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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장 도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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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베트남이 새해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 1천400㎞에 달하는 양국 국경선에 대한 합의를 이뤄냈다.

중국과 베트남 정부 대표는 지난해 12월 31일 자정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하노이에서 협상 끝에 양국 국경선을 확정하는 데 합의했다고 AFP 통신이 1일 보도했다. 1979년 양국이 국경 분쟁으로 한 달 동안 전쟁을 치른 이후 30년 만이다. 이번 합의로 양국은 경제·사회·문화 등 다방면에서 활발한 교류를 할 전망이다.

양국 정부는 2000년 국경 문제에 대한 분쟁을 2008년 말까지 끝내자고 합의한 바 있다. 양국 정부 대표는 이날 발표된 성명서에서 “국경선에 대한 경계가 확정됐으며 더 이상 분쟁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양국 정부는 대만·브루나이·말레이시아·필리핀이 동시에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남중국해 스프래틀리스 군도에 대한 국경 문제는 관계국들과 계속 협의하기로 했다.

양국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부부장과 푸둥 베트남 외교차관은 “(이번 합의는)역사적 사건이며 양국은 이제 평화와 안정, 그리고 변경지대의 상호 발전을 위해 모든 노력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양국 대표들은 이날 베트남 북부 하이퐁 항구와 중국의 윈난(雲南)과 광시(廣西) 장족자치구를 도로로 연결해 상호 변경무역을 활성화하기로 합의했다. 특히 베트남 정부는 북부 지역을 중국에 개방해 무역을 활성화하고 산업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앞서 응웬 떤 중 베트남 총리는 지난해 10월 중국을 방문해 후진타오 주석과 정상회담을 열고 양국이 경제·문화·사회 등 여러 방면에서 단계적으로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었다. 지난해 7월 중국 정부는 미국 석유회사 엑손모빌이 베트남 정부와 남중국해 연안 해저석유 개발 협상을 벌이자 영유권 침범 가능성이 있다며 양측 협상을 중단시켰다.⊙
 
필리핀 사람들이 영어를 잘하는 이유

우리 사무실에 필리핀 사람들, 정말 ‘대단쓰’가 아닐 수 없다는 걸 매일 실감한다. ‘대단쓰’, 대단하다는 내가 만든 말이다. 물론 내가 만든 말이니까 나만 쓴다. 그래도 듣는 사람들은 뭔 소린지 다들 안다. 말이란 게 원래 이런 게 아닐까 한다. 대충 어디서 들어본 것 같고 어감 비슷하면 뜻이 통하는 것, 그래서 신조어란 게 매일 생겨나고 외계어가 웹사이트에서 튀어나와 실생활에 까지 통용되는 게 아닐까 한다.

