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열교수

kimswed 2015.03.15 09:51 조회 수 : 1068 추천: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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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양심에 그어진 상처’로 정의되는 베트남 전쟁

한반도는 한국 전쟁으로 인해 분단이 고착화 되었지만 베트남은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통일이 되었다.
20세기 인도차이나 반도의 가느다란 한 모퉁이에서 30년간 이어진 베트남 전쟁은 프랑스에게는 ‘식민지 재점령 전쟁’이었고, 미국에게는 표면적으로는 동남아시아에서 공산주의의 확산(도미노 현상)을 막는 자유민주주의 수호 전쟁이었다.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미국 식민지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게는 남의 나라 전쟁에 연인원 31만 명이라는 엄청난 인원을 파병하면서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쳤지만 결국은 베트콩 잡고 누린 ‘월남특수’의 전쟁이 되었다.
베트남 민족에게 베트남 전쟁은 서구 식민제국으로부터의 독립 전쟁이었으며, 미제국주의자들로부터의 민족해방 전쟁이자 남북통일 전쟁이었다.

베트남 전쟁은 인류 전쟁사에서 가장 많은 폭탄과 돈이 투입 되었으며, 가장 많은 화학무기(고엽제)를 뿌린 전쟁이었고 가장 잔인하게 사람을 죽인 전쟁이었다. 호찌민시의 전쟁범죄고발전시관의 도표에 의하면 세계 2차 대전에 오백만(5,000,000)톤의 폭탄이 투하되었지만 베트남 전쟁에서는 일천 사백 삼십만(14,300,000)톤의 폭탄이 투하되었다. 세계 2차 대전에 사용된 돈은 미화 3,400억불이 사용되었지만, 베트남 전쟁에서는 미화 6,760억불이 사용되었다.
종전과 함께 북베트남 중심의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통일이 되었다. 베트남은 통일이 된 날(1975년 4월 30일)을 해방 기념일이라고 명명한다. 제네바 협정을 어긴 침략자들, 미제국주의자들을 몰아내고 남쪽의 동포를 해방시킨 날이라는 의미이다.

1964년 린든 존슨 대통령은 북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 전략적 융단 폭격을 승인했다. 하늘에서 보이는 건물은 폭격기가 다 부숴버렸다. 사람들은 땅굴에 몸을 숨겼다.
40년이 지난 지금 하노이 신시가지에는 화려한 고층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섰다. 72층의 경남 랜드마크 타워, 전체 면적이 여의도 63빌딩의 약 1.5배인 25만m2에 달하는 지하 5층 지상 65층의 화려한 롯데센터 하노이, 29층의 참빛 그랜드 플라자 특급호텔, 대우호텔 등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두 한국이 투자해서 지은 화려한 건물들이다. 통일 이후 베트남은 하노이 홍강의 기적으로 국가를 재건하고, 2000년 미-베트남 무역협정과 2007년 WTO 가입으로 사이공강의 화려함을 회복하며 6~8%대의 경제발전을 지속하고 있다.
100-200키로 미터만 나가면 태평양으로 바로 이어지는 베트남의 메콩강에서 메콩강 프로젝트를 통해 아시아 태평양 시대 속에서 베트남의 미래지도를 그리고 있다.

통일 베트남은 안정된 정치를 바탕으로 외자와 해외 교포들의 엄청난 자금을 바탕으로 공업화, 현대화를 외치며 성장의 가속 페달을 깊게 밟고 있다.
서구열강의 식민지 시대와 미-소를 중심으로 한 냉전시대의 환경 속에서 민족해방, 조국독립의 가치 속에서 탄생한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베트남의 공산주의는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는 체제 유지만 담보된다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중국과는 또 다른 베트남 민족성을 강하게 띤 베트남 공산주의는 독특한 베트남식 시장경제로 통일 베트남의 저력을 마음껏 보여주고 있다.

베트남 통일을 실현한 원동력은 무엇이며, 통일 과정에서 한반도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베트남 통일 과정을 분석하며 한반도의 미래를 전망해 본다. 이번 호부터 몇 차례에 걸쳐 이 문제를 짚어 보고자 한다.

베트남 통일 과정에서 한반도에 주는 시사점의 첫 번째는 강력한 통일 의지이다. 이 통일 의지는 기적을 만들었고, 신적 시간을 움직였다. 통일 의지는 지도자에게서 시작하여 베트남 주민들의 가슴에 시대적 사명, 최고의 가치로 자리 잡았다. 베트남 민족의 지도자 호찌민은 민족해방, 조국독립의 기치를 들고 미국과 전쟁을 치르면서 위기 때마다 민중들의 가슴에 통일의 비전을 심어줬다.

베트남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공포하고 국가문서로 보관하는 호찌민의 유언장에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이 시는 호찌민이 사망했던 해인 1969년에 지은 ‘1969년 봄을 맞이하면서’라는 제목의 시이다.

