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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창업 이후에 대형 오더를 3번 수주했다. 그것도 지구 반대편의 중남미와 아프리카 국가인 베네수엘라와 칠레, 그리고 에티오피아에서였다.
 
가장 극적인 비즈니스는 베네수엘라에서 이뤄졌다. 필자가 베네수엘라 바이어 Y를 처음 만난 곳은 미국의 어느 박람회장이었다. 만남은 우연이었다. 그는 당시 가방원단을 구하고자 미국에 출장을 왔고, 여러 곳을 수소문을 하다가 필자를 만났는데, 여러모로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필자는 그날 Y와 호텔에서 저녁 6시경에 만나자는 약속을 한 후, 다른 바이어와 저녁식사를 하고 밤 10시경 호텔에 돌아왔다. 그런데 낮에 보았던 Y가 내 방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아뿔싸, 정신이 없어 약속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당시 필자는 그가 1인 기업 사장이고 오더도 불가능해 보여 큰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약속을 깼으니, 미안했다. 우선 사과부터 하고 용건을 물었다. 
 
Y는 아시아에서 수입을 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며,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정말 답답한 부탁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 달라는 구체적 내용이 없었고, 무작정 도와달라는 식이었다. 이런 부탁을 위해 4시간이나 기다렸다니, 한편 안쓰러웠고 다른 한편으로 피곤이 몰려왔다.
 
이후 Y는 지속적으로 팩스나 전화로 한국이나 중국에서 구매할 때 필요한 사항 등을 요청했다. 가방 완제품이나, 의류 액세서리 등 아이템도 다양했다. 필자는 직접 공장을 소개하여 주었다. 중국에서 중위권 이상이 되는 양질의 기업을 연결시켜 주었고, 게다가 외상으로 수입을 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그렇게 10여 년을 도와주었다. 그 덕분인지, Y는 베네수엘라에서 정말 대단하고 굉장한 기업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나라에서 자가용 비행기까지 소유한, 랭킹에 드는 재벌이 되었다. 
 
Y가 사업을 시작할 때인 2000년대는 베네수엘라의 최대 호황기였다. 그의 사업이 안정기에 접어들 무렵은 베네수엘라에 위기가 닥쳐오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였다. 나라 자체의 위기는 있었지만, 기업가들은 부의 창출에 유리한 상황이 전개가 되는 베네수엘라만의 특이한 상황도 연출되고 있었다. 
 
Y가 승승장구하는 동안 나의 상황은 악화일로였다. 부채가 50억 원을 넘어섰고, 이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위기 탈출을 위하여 베네수엘라에 출장을 갔다. 나의 성격상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것이 무척 싫었고 도움을 청하기가 죽기보다 싫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결국 저녁식사를 하면서 Y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나 부탁을 한다며 말을 꺼냈다. 
 
그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내가 10여 년 동안 자기를 도와주었던 것을 잊지 않고 있다며, 우정을 드러냈다. 
 
필자가 술기운을 빌어, 앞으로 회사의 존속이 불가능하게 되어 찾아왔다고 하니, 그는 현재 부채가 얼마인지를 물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50억 원가량 된다고 했다. 
 
Y는 무표정하게(그렇게 느껴졌다) 잘 알았다고 하면서, 자기가 방법을 찾아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편히 지내다가 귀국하라고 하였는데, 나로서는 ‘역시 안 되는 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남미인들은 거절을 잘하지 못해 그냥 체면상 문제없다고 말을 하고 넘어가는가 보다 했다.
 
그런데 귀국 후 Y로부터 전화가 왔다. 필자를 위해 발주할 것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인조피혁 40피트짜리 195컨테이너 규모의 물량이었다. 
 
이윤을 계산하여 보니 공교롭게도 대략 50억 원 정도가 나왔다. 하지만 막상 생산을 하려고 하니 이 막대한 오더를 수행하기 위한 생산비용이 없었다. 다시 Y에게 전화를 걸어 50% 정도의 선금을 요청했고 Y가 곧바로 송금을 하여 주어서 생산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우리 회사의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여 절강성 닝보항을 통해 통관을 하려고 했는데, 갑작스레 대단위 물동량이 움직이는 것이 수상하다며, 중국 해관(세관)이 문제를 삼은 것이다. 
 
