진다. 이럴 때는 정말 골프가 나쁜 이유가 100만 가지는 넘게 나온다.

골프 한 라운딩 하려면 거의 하루 일을 다 접어야 하고, 필드 한번 나서려면 아침부터 옷 챙겨야지, 혹시 연습하다가 채를 두고 온 것은 없는지 살펴야지, 우산은 있는지, 공은 어떤지, 장갑이나 티는 제자리에 있는지, 마치 어린아이 소풍 가듯이 일일이 챙겨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필드에 나가서도 동반자가 펑크는 안 내는지 늦지는 않는지, 게임은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등등 시작하기 전부터 고심이 많다.
진짜 골프가 싫어지는 상황은 필드에서 벌어진다. 드라이버를 치려고 티 박스에 서기만 하면 보이는 건 온통 숲이고 그나마 좁디 좁은 페어웨이 한가운데 장승처럼 버티고 있는 커다란 나무와 입 딱 벌리고 공아 어서 와라 하며 기다리는 해저드만 눈에 들어온다. 그러니 공이 제대로 갈 턱이 없다. 어쨌거나, 그런 두려움을 다 떨치고 공을 페어웨이 한가운데로 잘 보내면 동반자들, 말로야 굿샷을 외치지만 별로 진심이 담겨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첫 샷에 벌써 말과 마음이 다른 숨은 인격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만드는 것이 골프다. 어쩌다 공이 잘 맞아 파 행진을 계속하다 어느 홀에서 버디라도 잡아봐라. 전화번호를 지우겠다느니 모임에 나가는 것을 재고 해야겠다느니 험악한 공갈 협박이 스스럼 없이 나온다. 그렇다고 잘못 치는 샷이나 짧은 퍼팅을 놓치면 위로의 마음을 갖는가? 천만에 겉으로는 쯧쯧, 조금 짧았네 하며 안타까워하는 것 같지만 돌아서서 미소를 짓게 만드는 것이 골프다. 공이 잘 안 맞아 울화가 치밀어도 웬만하면 웃어야 한다. 승질 한 번 잘 못 부렸다가는 온 골프장에 매너 더러븐 녀석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젠장, 잘해도 탈, 못해서 화풀이 한번 내 뱉으면 그야말로 인간 말종이 된다.

라운드 도중 공이 숲 속으로 사라져 버리면 잘못하다가 사흘은 숲 속에서 헤매야 하고, 그나마 공이 모습을 안보이면 그 원망스러움이란 마치 자식 잃어버린 듯하다. 어쩌다 간신히 찾은 공이 나무 뿌리 위에라도 있어봐라. 순간적으로 ‘아, 1인치만 옮기면 되는데’ 하는 악마의 유혹이 밀려든다. 그걸 실행에 옮겼다가는 평생 골프장에서 사람 노릇하기 힘들어진다.   
라운딩을 마치고 장갑을 벗을 때 ‘아, 오늘 하루 잘 치고 잘 놀았다’ 하는 기분이 얼마나 드는가?
아무리 잘 쳐도 아쉬움은 남고, 못 치면 잔뜩 스트레스만 쌓아간다.
그렇다고 돈이 싼가? 회원이면 그래도 낫다. 그린 피가 없으니 18불 캐디피만 내면 되지만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지 않는가? 라운드 도중에 먹고 마신 음료수 값하며 라운드 후에 먹어야 할 저녁 값, 게임에서 터진 지출, 게다가 비회원이면 그린 피와 캐디 피를 합쳐서 100불 가량을 내야 한다. 이거 정말 장난이 아니다.

이런 온갖 장애를 무릅쓰고 골프를 쳐서 얻는 것은 무엇인가? 가끔 거래처 손님하고 치면서 오더라도 얻는다면 다행이지만, 그것도 잘못하다가는 더러븐 성질 다 보여 있는 오더도 사라질 지 모른다. 고작 확실하게 얻는 것은 약 10킬로 가까운 거리를 걸으며 건지는 건강상의 잇점인데 그것도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요즘 같은 우기에 비라도 잘 못 맞으면 지독한 베트남 감기 몸살에 열흘은 누워지내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이런 골프의 부정적인 모습만 크게 보면서도 골프장을 사흘이 멀다 하고 찾아 다니니 참 불행한 골퍼다.

