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인생에서 가장 도전적이고 역동적인 시기는 청년 시절이었다. 무엇 하나 여유가 없었고, 모든 문제에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워 고민이 많았고 친구들보다 더 노력해야 했다.
 
중3 때 막노동, 고등학생 땐 농사
 
중학교 3학년 때 막노동을 처음 시작했다. 집 근처 군용 다리 공사에서 시멘트와 모래를 나르고 섞는 일이었다. 지금 같으면 근로기준법 위반에 미성년 노동 착취에 해당하겠지만, 당시 곤궁한 형편의 소년에게는 좋은 일자리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다음에는 동네에서 이런저런 품앗이를 했다. 물론 봄부터 가을까지 농사일을 병행하고 겨울엔 땔감을 준비했다. 
 
아마 시골 출신이라면 누구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가끔씩 지게질 하는 일감이 생기면 친구들과 같이 용돈을 벌어 썼다.
 
고민이 가장 많던 시기는 고3 때였다. 대학을 가야 하는데 4년 동안 등록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가 고민의 핵심이었다. 거액의 등록금과 생활비가 나올 곳이 없으므로 어떤 ‘비책’이 필요했다. 
 
당시 필자가 생각해낸 방법은 원양어선을 3년 정도 타고 나서 학교에 다니거나, 군대 부사관에 지원하여 4년간 번 돈으로 학업을 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고향의 한 친구는 해병대 부사관으로 지원하여 복무하고 저축한 돈으로 대학을 다녔다. 
 
하지만 필자는 두 가지 방법 모두 선택하지 않고 대학에 입학한 후 일자리를 알아보는 방법을 선택했다. 1년 휴학한 후 돈을 벌어 1년 학교를 다니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처음 시작한 아르바이트 자리는 영등포역 앞 맥줏집 서빙이었다. 그런데 그 맥줏집은 독특한 데가 있었다. 술과 안주를 나르는 일보다 손님들에게 비싼 술과 안주를 유도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결국 손님들에게 못된 짓을 하는 것 같아 몇 달 일하다 포기하고 말았다. 
 
이후 도서(전집류)를 파는 판매 영업사원, 가가호호 방문해 생활물품을 파는 방문판매원을 거쳐 보안경보기 회사에 취업해 일하기도 했지만, 등록금과 생활비를 충당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공부할 시간도 많이 부족해 결국 모두 그만두고 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에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와 어떻게 하면 공부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해야 돈을 많이 벌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 결론은 막노동이었다.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경기도 부천시 소사동에서 막노동에 ‘데뷔’를 했다. 처음으로 맡은 일은 시멘트 벽돌을 지게로 져서 3층과 4층에 올려놓는 일이었다. 
 
십장은 내게 나이도 어리고 힘도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이 일을 하려고 하느냐고 타박했다. 그는 이 일이 누구든 한 시간만 하면 포기하고 간다며, 일단 한 번 지게를 지고 자기를 따라해 보라고 했다. 내가 십장과 같은 개수의 벽돌을 모두 지게에 지고 3층까지 다녀오니 모두들 놀라는 눈치였다. ‘여기 십장을 이기는 젊은이가 나타났다’는 소리가 들렸다. 
 
그날 일을 끝내고 나니 몇몇 십장들이 같이 일을 하자며 찾아왔다. 일종의 스카우트 제의였다. 나의 놀라운 지게 실력에 감동(?)한 듯했다. 블록 한 장이 1.75kg인데 36장(63kg)을 종일 지고 다니며 버텨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스스로도 놀랍다. 
 
품삯 2배 강행군에 주경야독의 세월
 
막노동판에서 같은 일을 하는 동료 노동자가 하루 2만 원 정도 받을 때 필자는 2배인 4만 원을 받았다. 지게로 남들보다 많은 벽돌을 더 빠른 속도로 져 날랐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어릴 때부터 나무를 져 나른 경험이 도움이 되는구나 생각했다. 나름 험한 아르바이트를 하던 필자의 친구들이 하루 9000원 정도의 품삯을 받던 시절이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방학 동안에는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고, 학기 중에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수업을 듣고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3일 동안 일하는 시스템을 유지했다. 그렇게 대학 등록금과 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할 수 있었다.
 
일하느라 공부할 시간이 부족할 것이라며 아르바이트를 말리던 사람들도 있었으나, 필자는 노동을 하면서 많은 것을 얻었다. 물론 공부할 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허투루 시간을 보내지 않고 오직 일과 공부만 했으니 시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주로 밤에 공부를 했다. 취업준비를 위해 영어 공부를 할 때에는 토익이나 토플 책을 100번씩 보았다. 그 두꺼운 책도 100번을 보니 영어가 두렵지 않았다. 
 