이렇게 큰 규모의 수출을 대기업도 한 번에 하기 어려운데 밀수나 기타 문제일 것으로 판단이 되어 조사를 한다고 했다. 결국 전수조사까지 진행됐다. 피 말리는 검사가 종료가 되어 마침내 출항이 이뤄졌다. 이제는 다른 세상을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되었든 2000년 창업 때부터 2007년까지 주렁주렁 매달린 부채를 모두 털어냈다. 그리고 현재까지 회사는 적자 없이 잘 굴러 가고 있다. Y의 도움과 노고에 고마울 따름이다. 
 
나중에 어떻게 그렇게 큰 오더를 발주할 수 있느냐고 Y에게 물어보니, 베네수엘라의 외환정책 때문이라고 하였다. 수입을 한다는 증빙이 있으면 은행에서 1달러를 7페소정도에 구매하여 사용할 수 있지만, 그런 증빙이 없으면 블랙마켓에서 14페소가 소요되니 많은 발주가 필요한 것이었다. 
 
구매가 많으면 제품의 이윤보다 환차익이 큰 상황이었던 것이다. Y는 상상을 초월한 많은 이윤을 챙겼으며 그 이후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다. 
 
Y는 아마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을 많이 실천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선을 많이 베푸는 집안에는 반드시 좋은 일이 있다’는 뜻이다. 집가(家)를 단체사(社)로 바꾸면 ‘적산지사 필유여경(積善之社 必有餘慶, 좋은 일을 많이 베푸는 회사에는 반드시 경사스러운 일이 있다)이 된다.
 
이 일이 있은 이후 필자는 경영하는 방식을 모두 바꾸었다. 다시는 이런 어려운 환경에 놓이지 않도록 나름의 계획을 세웠는데, 하나는 ‘남들이 하기 어려운 시장 개척하기’이고 다른 하나는 ‘매일 회사의 회계 끝전 확인하기’이다. 
 
창업 이후 2007년까지 고전했던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크게 믿는 바이어와 일부 시장에만 의지하여 회사를 시작한 것이었다. 포트폴리오 시장도 없이, 믿고 있는 시장에서 발주만 기다리는 회사는, 천수답(天水畓) 구조를 가지고 농사를 짓는 것과 동일할 것이다. 
 
그래서 기존의 아시아 시장과 중동 시장을 제외하고, 위기관리와 미래를 위하여 중남미 시장과 아프리카 시장진출을 목표로 하였다. 
 
또한 회계에서도 한국과 중국회사 시스템을 바꾸어 매일 일일정산하여 보고하게끔 함으로써 회사 대표인 내가 현금흐름을 잊지 않도록 하였다. 또한 구매자로부터 결제의 문제가 없는지, 바이어로부터 대금회수가 원활한지 매일 저녁에 확인하니 문제가 없어졌다. 
 
어렵게 만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기회를 잘 이용하여 좀 더 강건한 회사를 만들고자 하였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화가 없다. 
 
훌륭한 리더는 위험을 감수하고 그 일이 진전되도록 불퇴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매번 되새긴다. 세상사 역경에 빠진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성공한 사람은 결코 없다고 한다. 또한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기회를 준다고 생각한다. (다음 호에 계속)
 
▲정병도 사장은 1999년 4월 인조피혁제조 및 바닥재 수출회사인 웰마크㈜를 창업한 이후 경쟁기업들이 주목하지 않던 아프리카, 중남미 시장을 성공적으로 개척해 주목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지구 60바퀴를 돌 만큼의 비행 마일리지를 쌓으며 ‘발로 뛰는’ 해외마케팅을 실천했다.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경기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공부했고 고려대학교에서 국제경영석사 과정을, 청주대학교 국제통상 박사과정에서 이문화 협상(CROSS CULTURE NEGOTIATION)을 공부했다. 저서로 ‘마지막 시장-아프리카&중남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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