독립, 자유를 위하여
미국이 물러가도록 쳐야한다.
동포 전사들이여 일어나라
북남이 서로 합치면, 이 보다 더 기쁜 봄이 있겠는가?

이 시와 시의 전후 문장에서 호찌민은 미국과의 전쟁은 민족의 구국 전쟁이며, 이제 총궐기 해야 할 시점이 다다랐다고 말한다. 수많은 희생과 고통이 따르겠지만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수 있으며, 승리의 길에 서 있으니 끝까지 대동단결하여 미국을 물리치자고 유언을 남기고 그해에 세상을 떠나면서 베트남 민중들의 가슴을 더욱 뜨겁게 했다. 그러나 이 봄에 한국은 5만 명을 추가로 파병했다.

20세기 중반에 프랑스, 일본, 미국을 차례로 물리치고 통일을 이룬 베트남,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베트남 통일. 베트남 통일을 이룬 힘은 베트콩도 아니었고, 게릴라 작전도 아니었고, 험난한 정글도 아니었고, 호찌민과 지압장군의 리더십도 아니었다. 미국의 정치적 상황도 아니었고 세계여론도 아니었다. 베트남 통일의 힘은 베트남 민족의 통일 의지였다.
이 통일 의지는 지난 2천여 년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민족의식이었다. 베트남이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낸 디엔 비엔 푸 전투는 세계적으로 전쟁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인류의 전쟁사에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전투이다.

베트남이 어떻게 프랑스 명장이 이끄는 프랑스 군대를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을까? 베트남은 어떻게 세계 최대 군사강대국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그 우방국들을 물리치고 통일을 실현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베트남 민족의 혈관 속에 흐르는 특유의 저항적 민족주의이며 그것은 통일 의지로 승화되었다.
통일 의지는 통일에 대한 자신감이다. 호찌민은 계속해서 베트남 인민들에게 우리는 통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베트남 통일의 원동력인 통일 의지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베트남의 역사를 잠깐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동시에 오늘 남한의 통일의지는 어떠한가? 한국인에게 통일에 대한 자신감이 있는가? 자기 성찰적 관점에서 통일 의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통일 의지는 통일의 시간을 움직이게 하는 ‘His Time(신의시간)’과 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역사가 His와 Story의 합성어라면 역사를 진행하는 근거는 His Time이다. 인간의 강력한 의지는 신적 시간을 가능케 한다.

2천 여 년의 베트남 역사를 관통하는 주제는 ‘저항적 민족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 베트남인 역사학자가 쓴 모든 역사책이 이 기조를 유지하고 있고, 한국인으로서의 베트남 역사의 대가로 인정받는 전 서울대학교 역사학과 유인선 교수도 그의 ‘새로 쓴 베트남 역사’ 책에서 역사 서술의 키워드를 저항(투쟁)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베트남 사람은 독립할 때 자유가 있고 자유가 있을 때 행복하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의식은 수천 년의 침략에 대한 저항의 역사로 인하여 형성된 의식이다. 이러한 의식은 통일에 대한 강렬한 의지로 승화되었다. 베트남 통일 과정에서 발견하는 베트남 통일의 근원적 힘은 물리적 군사력을 초월한 신적인 힘을 갖게 한 통일 의지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성찰할 때 한국인의 통일 의지는 아직도 신적 시간(His Time)의 바늘을 움직이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한반도 분단문제 해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인들의 의지와 역량이다.
통일이 없으면 한반도의 미래는 없다는 절박함이 있는가? 르완다 속담에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서독의 콜 총리가 이 말을 자주 언급했다고 한다.
먹고 살만한 경제적 상황이 우리의 통일 의지를 희석 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민족의 가슴을 뜨겁게 할 통일의 꿈을 불태우는 지도자를 아직 만나지 못했는가?
왜 한반도의 신적 시간의 바늘은 이렇게 더디 움직이는가?

6-2

통일 베트남 더 깊이 알기 (3)

베트남 통일 이후, 하노이는 베트남 정치,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고 호찌민은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다. 하노이 사람은 사상성이 강하여 경직되어 있고, 호찌민 사람은 개방성이 강하여 유연하다. 이러한 성향의 연유를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하노이는 사회주의를 표방한 공산주의 세력이 정권을 잡아서라고 말하고, 호찌민은 자본주의 국가인 프랑스,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서 시장경제를 표방한 자유민주주의 정권이 들어서서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부분적으로는 일리가 있으나 정확하지 않은 말이다.

