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청공

kimswed 2014.06.14 08:28 조회 수 : 627 추천: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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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통일 후 제일 먼저 온 

의지의 한국인들

베트남 환경 전문업체인 (주)청공의 지세철 대표는 베트남이 통일된 후인 1983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아직 우리와 외교관계가 없던 베트남공화국을 찾은 일행중 한사람이다. 당시는 삼각무역 형태로 베트남과의 교역은 이루어 지고 있었다고 알려 졌지만, 실지로 베트남에까지 진출한 한국인 으로서는 최초가 아닌가 한다. 지세철 대표의 회고에 의하면, 당시 삼성물산에 근무할 때 인데, 회사 명의가 아닌 한국상공회의소 명함으로, 베트남 상공회의소와 거래를 하였다고 한다. 양국의 상공회의소는 이미 교류가 있었다. 

베트남측 파트너인 란씨는 이미 한국을 여러 차례 다녀간 적이 있었다. 한국상공회의소 주선으로 베트남에 복합 비료를  5천만불 어치 수출하게 되면서, 안기선 이사를 팀장으로 해서 우리 팀원 12명이 베트남으로 왔다. 워낙 열악한 상



"고생을 마다 않고 열심히 시장 개척을 위해 뛰어준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풍요로운 조국이 있게 되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황인지라 우리는 올때마다 멸치볶음과 고추장등을 챙겨 가지고 와서는 호텔에서 직접  밥도 짓고, 싸가지고 온 한국부식들로 식사를 해결 하였었다. 상담을 할 때에는 우리측이 2-3명이 나가면 베트남측은 최하 15명 정도가 참석한다. 아마 이쪽 시스템이 그런 모양이었지 싶다. 그러면 우리는 준비해간 555담배를 뽑기 좋게 한개피씩 뽑아올린 상태의 담배갑을 모두에게 한갑씩 돌리고 난뒤 상담을 시작 하였다.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의 담배로 알고 있었고 또 이 담배를 한갑씩 돌리고 나면 분위기가 화기애애 해 지면서  상담 분위기가  형성되곤 하였다. 하루는 이들과의 상담을 마치고 서는 제공해준 차량으로 호텔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끼리 베트남 측의 흉을 열심히 보고 있는데, 운전수가 한국말로‘내가 한국말을 아는데 너무 우리 흉을 보지 말아 달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당시 베트남의 운전수는 사회적으로 상당히 높은 대우를 받고 있었다. 이 운전수도 김일성대학에서 유학을 하고 온 사람이었다. 이후부터는 말을 조심하게 되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우리가 한 말들이 보고되는지 모를 지경이니, 무조건 조심 할 수밖에.  그리고 여성들에게는 화장품과 스타킹이 인기 선물이었다. 당시 환율이 미화 1불이 5만동이었고 베트남 고액권은 1만동이다보니 100불을 바꾸면 한뭉치가 되었다.”

당시 직항선이 없던 때 인지라 한국에서 홍콩으로 가서는 하노이 로 갔다. 호치민시는 당시 개방이 안되어 있었다. 하노이의 탕러이 호텔이 단골 숙소였다. 당시 저녁시간에는 유흥을 즐길만한 장소가  별로 없었고, 고작 캬바레 밖에 없었다. 다행히 우리 팀장이 사교댄스는 한가닥 하는 분인지라 베트남 캬바레에 가서 춤을 추면 베트남 손님들이 주욱 둘러서서 구경을 하면서 박수를 보내 주곤 하였었다. 한국에서 대기업 위주로 종합상사 제도가 생겼는데, 삼성이 제1호였다. 그리고, 초창기 상사1기생들이 고생을 참 많이 하였었다. 우리도 잘 살아보자’는 박정희 대통령의 의지대로 우리 상사맨들은 세계 각지로 가서 시장 개척을 하여야만 하였다. 대개가 고추장과 라면 등을 싸들고 온세계를 누비고 다닌 덕에 오늘날 대한민국의 번영이 있게 된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당시 베트남의 외환 사정이 좋지 않을때 인지라 상품을 팔고, 그 대금은 현물로 받았다. 한번은 현물인 새우를  인수하러  붕따우로 가게 되었다. 도착했더니 갑자기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이 말을 걸어오는지라, 돌아 보니 북한 사람들이었다. 당시 우리 모두는 반공정신이 워낙 투철하였던지라 얼른 자리를 피해 버렸다. 혹시 납치라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북한사람을 접촉해서는 안된다는 교육을 받았던 영향이었다.”
“그 후 말레이시아 지사에 근무하면서도 베트남은 자주 출장을 다닌 지역이었다. 그러다  2005년에 나의 개인 사업을 하기 위해 베트남에 다시 와서 지금껏 생활 하고 있다. 오랫만에 과거 추억을 되살리니 감개가 무량한데, 초대 삼성 베트남 지사장을 지낸 김진규 이사는 안타깝게도 그 후 풍토병으로 세상을 떴다. 내가 알기로는 베트남 식수에 청산가리 성분이 미량이지만 함유 되어 있기에, 유명브랜드 생수나 가능하면  코코넛 물을 마시곤 한다. 이것은 우리가 피곤할 때 링거를 맞듯이 코코넛 물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어려웠던 시절, 온갖 고생을 마다 않고 열심히 시장 개척을 위해 뛰어준 상사맨 1기생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풍요로운 조국이 있게 되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 분들의 뜻을 기리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 대담 : 황성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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