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몰락 잔혹사

kimswed 2024.06.17 06:44 조회 수 : 11

 

중국화’로 다국적기업 등 외면
‘금융허브·국제도시’ 위상 상실
외국인 이어 토박이까지 탈출

홍콩 탈출. 영화 제목 같은 이 말은 1997년 홍콩 반환 직후부터 언론에 오르내렸다. 중국이 내세운 ‘일국양제’ 약속을 못 믿은 많은 홍콩인들이 영국이나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면서 생겼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국제사회는 일국양제 약속을 믿었고 홍콩의 위상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어느 정도 안정되나 싶었던 홍콩 탈출은 2019년 중국이 홍콩의 민주화 시위를 강압으로 진압하면서 다시 불이 붙었다. 이때에는 많은 외국기업이나 외국인투자자, 경제인들이 홍콩을 떠났다. 홍콩이 권위주의 체제로 이행하는 것을 두려워한 때문이었다. 특히 중국의 ‘제로 코로나’를 위한 봉쇄 정책은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홍콩 탈출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7월 강력한 처벌 규정을 가진 중국의 ‘반간첩법’ 개정 법안이 발효됐고 올해 3월에는 홍콩 ‘국가보안법(수호국가안전조례)’이 시행되면서 다시 홍콩 탈출이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엔 홍콩 탈출뿐만 아니라 홍콩 입국 감소까지 확연해졌다. 
 
홍콩 당국과 중국 정부는 이를 되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백약이 무효’다. 홍콩은 이제 ‘옛날의 홍콩’이 아니다. 국제도시로서 위상을 잃었으며 중국 광둥성의 한 도시로 전락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홍콩=AP/뉴시스] 2019년 9월11일 홍콩의 한 쇼핑몰에서 시위대가 홍콩 시위의 상징이 된 ‘홍콩에 영광을’ 노래를 부르고 있다. 홍콩 고등법원은 올해 5월 이 노래를 부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홍콩의 자유 침해와 '중국화'에 대한 우려가 한층 더 커지고 있다.
●판사들도 떠나다 = 6월 초 시선을 끈 외신기사 중 하나는 홍콩 최고법원 판사의 사임을 알리는 기사였다. 6월 6일 홍콩 최고법원인 종심법원에 사임계를 제출한 영국인 비상임 판사 조너선 섬션(75)은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기고한 ‘홍콩의 법치는 심각한 위험에 처했다’는 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신랄한 ‘사임의 변’을 밝혔다.
 
“한때 활기차고 정치적으로 다양한 커뮤니티였던 홍콩은 서서히 전체주의 국가로 변하고 있다. 법치는 정부가 강하게 느끼는 어떠한 분야에서도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그는 이어 “홍콩에서 판사의 자유는 심각하게 제한됐다”고 쓴 그는 “중국이 만든 거의 불가능한 정치적 환경에서 활동하는 법관들 사이에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며 47명의 홍콩 민주 활동가에 관한 최근 판결이 그러한 문제의 징후였다고 지적했다. 앞서 홍콩 법원은 5월 30일 국가보안법상 전복 혐의를 적용해 전 입법회(의회) 의원 등 민주활동가 47명 중 14명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이들은 추후 최대 종신형을 받을 수 있다.
 
해당 판결 일주일만인 6일 섬션과 함께 또 다른 영국인 판사인 로런스 콜린스가 홍콩 종심법원에 나란히 사임계를 제출했다. 콜린스 판사도 앞서 성명을 통해 “홍콩의 정치 상황 탓에 사임한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전날에는 홍콩 종심법원의 캐나다인 판사인 베벌리 맥라클린도 사임계를 제출했다. 홍콩국가보안법 시행 이전 15명이었던 홍콩 종심법원의 외국인 비상임 판사는 맥라클린 판사의 사임으로 7명으로 줄게 된다.
 
●중국인들도 안 오는 홍콩 = 중국의 휴일마다 홍콩이 중국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았던 일도 이제 옛말이 됐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보도에 따르면 금∼일요일인 6월 7∼9일 홍콩으로 입경한 사람 수는 42만4840명에 불과했다. 이중 33만3692명은 중국 본토인들이었다. 반면 같은 기간 홍콩인은 홍콩 바깥으로 총 130만회 여행을 떠났으며, 그중 89%가 중국 본토와의 국경 육로 검문소를 통과했다. 
 
이는 단오절 연휴(8∼10일)를 중국 본토에서 보내려는 홍콩인들이 같은 기간 홍콩을 여행하려는 중국인의 3배 이상이었다는 의미다. 지난해 5월부터 올해 4월까지의 통계도 비슷하다. 홍콩인들은 육로 검문소를 통해 7400만회 이상 중국을 찾은 반면 중국인은 2800만회 홍콩을 찾았을 뿐이다.
 