우리는 통일 베트남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통일 이후, 남북 베트남의 진정한 통합 과정의 이해를 위해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물론 이 부분은 한반도 통일과 통합 과정에서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세계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면 특이한 공식이 하나 발견된다. 남쪽은 개방성과 유연성이 강하여 자유로워서 경제가 발달한 반면, 북쪽은 사상성이 강하여 민족성이 두드러지고 폐쇄적인 성향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특성이 나타나는 원인은 1) 삶의 환경 2) 민족의 기원 3) 경제 유형 등이 주 요소들이다.
베트남의 하노이와 호찌민, 한반도의 평양과 서울, 중국의 베이징과 상하이, 영국의 에든버러(스코틀랜드)와 런던(잉글랜드), 미국의 북부와 남부 등이 그러한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서울과 평양이 바로 호찌민과 하노이다. 하노이를 평양과 베이징에, 호찌민은 서울과 상하이에 비교해 볼 수 있다.

베트남의 북쪽은 북방문화(중국, 몽골 등의 대륙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남쪽은 남방문화(인도, 크메르, 말라야 등의 해양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근, 현대에 들어서서 남쪽은 서구 문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기도 했다.
고대 시대부터 북쪽 사람들은 민족성과 사상성이 강했다. 베트남의 통일 의지, 통일의 주도세력, 통일의 전 과정 속에서 이러한 민족성과 사상성이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하노이가 공산주의 영향의 지역이라서가 아니라 삶의 환경, 민족의 기원, 경제 유형 등으로 인해 민족성과 사상성이 강한 지역이었다.

2014년 9월 18일 스코틀랜드 독립 국민 투표(Scottish independence referendum 2014)가 실시되었다. 이 투표는 영국(특히, 잉글랜드)으로부터의 분리 독립 여부를 묻는 스코틀랜드의 국민투표였다. 16세 이상의 모든 스코틀랜드 주민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문항은 “스코틀랜드가 독립 국가가 되어야 하는가?(Should Scotland be an independent country?)”로 단순하게 제시되었다. 찬성 45%, 반대 55%로 부결되었지만, 이것은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와 통합 후 최대의 정치적 사건이 되었다.

우리는 맬 깁슨이 주연으로 출연한 ‘브레이브 하트’라는 남쪽 잉글랜드와 북쪽 스코틀랜의 전쟁 영화를 잘 기억하고 있다. 1296년에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가 스코틀랜드를 침략하여 스코틀랜드의 존 1세를 폐위하고 스코틀랜드를 식민지화했다. 스코틀랜드는 극렬한 저항을 하는데, 이 독립해방군을 이끈 인물이 윌리암 윌리스이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스코틀랜드의 민족영웅 윌리암 윌리스의 자유를 향한 강인한 민족성과 사상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인에게 북한 사람은 모두 세뇌교육을 받아서 사상성이 강하다는 선입견이 있다. 세뇌교육의 영향도 있지만, 실제로 북한 지식층은 그 지역이 민족의 기원지이며, 고조선, 고구려, 고려의 수도가 있었고 한반도 역사에서 정신세계를 주도해 왔다는 의식이 강하다. 하노이가 또한 그러하다.

고구려는 북방 유목민족의 혈통을 이어받았고, 신라와 백제는 남방민족의 피가 섞였다는 것이 고고학 학계에서 계속 제기되고 있다. 아랍인, 인도인의 피가 신라, 백제 사람들에게 섞였다는 것이다. 고구려의 대조영은 왜 그렇게 신라의 나당연합을 반대하고 발해를 세웠는가? 국제 정세를 재빠르게 파악하고 당나라와 외교관계를 맺은 신라, 절대로 당나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쟁한 고구려. 한반도의 통일문제는 어쩌면 나당연합의 신라와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가야하는 북쪽과 남쪽의 사상 문화적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남북의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해는 남북 베트남의 통일 이후, 진정한 통합이라고 할 수 있는 삶의 통합의 완성도를 높이며, 한반도 통일에 주는 혜안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2013년 12월에 새터민(북한이탈주민) 학생들이 분단국 경험 차 베트남을 방문한 적이 있다. ‘베트남 통일과 한반도에 주는 시사점’이란 제목으로 강의한 후 질의, 응답 시간을 가지며 북한 청년대학생들의 한반도 역사와 문화 인식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오랜 시간동안 고조선, 고구려, 고려로 이어지는 한반도의 정치, 문화의 사상세계를 주도해 온 곳이 바로 북한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리고 왜 수도를 남쪽의 한양으로 천도했는지에 대한 정치적 배경도 잘 알고 있었다. 남한 지도자들이 북한과 통일에 대한 논의하고 더 깊은 통합을 이야기 하려면 북한 지식층의 이러한 민족성, 사상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러한 문화적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남북 베트남에 대한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인식은 통일 이후 남북 베트남 주민의 삶의 통합에 대한 관점의 지평을 더욱 넓혀줄 것이다. 또한 한국인에게 통일과 통일 이후 통합 과정에서의 새로운 통찰력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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