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중앙아시아기행

kimswed 2006.12.15 13:52 조회 수 : 2262 추천: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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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중앙아시아라고 부르는 지역은 넓게 보아서 중국의 대싱안링 산맥에서부터 카스피해까지를 말한다. 좀더 좁은 범위로는 중국 신장지역부터 카스피해까지를 지칭하기도 한다. 아시아 대륙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이 지역의 지리적 특징은 높고 험한 산맥과 광활한 평원 그리고 모래투성이의 사막이다.

이런 지리적 특성 때문에 이 지역의 주인공들은 오래전부터 유목생활을 하는 유목민들이었다. 초원과 사막에서 유르따와 게르 같은, 견고하면서도 이동성을 극대화한 전통가옥에서 양, 염소, 말과 함께 생활하는 유목민들이 그들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의 음식은 양고기를 위주로 한 육식이 대부분이다. 유목의 생활방식은 많이 사라졌어도, 유목의 음식전통은 유지하고 있는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다보면 이런 음식을 많이 접할 수가 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많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양고기 볶음밥인 '쁠로프'와 양고기국인 '슈르빠'다. 양고기가 주로 들어간 음식이라서 특유의 향과 느끼한 기운이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먹었던 음식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독특한 양고기의 향 때문에 낯설게 여겨졌지만,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딱'이라고 생각되었던 메뉴다. 가격은 한 그릇에 보통 한국 돈으로 600~800원 정도.

또 많이 볼 수 있는 음식은 '삼사'다. 우리나라의 군만두 비슷한 음식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우리나라의 그것보다 더 크고, 안에는 양고기가 들어있다. 우리나라의 군만두는 한입에 쏙 넣을 수 있지만, 이 삼사는 크기 때문에 어지간히 큰 입이 아니라면 한입에 넣을 수 없다. 그러다보면 당연히 한손에 들고 여러 번에 걸쳐서 베어 먹어야하는데, 한입 두입 먹다보면 안에서 양고기 기름이 흘러나와서 난처한 몰골로 변하기 쉽다.

▲ 양고기 볶음밥과 양고기 국
ⓒ 김준희
▲ 삼사와 토마토 샐러드
ⓒ 김준희
그리고 과일이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많이 먹은 과일은 토마토하고 포도, 수박이다. 맛도 좋고 가격도 싸기 때문에 느끼한 음식을 먹은 후에 입가심으로도 좋다. 내 머리만한 수박 한통이 600원, 주먹만한 토마토 10개에 300원, 포도 1kg에 400원 이런 식이다.

또 '딩야'라는 이름의 과일이 있다. 수박과 비슷한 모양인데 약간 길쭉하고 겉이 노란색인 과일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메론과 비슷하다고 할까. 이 과일도 여름에 냉장고에 넣어서 차게 한 후에 썰어 먹으면 수박 못지않게 시원한 맛을 볼 수 있다. 가격도 수박과 비슷한 수준이다.

고려인들이 있는 곳에 가면 '국시'라는 음식을 판다. 우리나라 표준어로는 국수겠지만, 이곳에서는 모두 '국시'라고 부른다. 어느 카페의 메뉴판에는 친절하게도 영어로 'kukcy'라고 표기해둔 것도 보았다. 아마 한국인이 이곳을 여행할 때 가장 입맛에 맞는 음식이 이 국시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잔치국수를 차갑게 만들었다고 하면 비슷할까.

▲ 수박과 딩야를 파는 노천가게
ⓒ 김준희
▲ 국시와 차이
ⓒ 김준희
카자흐스탄과 키르키즈스탄으로 오면 약간 다른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많이 접했던 쁠로프와 슈르빠 대신에 카자흐스탄과 키르키즈스탄에서는 주로 라그만을 많이 먹었다. 중앙아시아식 짬뽕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라그만은 두꺼운 면발에 각종 채소와 고기를 얹어서 걸쭉한 국물에 담아낸 음식이다.

이 라그만도 입맛에 맞아서 많이 먹기는 했는데 더운 햇살 아래서 이 뜨거운 국물을 먹기가 쉽지 않다는 점, 그리고 이곳에는 젓가락이 없어서 포크로만 면을 먹어야 한다는 점 등이 아쉽기도 하다.

그리고 카자흐스탄에서는 운 좋게도 이 나라의 전통음식인 '베스빠르막'을 먹을 수 있었다. 발하쉬 호수를 여행하면서 알게 된 현지인 친구들의 초대로 이 음식을 맛보았다. 삶은 소고기와 양파, 감자가 섞인 이 음식은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는 음식이다. 다만 현지인들은 보통 소고기가 아닌 말고기나 양고기로 베스빠르막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음식은 지역과 만드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서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 나는 베스빠르막의 여러 종류 중에서 한 가지만을 맛보았을 뿐이다.

▲ 카자흐스탄의 전통요리, 베스빠르막
ⓒ 김준희
중앙아시아 어느 나라를 가던 공통적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바로 '리뾰쉬까'라고 부르는 전통 빵과 '차이'다. '리뾰쉬까'는 러시아 어고,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난'이라고 부른다. 쟁반만한 둥그런 크기에 독특한 문양이 인상적인 이 빵은 중앙아시아 어느 식당에 들어가더라도 주문할 수 있는 음식이기도 하다.

특별한 양념이나 향신료 없이 그냥 만든 이 빵은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만든 지 얼마 안 된 리뾰쉬까를 잔뜩 쌓아두고 파는 가게를 지날 때면 특유한 구수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가격도 싸다. 바자르에서 150~200원이면 하나를 살 수 있다. 현지인들은 이 빵을 작게 찢어서 라그만이나 슈르빠 국물에 찍어 먹기도 한다.

