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점:



안경을 한국에서 맞추어 오신다구요?

이제는 이 곳 호찌민에서 해결하세요 !!



Glasses, Spectacles 라고 불리는 안경은...

력을 돕거나 근시. 원시, 난시 등의 시각 결함을 교정하기 위해 눈앞에 쓰는 틀에 끼운 렌즈로 정의 되어 있으며, 시력이 나쁜 이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되는 생활 필수품 이며, 유행을 만들어내는 패션 아이템중 하나이다.

베트남 에서도 컴퓨터와 가까운 거리의 TV 시청, 그리고 오염된 공기로 인한 시각적인 손상이 늘어나 어린 학생들의 시력이 저하되면서 점차적으로 안경의 중요성이 커지고, 1년 내내 뜨거운 햇빛아래의 오토바이 물결은 썬그래스를 빼 놓을수 없게 만든다.

 

쩡광카이 (Trần Quang Khải) St.

로맨틱한 가로수길

광카이 거리는 1군에 속한 총 길이 1.1km 정도의 비교적 짧은 2차선 양방향 도로다. ‘떵성녁’ 공항과 호찌민 시 1군을 동서로 잇는 ‘하이바쯩’ 거리를 따라 공항 쪽으로 오다 보면 지난번에 소개한 ‘팡딘풍’ 거리를 잇는 작은 다리가 하나 보이는데 바로 이 다리를 건너기 전인 캐논 사거리에서 우회전 방향으로 난 좁다란 길이다. 쩡광카이 거리는 주변이 다소 지저분하긴 해도 어엿한 호찌민 시 최 중심가인 1군에 속한 유서깊은 거리다.

일단 이 도로의 매력은 다른 도로에서는 보기 힘든 수십 미터씩 위로 쭉쭉 벗어 올라간 열대가로수다. 아마 이 정도의 나무들이 자랄 정도면 쩡광카이 도로의 역사가 2백년 전인 프랑스 식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이 거리에는 호텔, 까페, 레스토랑, 크고 작은 덴탈 클리닉, 수입안경점, 고급 미장원, 이발소 등은 기본이고 그밖에 이 지역에서 내노라 할만한 명소들이 많이 있다.

먼저 하이바쯩 거리와 이 거리가 만나는 캐논 사거리 초입에 있는 슈퍼 바게트 전문점에 들러 15,000동짜리 바게트 햄버거 (크기는 30-50cm 정도, 속안에 쇠고기, 야채, 토마토 등이 듬뿍 들어있어 영양만점)를 하나 서서 먹으며 이 길을 나서보자. 초입 부분에서 2분 정도 더 걸어 들어가면 쩡광카이 거리와 쩡흐우 (Tran Huu Cau) 스트리트가 만나는 사거리에 호앙띠 (Hoang Ty)라는 유명한 베트남 현지 로컬식당이 나온다. 오후 2시경 점심식사 시간이 끝날 무렵인데도 이렇게 손님들이 많은 것을 보니 대단히 음식 맛이 좋은 듯. 이 부근 로컬 까페  깍당 (Cat Dang)도 빼놓을 수 없다. 3층 규모의 화려한 외양의 이 까페에는 1군 멋쟁이들이 다 모이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만남의 장소. 생음악과 생맥주, 그리고 젊은이들의 취향에 딱 맞는 로맨틱한 분위기가 그만이다.

한편 쩡광카이 거리를 다니다 보면 흔히 현지인들이 ‘데칼’ (decal)이라 부르는 오토바이 스티커 가게들이 유난히 많이 모여 있어 이곳이 바로 1군에서 유명한 ‘데칼의 명소’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아참, 쩡광카이 거리의 관광명소 가운데 ‘베트남 고전무술 연합회’ (69번지)을 빼놓을 수 없다. 이곳에 오면 매일 아침 5시, 오후 5시경 수백 명의 젊은이들이 중국무술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고전 의상을 한 채 팔에 쇠구슬을 두르고 단체훈련에 열중하고 있는 흥미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쩡광카이 거리,  이 길은 1번지에서 시작하여 269번지로 끝나는 짧은 길이지만 유서 깊은 거리답게 부유하거나 소박하되 뭔가 귀족적이면서도 아기자기한 맛이 풍기는 매력적인 거리다.

베트남 팔방미인

쩡광카이 장군 (Trn Quang Khi, 1241 ~ 1294)

 

쩐꽝카이(Trn Quang Khi) 남딘(Nam Đnh)() 태생으로 (Trn) 왕조 시대의 이름난 명장이다. 그는 왕조의 초대 쩡타이똥 (Trn Thái Tông-태종, 1225-1258) 셋째 아들이자 2 쩡탄똥 (Trn Thánh Tông ,성종;1258 1278) 친동생으로 어려서부터 학덕이 높고 시문과 문장에 능했을 뿐만 아니라 병법도 밝았다. 특히 몽고군이 침략하였을 때에는 쩐꾸옥뚜언 (쩡흥다오) 함께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1294 7 26 53세로 사망.) 유작으로는 ‘락다오’ (Lc Đo,) 라는 시문집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유실되고 전해지지 않는다.

 

군사전략가이자 외교가, 그리고 위대한 민족 시인으로 통하는 쩡광카이 장군은 제 2 (1285), 3 (1288) 원나라 몽고족과의 항쟁기에 쩡꾸억뚜언 (Trn Quc Tun) 장군과 함께 적군을 물리치는 등 지대한 공로를 세웠다. 특히 1285년 그가 몽고군을 물리치고 수도 탕롱 (Thăng Long)과 쯩증 (Chương Dương) 지역을 수복한 일은 베트남 전사에서 빠트릴 수 없는 중요한 이정표다. 또한 베트남 문학사에서도 쩡광카이 장군이 차지하는 위치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가 지은 시문을 모아놓은 락다오 (Lc đạo)는 지금 유실되어 거의 남아있는 것이 없지만 그나마 일부 남아있는 시들을 살펴보아도 단순하지만 호방한 풍모가 담겨있어 그가 얼마나 뛰어난 문장가이자 시인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베트남 역사를 통틀어 보아도 정치 경제문화 ,외교, 문장, 병법, 시문 등 거의 전 분야에 능했던 이런 팔방미인을 찾아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 Created by: kimswed
  • Completed on: 25th Nov 2008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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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tegory: 신규창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