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시장에서의 영욕(榮辱)
 
 
아프리카 시장에 본격 진출한지도 10여 년이 흘렀다. 돌이켜 보면, ‘가능성 제로’에 도전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무모했던 도전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지금까지 한국과 중국 양쪽 법인에서 아프리카 지역에 수출한 금액은 미화 1500만 달러(한화 약 185억 원)이상이다. 수많은 장애물이 있었지만 다행히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매우 기대되는 시장이기도 하다. 
 
필자가 처음 아프리카 시장을 공략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중남미 시장에서의 성공이 출발점이다. 이전 연재에서 간략히 소개한 중남미 시장 진출 성공은 필자에게 큰 자신감을 가져다주었다. 도전이 두렵지 않았다. 
 
‘시중지도(時中之道)’라는 말이 있다. 시중(時中)은 시쳇말로 타이밍이니 타이밍을 잘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때를 알고 상황에 맞게 처신하면 성공한다’는  뜻이다. 그 당시는 아프리카 진입에 적절한 시기였던 것이다. 
 
회사의 어린 직원들도 두려움이 없었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면 남녀 구분 없이 6개월 후 아프리카에 단독 출장을 보냈는데, 모두들 주어진 업무를 잘 수행했다.
 
아프리카 진출을 처음 시도한 것은 2010년 무렵이었다. 홀로 시장을 살펴보기로 마음먹고 여러 나라에 가보았는데, 매우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신규 바이어를 발굴하려 오랜 기간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CAD 방식에서 길을 찾다
 
그러던 중 2012년 경 하나의 실마리를 풀었다. 아프리카에서 많이 사용하는 CAD(Cash Against Documents, 서류인도결제방식)를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수출자에게는 위험이 있지만 수입자에게는 매우 유리한 조건이다. 
 
기본적으로 CAD는 물품을 선적한 후 선적서류를 거래은행에 제출하여 상대 은행에 보내게 되면 바이어가 대금을 지급하고 서류를 찾아서 물품을 찾아가는 방식인데 국제거래에서 일반적으로 많이 이용되는 방식은 아니다. 보통 아시아의 수출자들은 T/T나 신용장(L/C) 방식을 선호하지만, 현금이 부족한 아프리카 바이어의 입장에서는 CAD 거래가 매우 유리하고 편리하다.
 
또한 아프리카에서는 신용장 방식도 다른 지역들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바이어들의 문제는 아니지만, 아프리카 국가의 외환보유고 부족으로 추심이 매우 늦어져 신용장 네고(NEGO)를 한 후에도 네고은행(NEGO BANK)에 입금이 몇 달씩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늦어질 경우에 항상 대비해야 한다. 급하게 자금을 운용한다면 회사의 위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은행에서 추심이 들어오지 않으므로 반환 요청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실제 이런 일들이 자주 발생한다. 필자의 경우는 신용장 네고 건의 70~80% 정도가 3~5개월이 지난 이후에나 들어왔다.
 
CAD 방식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고 난 후 막상 거래를 하려고 하니, 상대방의 신용도 파악이 매우 중요했다. 결국 바이어들을 하나씩 만나서 파악하기로 마음먹었다. 한두 번 만나보고 사람을 알 수 없으므로 여러 번 만나야 했다. 
 
에티오피아에는 1년에 10회 이상 출장을 갔다. 필자와 회사 내 해외영업 담당자들이 교대로 거의 매달 출장을 가서 바이어의 능력과 신용도, 인성을 파악해 가며 거래를 시작했다. 
 
그러나 아프리카 특성상 여기저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상품을 실어 보냈는데, 자금력이 부족한 바이어들은 항구에 몇 달 동안 컨테이너를 방치했다. 설령 바이어가 돈을 지불해도 은행이 외환부족 때문에 몇 달 늦게 송금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필자의 회사는 자금문제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한 가지 좋은 점은 한국, 중국, 인도, 대만의 경쟁사들이 이런 이유로 모두 아프리카 시장을 포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장 독과점… 큰 이익 안겨줘
 
시장은 점점 우리 회사의 독점 형태로 변화하여 갔다. 밀린 CAD나 신용장 네고 후에 추심으로 받지 못한 대금이 150만 달러를 넘어서고 지불연기가 13개월까지 진행됐지만, 기회가 오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자금의 흐름만 잘 유지한다면 시장의 독점은 큰 수익을 주기 때문이다. 
 
다행히 중남미에서 얻은 많은 수익은 아프리카에서 시장의 독과점에 적절히 사용됐다. 경쟁자들의 도태는 수익에 절대적 영향을 미쳐 큰 이윤을 안겨주었다. 사람들은 아프리카가 최고의 위험지역이라며 조심하라고 경고하지만, 신흥시장에는 고위험 고수익이 존재한다. 감수할 수 있고 지배할 수 있다면 기회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앞으로 이러한 수익률은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현재는 아프리카도 상황이 바뀌었다. 시장의 평준화가 진행 중이고, 중국과 인도기업들이 밀려 들어와 부가가치가 예전 같지 않다. 
 