옛사람들도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고 했다. 다소 무식한 방법이지만 100번 보는 것을 고집했다. 조선시대 독서광 김득신은 사마천의 ‘사기’ 중 ‘백이전’을 1억1만3000번 읽었다고 하니, 100번 읽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불에 생긴 물웅덩이의 추억
 
막노동을 하면서 이런 일도 있었다. 제대한 직후 군입대 동기들과 학비를 벌기 위해 서울과 경기지역 여기저기서 일감을 찾다가, 수원지역에 있는 어느 대학의 도서관을 짓는 일에 참여하게 됐다. 동기들 모두 시골 출신이라 힘도 좋고 일에 대한 센스도 있어 일당을 가장 많이 주는 대리석 붙이는 일의 보조를 맡았다. 
 
그 중 한 친구는 필자에게 담요 하나만 들고 오라고 했다. 여름이니 공사장 옆 들판에서 자면서 일하면 숙박비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공사장 가건물 처마 밑에서 잠을 자면서 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필자와 친구 사이 이불 위에 거대한 물웅덩이가 생겼다. 얼마나 피곤했던지 비가 많이 와도 모르고 잤던 것이다. 어이가 없어 둘이 마주보며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있다. 
 
안타까웠던 기억도 있다. 우리를 고용했던 사장님이 원청회사에서 공사대금을 받지 못하여 혼자 울고 있었다. 이 안타까운 상황을 본 친구와 필자는, 우리가 받아야 할 임금을 받지 않겠다고 사장님에게 말씀드렸다. 
 
하지만 그 사장님은 “당신들 돈은 꼭 주어야 한다”며 며칠 내에 돈을 융통해 주셨다. 마지막 날 저녁을 사 주시면서 열심히 공부해 성공하라고 하셨는데, 그 고마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회사라는 것이 경영하기가 참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장님의 눈물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졸업여행을 가는 대신 후배와 자전거를 타고 동해안을 여행했다(1989). 우측이 필자. [사진=필자 제공]
졸업여행 대신 자전거 여행의 사연
 
곤궁해서 얻은 것도 있다. 대학 4학년 때다. 모든 친구들이 졸업여행을 가는데, 필자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갈 수가 없었다. 친구들이 돈을 모아 준다며 같이 가자고 했지만 미안하여 거절했다. 대신 자전거로 무전여행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는 선배에게 자전거를 빌리고 후배를 설득해 함께 동해안 일대를 달렸다. 자전거가 고장 나기도 하고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 고생을 많이 하기도 했지만, 숙식을 공짜로 해결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돈 없이 일주일간 지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고민도 하고 동해의 절경도 감상했다. 수학여행과 졸업여행은 없었지만 가장 가치 있는 대학시절의 여행이 되었다. 
 
맹자의 ‘진심장(盡心章)’에 나오는 ‘궁즉독선기신 달즉겸선천하(窮則獨善其身 達則兼善天下)’가 떠오른다. ‘궁색할 때는 홀로 수양하는데 주력하고, 잘 풀릴 때에는 천하에 나가 좋은 일을 한다’는 뜻이다. 
 
같은 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졸업여행을 다녀오는 것보다 홀로 수양을 하는데 시간을 사용한 것이 지금까지 살아오는 데 도움이 됐다. 살면서 남들이 행한다고 모두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필자가 노동판에서 배운 경험과 사유는 아프리카나 중남미 등지를 다닐 때 큰 도움이 되었다. 곤궁하고 험한 인생을 사는 아프리카 바이어들과 흉금을 터놓고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면 금세 친구가 됐다. 
 
모든 일들은 생각처럼 간단히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은 세치 혀가 아닌 넓은 가슴과 경험들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아프리카나 중남미에서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나의 바이어들이 모두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가 그랬듯이 그들도 뜨거운 도전을 하고 있다. 세월을 견디고 비바람을 버텨야 나무에 나이테가 생긴다. 삶도 마찬가지다. <다음 호에 계속>
 
▲정병도 사장은 1999년 4월 인조피혁제조 및 바닥재 수출회사인 웰마크㈜를 창업한 이후 경쟁기업들이 주목하지 않던 아프리카, 중남미 시장을 성공적으로 개척해 주목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지구 60바퀴를 돌 만큼의 항공 마일리지를 쌓으며 ‘발로 뛰는’ 해외마케팅을 실천했다.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경기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공부했고 고려대학교에서 국제경영석사 과정을, 청주대학교 국제통상 박사과정에서 이문화 협상(CROSS CULTURE NEGOTIATION)을 공부했다. 저서로 ‘마지막 시장-아프리카&중남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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