홍콩 식당매니저협회 대변인 조너선 렁은 SCMP에 “요즘 성수기와 휴일은 더 이상 우리가 전통적으로 보아온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며 “과거에는 그런 때면 자동적으로 매출 증가와 거리 인파 증가를 기대했지만 더 이상 그런 일은 없다”고 말했다.
 
●용의 몰락... 가난해진 홍콩 = 글로벌 기업들이 떠나고 경제가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홍콩은 가난해졌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홍콩의 집값 하락세가 5년째로 접어들면서 20여 년 전의 사스 사태 이후 최장기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분석에 따르면 상업용 부동산 부문의 손실까지 합치면 2019년 이후 홍콩의 부동산 시장에서 최소 2조1000억 홍콩달러(2700억 달러·약 372조 원)가 증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은행 UBS와 부동산 중개업체 CBRE그룹의 전문가들은 향후 홍콩 부동산 시장이 더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아시아 최고 금융 허브라는 위상이 타격을 입으면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2019년 민주화 시위 이후 시작된 홍콩의 미래에 대한 우려는 최근 중국 당국의 신뢰 회복 노력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홍콩 보안법 통과가 가세하면서 한때 부동산 수요의 한 축이었던 외국인 거주자들과 국제적인 기업들의 부동산 수요 약화를 촉발했다.
 
블룸버그는 현재 홍콩에서 금융 시스템 전반에 대한 위기가 예측되지는 않지만, 이번 경기 침체가 홍콩에 대한 신뢰 하락의 악순환을 부채질할 위험이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 2월 홍콩 당국이 10년간 유지했던 부동산 규제를 완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가격이 계속 하락하면서 홍콩의 주택 지수는 5월 26일로 끝난 주에 2016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중국 언론 차이신은 홍콩의 세수에 토지 판매·임대수익을 더한 총 국가재정 보유액이 올 3월 기준 7050억 홍콩달러(약 120조원)로 2020년 3월 1조1000억 홍콩달러(약 188조원) 대비 36% 증발했다고 최근 보도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시점에 비해서도 16%나 줄어든 규모다.
 
●어쩌다가 몰락했나 = 1980~1990년대 홍콩은 아시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 도시로 손꼽혔다. ‘아시아 4마리 용’ 중 하나로 꼽혔다. 자유로운 외환 거래, 유연한 노동시장, 낮은 세율과 최소한의 규제 등으로 전 세계 큰손들이 홍콩으로 몰려들었다. 홍콩은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세계 금융산업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하지만 중국 반환, 그리고 빠르게 진전된 ‘중국화’가 모든 것을 바꿨다. 특히 홍콩 민주화 운동으로 위기를 느낀 중국 정부가 홍콩의 자유를 박탈하고 통제를 강화하면서 위기가 닥쳤다. 중국은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빌미로 2020년 6월 홍콩국가보안법을 제정했다. 또 간접선거를 강화하는 선거제 개편을 통해 행정·입법부를 모두 친중파로 채웠다. 지난 3월부터는 반역·내란 등의 혐의에 대해 최고 종신형을 선고할 수 있는 ‘기본법 23조’를 시행했다.
 
그러는 사이 아시아의 금융허브 지위는 홍콩에서 싱가포르로 넘어갔다. 홍콩의 ‘중국화’에 위기의식을 느낀 외국인투자자와 글로벌기업들은 싱가포르 등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제너럴모터스, 다이슨 등 다국적 기업 4200곳이 싱가포르에 아시아 지역 본부를 새로 마련한 점이 이를 보여준다. 반면 홍콩에 진출한 미국 기업 수는 4년 연속 감소해 2022년 6월 기준 1258개로 쪼그라들었다. 2004년 이후 가장 적은 수다. 
 
게다가 중국 정부의 홍콩 여론 통제는 점점 더 촘촘해지고 있다. 인터넷 검열과 웹사이트 접속 차단 조치까지 강화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의 홍콩 주재 총영사 그레고리 메이는 3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홍콩이 인터넷 내 특정 콘텐츠를 제거하고 특정 웹사이트 접속을 차단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며 “홍콩의 자유를 단속하는 중국의 검열이 홍콩의 매력을 반감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홍콩에서는 영어마저 사라지고 있다. 거리의 간판에서도 영어가 사라지고 있으며 중국어나 광둥어를 모르는 외국인이 생활하기 힘들어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영국이 빠진 자리를 중국이 채우면서 나름 독립국가의 위상을 가졌던 홍콩은 이제 광둥성 내 하나의 도시처럼 변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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