하지만 시장에 맞는 제품과 가격을 준비한다면 언제든 다시 한 번 기회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항상 도사리고 있는 위험
 
아프리카에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무역사기를 일삼는 위장기업들도 매우 많다. 특정국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나라에 존재한다. 
 
사기의 유형도 다양하다. 가장 많은 유형은 오더가 많다고 위세를 보여주며 외상을 유도하는 전형적인 ‘미끼형’이다. 선금을 지불하고 선적이 이뤄지면 제품하자를 이유로 잔금을 지불하지 않는 수법도 흔하다.
 
필자는 본격적인 거래를 하기 전에 해당 국가를 방문해 반드시 바이어를 만나본 후 거래를 하는 방식으로 이런 문제들을 상당 부분 피할 수 있었다. 
 
또 무역보험도 적극 활용했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대금 지불유예는 필자에게도 큰 문제가 됐다. 그렇다고 그것이 무서워 거래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래서 수출보험 부보를 기본으로 했다. 
 
대기업들도 보험을 들고 거래를 하는데 중소기업이 무보험으로 아프리카 국가와 거래를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자동차를 매일 이용하는데 보험도 들지 않고 운행하는 것과 동일하다.
 
▲필자가 아프리카의 한 박람회장에서 에티오피아 TV(EBS) 관계자와 아프리카 시장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필자 제공]
상사중재 재판에서 패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바이어는 나이지리아 바이어다. 필자의 회사는 인조피혁 생산 후 버려지는 ‘B급’을 저렴하게 무게(Weight) 단위로 아프리카 지역에 판매했다. 수량은 20피트 4컨테이너 물량으로 결정을 하고 계근소에서 무게를 확인한 후 수출했다. 
 
그런데 2달이 지난 후 바이어가 80톤이 아니라 40톤만 선적됐다며 부족한 제품에 대한 대금상환을 요구했다. 필자의 회사에서는 선하증권(B/L)을 주기 전에 모두 잔금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이 무엇을 하든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바이어는 국제상사중재위원회(Arbitration)에 제소를 했고, 재판에 참여하라는 통지가 왔다. 한국과 나이지리아가 아닌 필자의 회사 공장이 위치한 중국에서 중재재판을 진행하게 됐다. 우리는 그들이 어떤 주장을 하더라도 증거가 명확히 있으므로 걱정하지 않았다. 컨테이너에 적재 후 무게를 측량하는 공식적인 곳에서 계량을 하여 증빙원을 가지고 있었고. 출항지 항구에서 발행한 무게에 대한 증빙서도 있으므로 어떤 상황이 와도 승소를 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필자가 재판정에 직접 가서 답변을 하는데 심판관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들은 필자에게 변호사를 인선하라며 독촉을 했고 알 수 없는 미묘한 태도를 보였다. 필자는 변호사보다 무역이나 상황을 잘 아는 내가 재판에 참여하는 것이 더 나을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응하지 않았다.
 
중재재판심사위원들은 각 분야에서 다양한 직군으로 활약하는 사람들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무역에 대하여서는 전문적이지 못했다. 필자는 기를 써서 부당함을 알리려 노력했지만, 결과는 패소였다. 바이어에게 3만 달러를 지불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알다시피 무역중재재판은 단심이라 항소도 할 수 없었으며 말도 안 되는 상대의 계략에 밀려 패배를 한 것이다. 
 
나중에 자초지종을 확인해 보니, 나이지리아 바이어는 중국에서 인맥이 두껍게 형성된 전문 변호사를 사서 재판에 응했고, 변호사는 심판원들과 잘 아는 사이였다. 
 
또 한 가지 문제는 필자의 회사 담당직원이 퇴사하면서 바이어에게 회사의 허락 없이 몰래 직인을 찍어 불리한 서류를 준 것이었다. 퇴사한 직원을 형사고발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 직원을 채용한 책임은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재판에서 패배는 처음이라 매우 기분이 언짢았지만 타산지석으로 삼았다. 만약 비용이 들더라도 변호사를 고용하여 대처했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증거가 있어도 인용이 안 된다고 하면 방법이 없다. 나이지리아에서 만든 휘황찬란한 가짜서류에 눈에서 불꽃이 튀었지만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인생이 다 그런 것 아닌가 싶었다. 모든 게 나의 탓이니까.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위험하게 살라”고 했다. 지금 위험하게 살아야 미래가 덜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위험하게 살수록 덜 위험해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다음 호에 계속>
 
 
▲정병도 사장은 1999년 4월 인조피혁제조 및 바닥재 수출회사인 웰마크㈜를 창업한 이후 경쟁기업들이 주목하지 않던 아프리카, 중남미 시장을 성공적으로 개척해 주목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지구 60바퀴를 돌 만큼의 비행 마일리지를 쌓으며 ‘발로 뛰는’ 해외마케팅을 실천했다.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경기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공부했고 고려대학교에서 국제경영석사 과정을, 청주대학교 국제통상 박사과정에서 이문화 협상(CROSS CULTURE NEGOTIATION)을 공부했다. 저서로 ‘마지막 시장-아프리카&중남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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