필리핀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질 때는 이들이 거침 없이 말하는 영어 발음이 몽땅 다 필리핀 고유 토속어인 ‘따갈로그’ 발음이라는 걸 실감할 때이다. 매번, ‘어떻게 저런 발음을 하면서도 영어를 저렇게 유창하게 할까?’ 하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영어는 어디에서 배웠냐고 물으면 모두들 그냥 “학교에서”라고 아주 쉽게 답해준다. 필리핀 사람들이 영어를 잘해도 모두 잘하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고등 교육을 받은, 정식으로 영어를 공부한 사람들이 영어를 잘해도 잘한다.
해외에서 근무하다 보니 우리 나라 사람 중에도 영어 꽤나 한다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나본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된장 발음에 한 박자 쉬어가는 영어가 대부분이다. 무슨 말인고 하면, 미국이나 영국 같은 영어권 국가에서와 같은 거의 원어민 수준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만나 보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 정도 영어 실력을 갖췄다면 이런 모래밭과 돌산 사이를 오가며 일을 해야 하는 곳은 꺼리겠지만, 내가 만나 본 우리 나라 사람들 가운데 자칭 타칭 영어 잘한다는 사람들 치고 대부분이 ‘콩글리시’ 수준을 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분은 천재적이라고 까지 생각되었을 정도로, 영어 단어 100개 정도 수준에서 전치사도 시제 변화도 하나 없는, 그야 말로 단어와 단어의 나열 정도 만으로도 현지 종업원에게 업무 지시를 내리고 영국, 네덜란드 등에서 날아온 해외 바이어와 거침 없는 대화를 나누던 어느 회사 공장장이었다. 이 분은 그런 출중한 영어실력 덕분인지 그 당시 베트남에서 4년을 지내는 중이라 하면서도 베트남어는 단 한마디도 배울 생각도 않는 눈치였다.
반면에 베트남에 정착하려고 적극적인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베트남어를 습득하려고 노력한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베트남 땅에 발이 닿자 마자 그 즉시 현지인 애인을 만들어 밤낮으로 베트남어로 대화를 주고 받고, 그러다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나중에는 거의 베트남 사람이나 다를 바가 없는 삶을 살게 되어도 베트남어를 베트남 사람처럼 말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질 못했다. 상대하는 사람마다 구사하는 용어와 대화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걸 간과한 결과가 아닌가 한다. 아무리 베트남 생활을 오래했어도 베트남어를 배우려는 열성과 노력이 부족했다는 결말이다. 물론 베트남 아닌 다른 나라, 다른 언어를 접할 때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필리핀 사람들이 영어를 한국 사람 보다 쉽게 익히는 비결이 항상 궁금하던 차에 우연찮게 실마리를 얻게 되었다. 언어학자도 아니고 언어학에는 별로 아는 게 없으므로 그냥 그럴 것 같다는 내 생각일 뿐이다. 한 번은 아랍어 교재를 구하려고 백방 노력 중에 사무실에 굴러다니는 영어와 필리핀어가 병기되어 있는 아랍어 교재를 발견했다. 필리핀어는 모르지만 영어가 같이 표기 되어 있으므로 쉽지는 않아도 아랍어 입문서 정도는 되겠거니 해서 잠시 들여다 보던 중에 ‘따갈로그’라는 말의 속성에 대해서 어렴풋이 개념이 잡히기 시작했다.
‘따갈로그’ 말 속에는 영어에서 왔음직한 단어도 있었고, 스페인어로 보이는 단어도 있었기 때문이다. 즉, ‘따갈로그’도 ‘크레올Creole’의 한 갈래라는 이야기다. ‘크레올’이란 옛 날 17, 18세기에 한창 유럽의 발명과 발견의 시기에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던 사람들, 다른 안목으로는 침략자들이었던 유럽인들과 세계 각처 - 주로 도서島嶼(섬) 지방 토속민들 사이에서 생겨난 혼혈인들과 그들의 언어를 이야기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 해서 생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따갈로그’의 정체를 캐묻던 도중 재미난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필리핀 사람들 사이에서도 어느 지방에서 왔냐에 따라서 사용하는 같은 ‘따갈로그’ 말이지만 의미가 다른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다가도 ‘이런 단어는 이런 뜻이다’ 라고 마치 예전 7~80년대 컴퓨터 언어 프로그래밍 하듯이 대화 전에, 또는 대화 도중에 사전 선언을 해준다는 것이다. 이 말은 다시 말해 내가 만들어낸 ‘대단쓰’라는 자가조어(自家造語)처럼 필리핀의 국어인 ‘따갈로그’ 역시 생겨난 지가 얼마 안된, 지금도 변화를 거듭하는 성장 도중에 있는 언어라는 이야기다.
이것이 바로 내가 찾아낸 필리핀 사람들이 우리 보다 쉽게 영어를 습득하는 비결이 아닌가 한다. 즉, 필리핀의 ‘따갈로그’는 조상 중 한 쪽이 유럽어이므로 유럽어와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우리말과는 달리 영어에 근접해 있는 언어이고, 그런 언어환경에 있는 필리핀 사람들이 비록 ‘따갈로그’식 발음이지만 우리 보다 영어가 유창한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필리핀 사람들은 대졸자라면 거의 모두가 어느 정도 수준의 영어를 구사한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자국에서 보다 높은 보수를 얻기 위해서 자기 나라를 떠나서 생활한다. 자국어에 영어에 아랍어에 ‘만다린’(북경어, 중국 표준어)까지 구사한다는 그네들에게 “내가 보기엔 당신네들 모두 천재인데 나라는 왜 그 모양으로 그렇게 가난하냐?’라는 물음에 “부정부패가 너무 심해서”라는 판에 박힌 답이 돌아오지만, 우리 나라도 부정부패라면 지금도 그다지 깨끗한 나라가 아니기에 그 답은 정답이 아닌 거 같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필리핀 사람들처럼 쉽게 영어를 익혀 너도 나도 해외 생활을 하고 있었다면? 아마도 우리도 지금쯤 필리핀과 다름 없는 나라가 되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비전문가의 사적인 견해에 불과한 것이므로 반대 의견이 있다거나 틀린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밝혀두는 바이다. 전문적인 분야에서 오랜 세월 연구 끝에 알아낸 것이 아니므로 모든 반론에 겸허할 것이며 진실 앞에 숙연할 것임.