그런데 왜 골프를 목숨을 걸고 치듯이 매달리는 가?
사실 나도 모른다. 인간이 만든 최고의 놀이가 골프라는 말도 있지만 아무래도 인간의 작품 같지는 않고 인간의 탈을 쓴 악마의 작품이 아닐까 싶다.
정말 싫어진 골프를 당분간 멀리 하고 싶은데 여의치가 않다. 원래 공이 안 맞을 때 라운드 요청이 많아진다. 보는 사람이 임자가 되는 지갑이기 때문이다. 어제 또 거절하기 힘든 형님 뻘 어른의 요청으로 필드를 나섰다. 그리고 또 머리가 돌아버리고 왔다. 좋은 분들을 만나 함께 라운딩을 즐기며 지냈는데 왜 이렇게 불행해 질까? 공이 안 맞아, 욕심을 채우지 못해서 느끼는 불행이다. 참으로 가벼운 인성이다.
 
어떤 이를 만났다.
핸디가 18개 정도의 그저 그런 골퍼고 품도 영 시원치 않아 간신히 보기 플레이는 면한 실력인데 라운딩 내내 그에게서 나오는 분위기는 스코어와는 달리 밝은 모습이다. 라운드 내내 얼굴 한번 찡그리는 것을 못 봤다. 필자의 상식으로는 두 가지 경우가 가능하다. 동반자들이 안보는 곳에서 인상을 쓰던가 정말 노련한 놀음꾼처럼 포카 페이스가 익숙한 분이던가.
자기 기준 밖에 모르는 불행한 골퍼인 필자가 물었다. “아주 즐겁게 공을 치십니다.”
“아 예, 저는 정말 골프를 칠 때 행복합니다. 제가 이만큼 골프를 잘 친다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 자랑스럽고 그래서 행복을 느낍니다.” 
이런, 고작 보기 플레이를 하는 형편에 스스로 골프를 잘 친다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도저히 필자의 상식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발언이다.
“저희 집사람은 골프 핸디가 8인데 저를 가르치는 것은 포기했죠. 그래서 저는 제가 골프에 영 재능이 없구나 생각했는데 지금 보세요, 보기 플레이 이하를 치지 않습니까? 이만 하면 됐지 더 뭘 바라겠습니까? 그리고 좋은 분들을 만나 함께 4-5시간을 필드에서 걸으며 대화를 나누는데 이만한 즐거움을 어디서 찾겠습니까? ”

에고, 에고, 마눌님보다 골프를 못 치고, 마눌님에게 골프 레슨 조차 거부 당하는 처지라면 필자는 이를 악물고 마눌님만큼은 치겠다고 덤빌 것 같은데 그 분은 자신의 수준에 스스로 만족하며 골프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이구먼, 행복을 찾는 비결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자긴 수준의 스코어에 만족하고 그 골프 자체를 즐기는 마음이 행복한 골퍼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자신의 주제를 알고 주제 넘는 희망을 갖지 않는 것, 그리고 동반자와 파란 잔디 위에서 한 마음이 되어 자연과의 도전을 즐기는 것이 바로 행복한 골퍼가 되는 비결인가?
어휴 모르겠다, 하지만 짐짓 노력은 해보자, 혹시 그 것이 불행한 골퍼의 신세를 면하게 만들 단초가 될 지 누가 알겠는가.