차이는 '질료니' 차이와 '쵸르니' 차이가 있는데 영어로는 각각 'green tea', 'black tea'라고도 한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주로 질료니 차이를 마셨는데 카자흐스탄과 키르키즈스탄에 오니까 이곳에서는 쵸르니 차이를 더 선호하는 것 같다. 이 차이도 어느 식당을 가던 기본적으로 주문할 수 있을 뿐더러 가격도 싸다. 작은 주전자 하나에 보통 200~300원 정도고, 인심 좋은 곳에서는 공짜로 리필해주기도 한다.

▲ 라그만과 리뾰쉬까 그리고 차이
ⓒ 김준희
어디로 여행을 가던지 간에 즐거움 중 하나는 현지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음식종류가 다양하고 가격도 싸다면 금상첨화일 테다. 그런 점에서 중앙아시아는 꽤 매력적인 장소일 수 있다. 양고기에 대한 거부감만 없다면, 입맛이 그리 까다롭지 않은 여행객이라면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중앙아시아다.

중앙아시아를 떠나는 날, 난 오전에 시내를 걸어 다니면서 라그만과 삼사, 차이를 먹었다. 이제 비쉬켁을 떠나면 중앙아시아를 떠나는 것이고 그러면 몇 달 동안 지겹게 들어왔던 러시아어도 못들을 테고, 중앙아시아의 음식도 못 먹게 된다. 그동안 여행하면서 먹어온 많은 음식들, 그중에서도 특히 라그만과 리뾰쉬까가 생각날 것만 같다. 어쩌면 난 이 음식이 먹고 싶어서 중앙아시아에 다시 오게 될지도 모른다.

오후가 지나서 2일간 묵었던 호텔을 나와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택시 밖으로는 넓은 벌판이 펼쳐져 있다. 떠오르는 얼굴들. 엉터리 여행자인 나를 도와주었던 우즈베키스탄의 수잔나, 카자흐스탄의 친구들 아스카와 아이굴 그리고 키르키즈스탄의 친구 에르킨.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지역을 즐겁게 여행할 수 있던 것은 모두 친구들의 친절과 웃음 때문이다.

마나스 국제공항에 도착해서 남은 돈을 모두 달러로 환전하고 나서 출국심사대를 통과했다. 공항의 직원은 내 얼굴과 여권을 보더니 비자에 출국도장을 찍어주었다. 내가 타는 비행기는 중국남방항공사의 비쉬켁-우루무치-베이징 항공편이다. 오늘 저녁에 비쉬켁을 떠나면 우루무치에서 하룻밤을 자고 내일 낮 12시경에 베이징에 도착한다. 호텔숙박권을 포함한 이 항공편의 가격은 328달러다.

심사대를 통과해서 게이트 앞의 대기실로 가자 그곳에는 많은 중국인들이 있었다. 그동안 들어오던 러시아어와 함께 중국어가 들리기 시작한다. 못 알아듣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오래전부터 홍콩영화를 통해서 익숙해진 중국어가 좀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내가 중앙아시아를 떠난다는 것이 실감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여행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러시아어는 '앗 꾸다?'라는 말이다. '너 어느 나라에서 왔어?'라는 의미다. '까레야(한국)'라고 대답하면 십중팔구 상대방은 다시 '세베르니 까레야? 유즈니 까레야?'라고 되묻는다. '세베르니 까레야'는 북한, '유즈니 까레야'는 남한이다. 북한에서 배낭 메고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많이 받다보니까 나중에는 '세베르니 까레야!'라고 말하고 싶은 장난기가 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끝내 그렇게는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말했을 때 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랐고, 내 마음 한구석에는 북한사람으로 보이기 싫은 생각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 숨막히는 사막, 우즈베키스탄의 키질쿰
ⓒ 김준희
7시가 되자 게이트가 열렸다. 기내에 올라서 창가 쪽의 자리에 앉은 나는 그동안 여행하면서 보았던 잊을 수 없는 풍경들을 떠올렸다.

인간이 망가뜨린 아랄해와 뜨거운 햇살아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던 키질쿰 사막, 해발 3163m에서 바라본 웅장한 천산산맥의 줄기, 거대한 괴물이 살고 있다는 파란 이식쿨 호수와 그 너머로 보이던 만년설을 간직한 산맥. 그리고 러시아에서 본 바이칼을 생각했다. 바이칼 알혼섬의 정보센터에 붙어있던 글귀.

'Think Like Baikal'

최고수심이 1600m에 이른다는, 수십 개의 물줄기가 들어오지만 오직 앙가라 강을 통해서만 빠져나간다는 바이칼. 그 바이칼처럼 넓고 깊게 생각하라는 의미일까.

7시 30분이 되자 비행기가 이륙했다. 거대한 굉음을 일으키며 활주로를 질주하던 비행기는 곧 하늘로 날아올랐다. 창밖으로는 중앙아시아의 벌판이 어둠 속에 펼쳐져 있다. 그 어둠을 바라보면서 난 머릿속으로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구절을 떠올린다. 이제 중앙아시아를 떠난다.


내가 근심에 지쳤을 때
그리고 인생이 온통 길 없는 숲속과도 같을 때
얼굴에 거미줄이 걸려 간지러울 때
내 눈에 작은 가지가 스쳐 눈물이 흐를 때

나는 잠시 세상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서 새 시작을 하고 싶습니다.
운명이 나를 잘못 이해해서 내 바램을 절반만 들어주어,
나를 데려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사랑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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