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제1의 디아스포라 2000만 유대상인 = ‘Rivers of Babylon.’ 독일의 인기그룹 보니 엠(Boney M)이 1978년 리메이크한 이 노래는 경쾌한 리듬과 이국적인 분위기, 짙은 호소력으로 세계적인 명곡이 되었다. 그러나 경쾌한 리듬과 달리 이 노래는 기원전 586년에 예루살렘이 정복된 후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이 바빌로니아 유프라테스 강가에서 옛날의 영화를 한탄하는 슬픈 내용을 담고 있다. 시편 137편(Psalm 137)의 내용을 기초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대인의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고대 로마제국에 맞선 결과 기원후 135년을 전후해 유럽 등지로 흩어져야 했고, 1491년 스페인에서 20만 넘는 유대인이 쫓겨났으며, 2차 세계대전 당시 7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홀로코스트를 거치면서 다시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로 흩어지게 되었다.
 
유대 상인은 자산규모, 인적 우수성, 지배력, 네트워크 면에서 명실공히 세계 제1의 상인집단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유대 상인집단이 초일류 집단이 된 가장 큰 출발점이자 근원은 이 디아스포라(Diaspora)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디아스포라라는 고난과 역경을 자산과 경쟁력으로 바꾼 DNA와 네트워크다.
 
흩어진 유대민족은 토지를 소유할 수 없었고, 토착세력이 꺼리는 무역이나 대금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다. 흩어지면서도 유지한 네트워크와 신앙적 동질성을 무기로 누구보다도 빠른 정보와 그 정보를 종합해서 내리는 판단력, 그리고 대를 이어서 전승한 비즈니스 DNA를 유대집단 간 공유하고 상조했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집단전통으로 저축과 교육 그리고 네트워크 구축에 모든 것을 투자해 왔다.
 
이를 통해 13~15세기 이베리아반도의 경제, 문화적 영화를 선도했고, 축출된 후 옮겨간 유럽의 벽지 벨기에, 네덜란드를 세계적인 무역, 경제, 금융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소금, 향신료 등 당시의 최첨단 고가상품군을 독점했고,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 증권거래소, 중앙은행 제도를 창안했다. 그 정점에 있는 유대계 로스차일드(Rothschild) 가문은 19세기 이후까지 장막 뒤에서 세계 금융계의 황제 역할을 지속하고 있고 다이아몬드, 석유 등 산업계는 물론, 영화, 언론, 학계에 드리우는 전 세계 2000만 유대인의 영향력은 재삼 설명이 불필요하다.
 
●중국판 유대 상인, 460만 객가 = 인도에서 ‘하카누들(Hakka Noodle)’은 중화요리에서 빠짐없이 나오는 면 요리다. 이 하카누들은 중국의 대표적인 디아스포라 상인집단인 객가(客家, Hakka) 상인들이 18세기 전란을 피해 인도 동북부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인도산 향신료를 섞어 혼합한 데서 그 기원을 찾는다. 이러한 하카누들, 그리고 원주 집단요새 형태의 ‘하카하우스(Hakka House)’는 해외 화상(華商)의 기원과 이동, 적응, 성공 과정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해외 거주 중국인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5000만 인구의 약 2조 달러 자산을 통제하고 있고, 연간 800억 달러를 중국 본토에 송금한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도 이 ‘객가일족(Hakka Family)’은 화상 중의 화상으로 꼽힌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이주와 이동의 역사로, 본래 중국 화북지방에 기원을 둔 이 객가는 4세기부터 시작해 19세기의 태평천국의 난, 그리고 20세기 중국 내 전란 등 수많은 전란과 재난을 피해 중국 남부, 그리고 동남아 이주를 지속해 현재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지역에 약 460만 명이 분포되어 있다. 이들은 이동하면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왔고, 객가 간 끈끈한 네트워크를 유지해 동남아 상권 내 가장 큰 세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태국 제2 은행 카시콘뱅크(Kasikorn Bank)의 초티 람삼(Choti Lamsam), 타이텔레콤(Thai Telecom) 창업자이자 총리를 배출한 탁신(Thaksin) 가문, 인도네시아 10대 부자로 센트럴 십타 무르다야(Central Cipta Murdaya)를 창업한 무르다야 푸(Murdaya Poo), 한넝그룹(Hanergy Group) 창업자로 중국 7대 부호인 리허쥔(李河君)이 객가계 상인이다.
경제 외 영역에서도 객가는 수많은 역사적 인물을 배출했는데, 19세기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킨 홍수전(홍슈취안), 대청제국을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건국한 쑨원,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 중화민국 총통을 지낸 리텅후이, 1989년 중국 천안문 사태의 주역 후야오방이 객가계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 객가 집단도 고난 속의 이주와 이동의 역사를 거치면서도 저축과 교육, 그리고 그들 간의 네트워크 구축이란 전통을 굳건히 지켜왔다.
 