 

싱글 골퍼

모든 아마추어 골퍼의 꿈은 싱글 핸디캡퍼가 되는 것이다. 싱글 핸디캡퍼란 핸디캡이 한자리 수 즉 싱글 디지트 핸디캡(Single Digit Handicap)의 실력을 지닌 골퍼를 일컫는 말인데 각 코스에서 정해진 규정 파 스코어보다 9개 이하의 스트로크를 더 치는 골퍼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코스가 파 72로 정해져 있으니 싱글 핸디캡퍼란 그보다 9개 이하로 많은 스코어 즉 81타 이하로 치는 골퍼를 부르는 말이다. 골프에서의 싱글 핸디캡퍼는 군대로 치자면 장성급이다. 그만큼 어렵고 힘든 경지가 싱글 핸디캡이라는 실력이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가는 골프의 역사가 증명해준다.

한 홀에서 규정 파보다 한 타를 덜 치는 것은 버디라고 부르는 데, 이것은 마치 새가 공을 물고 간 것처럼 멀리 그리고 똑바로 쳤다는 의미에서 버디라고 불렀다. 그럴싸한 설명이다. 그리고 쉽게 수긍이 간다. 그러나 규정타 보다 한 타 더 치는 것은 보기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무슨 연유인가? 버디라는 발음에서 비슷한 단어를 찾아 사용했을 까?
아니다. 보기라는 단어의 어원은 보기 대령이라는 사람 이름에서 유래 되었다. 골프의 초기 스코틀랜드 지방의 보기 대령이라는 골프를 잘 치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골프 실력은 그야말로 대단하여 각 홀에서 규정타보다 평균 한 타 정도만 더 치는 실력자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규정타 보다 한 타를 더 치는 것을 보기라고 부르며 그의 높은 실력에 경의를 표했다는 것이다.

즉 그 당시에는 아마추어의 경우 보기플레이만 해도 초 일급 골프실력을 지닌 골퍼로 인정받았던 것이다. 하긴 현재 세계의 모든 골프 애호가 중에서 보기 플레이 이상의 실력을 가진 사람이 10%가 안 된다고 하니 보기 플레이어는 결코 허접한 골퍼가 아니다. 이렇게 보기 플레이도 하기 힘든 골프게임에서 보기플레이보다 훨씬 우수한 실력을 보여주는 싱글 플레이어는 정말 하늘의 별을 딴 것과 같은 높은 경지에 이른 골퍼를 의미한다는 야그다.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싱글 플레이어란 누구인가 살펴보자.
싱글 플레이어는 앞에서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우수한 골프 실력을 지닌 골퍼다. 그러나 진정한 싱글 골퍼는 단지 골프 실력만 우수한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그렇다면 진정한 싱글 골퍼란 또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가?
골프라는 게임은 아시다시피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니다. 다른 동반자와 함께 이루어지는 경기다. 사람들이 복수로 모인 곳에서는 그것이 상당한 규모의 단체이거나 혹은 임시로 모인 단순 모임이거나 관계없이 자연스럽게 누군가 리더가 세워지기 마련이다. 골프 라운딩도 마찬가지다. 4명이 모여 라운드를 치르는 골프섬에서도 누군가 리더가 생기기 마련인데 대다수의 경우 그 팀에서 가장 골프를 잘 치는 사람이 리더 역할을 맡게 된다.
골프장에서는 골프를 제일 잘 치는 사람이 존경 받고 그의 의견이 무겁게 받아들여지니 자연스럽게 싱글 골퍼가 리더로 나서게 되는 것이다. 즉 싱글 골퍼란 자신의 골프를 잘 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을 리드하고 또 모범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다.

