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수교 28주년이 지난 지금 한중간 사업유형도 많은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최근 중국시장과 사회의 프레임은 진화되고 있는데, 우리의 중국에 대한 연구와 관심은 점차 후진하고 있다. 중국 사업에 대한 방향과 연구는 그대로인데, 중국은 매우 빠른 속도로 변화되고 있다 보니 성공보다 실패의 확률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필자는 지난 25여 년 간 많은 중국 비즈니스의 성공과 실패 스토리를 경험했고, 성공과 실패의 유형을 정형화·공식화시켜 중국 사업의 정답모형을 구축해 보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 중국진출사업의 성공사업모델을 정형화시키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이에 대한 세부 내용은 지난 49회 <중국 비즈니스의 정답과 해답> 칼럼을 참조하길 바란다.


그러나 중국 사업의 실패는 유형으로 만들 수가 있다. 중국에서 실패하는 사업의 경우 크게 5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번 칼럼부터 사례를 들어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중국에서 실패하는 첫 번째 유형은 ‘토사구팽(兎死狗烹)형 모델’이다. ‘토사구팽’은 사냥하러 가서 목표물인 토끼를 잡게 되면, 토끼를 잡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냥하던 개는 쓸모가 없게 되어 삶아 먹는다는 뜻을 가진 고사성어다.


사마천 사기(史記)의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편 중국 춘추전국시대 월(越)나라 재상 범려(范蠡)의 말에서 유래된 표현으로 현재 한국기업의 대중국 사업에 비유하기 가장 적합한 표현이자 전형적인 실패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범려는 월나라 왕 구천(句踐)이 오(吳)나라를 멸하고 춘추오패의 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보좌한 신하(名臣)였다. 월나라가 패권을 차지한 뒤 구천은 가장 큰 공을 세운 범려와 문종(文種)을 각각 상장군과 승상으로 임명했다.


망국과 죽음을 앞둔 오왕 부차는 월왕이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난 다음 당신들을 버릴 수 있으니 미리 살길을 도모하라고 말했다. 그 의미를 깨달은 범려는 월나라를 탈출했고, “새 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도 감추어지고, 교활한 토끼를 다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蜚鳥盡, 良弓藏, 狡兔死, 走狗烹)”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문종에게 충고하였으나, 문종은 월나라를 떠나기를 주저하다가 결국 구천에게 반역의 의심을 받은 끝에 자살하게 된다.


토사구팽 사례는 중국 전체 역사를 통해 수 없이 등장한다.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명장 한신(韓信)의 이야기에서도 토사구팽이 언급된다. 유방이 왕위에 오른 후 한신을 비롯한 개국 공신들을 차례로 몰아내는 상황을 보고 ‘천하가 평정되고 나니 나도 버려지는구나(天下已定, 我固當烹)’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림] 토사구팽의 유래(좌)와 한국기업의 토사구팽 사례(우)

*자료: 바이두

 

지난 한중간 비즈니스의 발전과 변화를 돌이켜보면, 토사구팽의 고사성어처럼 필요할 때는 쓰다가 필요 없을 때는 버리거나 비즈니스의 전후 관계가 완전히 뒤바뀌는 경우가 너무 허다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중 양국 간 문화콘텐츠와 화장품사업부터 LCD 디스플레이 사업까지 여러 업종에서 토사구팽의 사례가 재현되고 있다. 필자는 이를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벌어간다.’라고 자주 표현한다. 즉 재주는 한국기업이 부리고 돈은 중국기업이 벌어가는 구조라는 얘기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한중간 문화콘텐츠와 화장품 비즈니스이다.


우선 한국 문화콘텐츠의 중국 사업 이야기부터 해보자. 온라인 게임에서부터 시작한 한국 문화콘텐츠의 중국 수출은 방송콘텐츠에서 웹툰까지 다양한 콘텐츠 영역으로 확대되어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초창기 한국 온라인 및 모바일게임은 중국시장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그에 따른 한국 온라인 게임사들도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어, 중국산 게임이 한국 게임 시장을 점유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구글플레이 무료 이용 게임 순위에서 한국 모바일게임이 차지하는 점유율이 절반을 차지할 정도였지만, 2020년 9월 현재 무료 이용 게임 순위 100위권 내 한국 모바일게임은 그다지 많지 않은 상태다.


“요즘 중국 모바일게임의 경우 줄거리, 제작기술뿐만 아니라 운영능력도 한국을 능가할 정도입니다.” 국내 모바일 게임업체 모 사장님이 필자한테 한 말이다. 만약 현재 막혀 있는 한국산 게임 판호를 중국 정부가 허가해 준다고 하더라도 상황이 결코 녹록치 않다는 말이다.


중국은 막강한 자본력과 유통·퍼블리싱 능력을 바탕으로 무섭게 성장했다. 텐센트나 넷이즈 등 중국의 대형 게임사들의 한국 게임업체 인수를 통해 덩치를 키웠고, 한국의 기술 인력을 흡수해 기술 역량을 강화했다.


방송콘텐츠 분야도 토사구팽의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중국은 과거 ‘별에서 온 그대’, ‘대장금’ 등 한국 방송콘텐츠를 수입하는 수용자 및 소비자의 역할에서 벗어나 ‘나는 가수다’, ‘아빠 어디가’, ‘런닝맨’ 등의 방송 포맷만 수입해 소비자와 중국 상황에 맞게 새롭게 제작하는 생산자의 역할로 변화했다. 나아가 지금은 그 단계를 넘어 한국 콘텐츠 제작에 직접 투자하거나 아예 한국기업의 지분을 인수하는 생산자로의 역할로 더욱 진화하고 있다.


국내 대표적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YG의 3대 및 4대 주주 모두 텐센트 등 중국 자본이고, 한류스타 김수현이 소속된 키이스트의 2대 주주는 중국 포털 사이트인 소후닷컴이다.


그 밖에도 ‘프로듀사’ ‘오 나의 귀신님’ ‘올인’ ‘송곳’ 등을 제작한 초록뱀 미디어, 씨그널엔터테인먼트 등 많은 국내 콘텐츠·미디어 기업에 중국 자본이 숨어 있다.


문제는 이러한 중국 자본들이 단순히 방송콘텐츠를 통해 돈을 벌어가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 콘텐츠의 제작기법, 지식재산권, 숙련된 인적 자원 등도 함께 중국투자기업으로 흘러 들어가게 하면서 중국 콘텐츠 제작능력이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이어집니다)

 

 

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경영학 박사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대사관에 중소벤처기업지원센터 소장을 5년간 역임하며, 3,000여 개가 넘는 기업을 지원했다. 미국 듀크대학교 경영대학원 교환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사단법인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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