▲인도의 경제 관문 뭄바이 바닷가. 인도 금융, IT, 물류, 유통의 중심지로 인도 중앙은행(RBI)이 위치해 있다. 파르시는 약 6만 명의 소수민족으로 주로 인도 구자라트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뭄바이의 개발·성장기 주역으로 참여, 현재 대부분의 파르시는 뭄바이에 거주한다. 사진은 필자 직접 촬영.
●세계 초일류 상인집단 : 6만 인도 파르시 = 2년여 전 전 세계가 코로나19 공포에 시달리고 있을 때, 연산 20억 개 백신 생산 능력으로 아프리카, 중남미, 남아시아 등 개도국의 공포를 덜어 준 곳은 이 인도 파르시(Parsi)계의 세럼 인스티튜트 오브 인디아(Serum Institute of India, SII)였다. 
 
20세기 이후 인류 최대의 기부자는 누구일까? 에델 기브 파운데이션(Edel Give Foundation) 추계에 따르면 750억 달러를 기부한 빌 게이츠도, 380억 달러의 워런 버핏도 아니다. 현재 가치로 환산했을 때, 1050억 달러를 기부한 인도의 파르시계 대표기업 타타(Tata)를 창립한 잠세치 타타(Jamsetji Tata)다. 
 
타타그룹은 기업가치가 1500억 달러에 달하는 인도 제1 기업 TCS(Tata Consultancy Service)를 비롯해 타타스틸, 타타모터스 등 100여 개 이상의 기업군으로 구성된 인도 최대의 기업집단이다. 창업자의 공존 전통에 따라 타타그룹 지분의 약 3분의 2 이상을 타타손즈 등 자선재단이 소유하고 있다. 이러한 산업군과 재단을 통해 그동안 인도 내 수많은 학교, 연구소, 병원, 학교, 공공시설을 건립, 지원했고 인도 근대화를 선도했다. 
 
인도 제1 소비재 기업인 고드레지(Godrej)그룹도 이 파르시계 기업이다. 경제계 외에도 인도 핵개발을 선도한 호미 바바(Homi Baba), 세계적인 지휘자 주빈 메타(Zubin Mehta) 등이 이 파르시계로 파르시 두 집 걸러 한 명이 박사일 정도로 성공한 집단이다. 그러나 이 파르시계 인구는 불과 6만으로 우리나라 홍천군 인구보다도 적다.
 
이 파르시 집단의 파르시 상인 상인은 유대인을 넘어선 초일류 상인집단이 아닌가 한다. 이 파르시계도 디아스포라가 낳은 상인집단이다. 파르시는 이란에서 인도로 이주 정착한 아리안계 상인집단을 일컫는다. 본격적으로 진군한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세계 최초의 일신교로 알려진 조로아스터교(배화교) 신념을 지키기 위해 8~10세기 중 인도 북서부 구자라트(Gujarat)주에 정착한 페르시아계 인도 상인이다. 이주 후에도 자신들의 배화교 전통은 지키되 언어, 복식 등에 인도적 전통을 받아들이고 자신들을 받아준 인도에 대한 자선, 공헌 전통을 지난 14세기 이상 지속해 왔다.
 
●디아스포라 고난을 경쟁력으로 바꾼 유대인, 객가, 파르시 = 이렇게 보면, 이들 세계 최고의 상인집단은 박해와 고난, 이산, 이동이라는 원하지 않는 고통과 수난에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많은 개인, 집단, 사회가 박해와 고난과정을 통해 사멸해 갔다. 하지만 유대, 객가, 파르시 집단의 이산은 자신들의 신앙, 전통을 지키기 위해 감수한 이산, 이동이기도 하다. 상대적인 가치와 여건에 대해서는 타협과 적응을 해야 했지만, 절대적인 가치나 신념에서는 타협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고난을 개인이 아닌 집단 네트워크의 끈끈한 유대와 상부 문화로 극복해 왔고, 이를 최고의 자산으로 승화시켰다. 흩어져 있으면서도, 이동해 가면서도 천 년 이상의 접착제 같은 유대관계와 네트워크를 지속 강화해 왔다. 이러한 네트워크의 기본으로 신용과 신뢰를 최우선으로 두었고, 어긋날 시 공동체에서 퇴출하는 전통을 유지해 왔다. 후손 교육을 통해, 그리고 저축 문화를 통해 정신적, 물질적 토대를 대를 이어 물려줬다.
 
성공한 상인집단의 기반은 상술이 아니라 신용이었다. 개인적 노력, 능력이 아닌 집단적 대응, 응집력과 네트워크의 문제였다.
 
▲김문영은 1998~2002년, 2018~2021년 인도에서만 8년 동안 근무한 인도 전문가다. KOTRA 서남아지역본부장을 지냈으며 현재 우송대학교 SolBridge 국제경영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3,000년 카르마가 낳은 인도상인 이야기(2021)’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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