골프라는 운동은 스코틀랜드에서 유래되어 미국을 거처 한국에 들어오다 보니 우리에게는 생소한 문화가 많이 녹아 들어있다.
엄격한 복장을 요구하는 전통을 비롯하여 동양적인 사고로는 낯설게 보이는 복잡한 룰과 생소한 예절들이 요구되는 것이 바로 골프다 보니 골프를 처음 대하는 비기너들에게는 누군가의 가이드나 조언이 필요한 경우가 종종 생기게 된다.
특히 골프 룰을 익히기도 전에 공만 칠 줄 알면 무작정 필드로 나서는 대다수의 한국 골퍼들이 제대로 된 골프를 즐기기 위하여는 더욱 경험 있는 가이드의 존재가 절실히 필요하다. 바로 그런 가이드의 역할을 요구 받는 사람이 바로 싱글 골퍼다.
싱글 골퍼는 필드 예절에 익숙치 못한 비기너에게 골프의 룰과 예절을 알려주고, 라운드 도중에 일어날 수 있는 룰에 대한 논란에 최종 판결을 내리고, 혹시 내기라도 할라치면 내기의 기준을 정하는 것 역시 싱글 골퍼의 몫이다.
그래서 싱글 골퍼는 적어도 필드에서는 모든 이의 존경을 받고 자랑스럽게 어깨를 펼치는 것이다. 캐디들도 자신이 담당하는 팀이 진행이 늦고 이런 저런 문제가 생기면 일단 그 팀에서 가장 골프를 잘 치는 사람에게 당부를 하게 된다. 또 동반자들 역시 자신들 끼리 문제가 생겼을 때 최종 판단을 싱글 골퍼에서 문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만큼 싱글 골퍼란 단지 혼자 자신의 공만 잘 쳐서는 되는 일이 아니다. 자신과 함께 플레이 하는 동반자의 행동 거지까지 도의적 책임을 지는 리더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한국에서 골프를 처음 배울 때 싱글 골퍼 한 분을 모시고 라운딩을 하는 것이 큰 영광이었다. 당시에는 그린피도 그리 비싸지 않은 상황이라 싱글 골퍼의 그린 피는 당연히 다른 동반자가 나눠서 내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었고, 라운드가 끝난 후에 한 수 잘 배웠다고 고개 숙여 인사하고 언제 다시 모실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싱글 골퍼에 대한 예의라고 알고 있었는데, 베트남에 와보니 사정이 정말 180도 달라졌다. 베트남에서는 싱글 골퍼 정도의 기량을 가진 일급 골퍼는 동반자로 기피 대상 영순위다. 공을 너무 잘 쳐서 자기 지갑에서 돈이 자꾸 나가니 동반자로 함께 할 가치가 없다는 얘기다. 
물론 베트남에는 싱글 골퍼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싱글 골퍼들 널려있다고 생각해서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베트남에서의 싱글 골퍼는 그 가치가 별로 소중하게 다루어 지지 않을 뿐 아니라 기본적인 존경조차 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왜 일까?

옛말에 창랑 물이 깨끗하면 갓끈을 씻고 창랑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 했다. 물이 스스로 깨끗하면 사람들은 감히 그 물에 발을 담기지 못한다.
즉 자신의 가치는 남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다는 것이다.
골프 실력은 싱글이지만 골프 룰과 예절에 관하여는 관심 밖이고 골프에 관한 지식이 초라하여 함께 나누는 대화에서 배울 것이 없다면 아무도 그를 진정한 싱글 골퍼로 치부하지 않는다.
좋은 실력으로 남에게 모범을 보이기는커녕 내기 돈만 따려고 혈안이 되고, 동반자가 룰을 모른다고 골프 룰을 제멋대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창작해 내거나, 지나치게 자신의 스코어에 집착하여 드러내지 않아도 될 부끄러운 모습을 자주 보이면 그가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함께 라운딩을 하자고 부를 사람은 없다.
싱글 골퍼라면 그 실력만큼 골프에 대한 지식도 충분히 갖추어야 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여유롭게 룰을 적용하는 여유를 가져야 하며 돈을 좀 잃었다고 라운드 도중에 내기 돈을 올리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싱글 골퍼로 부족함이 없는 매너와 실력을 보이면서도 동반자를 자상하게 배려하며 라운드의 분위기를 명랑하게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이면 당연히 그의 가치는 올라갈 것이고, 골프 실력은 싱글이지만 하는 짓거리는 비기너와 다를 바 없다면 자연히 기피 인물이 되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싱글 골퍼들이 넘친다. 그러나 진정한 싱글 골퍼로 대접 받을 만한 사람은 과연 얼마나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