 

원시성을 간직한 '풍요의 물줄기' 메콩강

그 생생한 삶의 현장 속으로

메콩강은 세상에서 가장 긴 강 중의 하나로 티벳 고원에서 발원하여 중국과 미얀마를 거쳐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동해까지 이어지는 장장 4,500km의 도도한 물줄기다. 특히 베트남 최남단 인도차이나 꼬리부분에 위치한 메콩강 삼각주는 풍요의 땅이다.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너른 들에 푸른 벼가 익어가고 바다같이 넓은 강을 끼고 원시림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황토빛 강물에 보석처럼 떨어지는 햇살에 눈을 부비고 어부들이 그물을 드리운다. 크고 작은 배들은 무언가를 가득 싣고 분주히 오고간다.

베트남의 빵 바구니 메콩Mê kông 델타
메콩강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하나는 쩌우독Châu Đốc과 껑터Cần Thơ를 거쳐 바다로 향하고, 다른 한 줄기는 띵양Tiền Giang 성으로 흐르다가 빈롱 지역에서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 강줄기의 나뉨이 마치 9룡이 구비치는 것 같다 해서 구룡Cửu Long 강이라 불리우기도 한다.
이곳의 강줄기를 모두 연장하면 5천 km, 강물이 실어온 퇴적물로 메콩 델타는 농사짓기 비옥한 땅이 되었고, 이 퇴적물로 메콩 델타해안은 매년 79미터씩 넓혀왔다.
원시성을 간직한 풍요의 물줄기
베트남 빵바구니 메콩 델타는 베트남 쌀의 60% 이상을 생산해낸다. 이곳에서 나는 쌀은 베트남 국민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아 수출까지 할 정도다. (세계 3위 쌀 수출국) 물론 델타 지역의 산물은 쌀 뿐만이 아니다. 코코넛, 사탕수수, 열대과일, 어류 등이 무진장으로 생산된다. 한편 원초적으로 원시성을 유지하고 있는 메콩 삼갖주 일대는 베트남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인구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풍요롭다는 뜻이 아닐까.

메콩 델타의 역사Lịch Sử 속으로
메콩 델타는 오랫동안 크메르 왕국의 땅이었지만 18세기 후반에 베트남에 병합되어 베트남인들이 대거 이주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이 지역에 사는 대부분의 주민들은 거의 베트남인들이지만 크메르인, 중국인, 참족의 수도 상당하다. 한때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즈 군은 이곳을 침범하여 주민을 학살하기도 했는데, 이에 대응에 베트남군이 캄보디아를 공습해 크메르 루즈군을 권좌에서 물러나게 했던 것이 79년의 사건이다.

베트남 전쟁Chiến Tranh VN을 이겨낸 인고의 강
메콩강 보트 여행은 대단히 매력있다. 바다처럼 넓은 강, 바나나와 야자수 잎이 하늘을 가린 좁은 수로를 따라 마을을 찾아 나서는 재미가 보통이 넘는다. 하지만 알고 보면 바로 이곳은 베트남 전쟁 때 미군과의 치열한 전투가 끊임없이 벌어진 슬픈 역사를 간직한 장소다. 메콩 델타지역은 베트남의 곡창지대로 게릴라들이 활동하기 최적의 장소로, 사이공과 가깝기도 한데다 하늘 높이 치솟은 열대 수림, 망그로브 늪지, 사람 키보다 높이 자란 풀 등 그들이 숨어서 활동하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장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군들은 치고 빠지는 게릴라군들에게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악어, 뱀, 거머리, 전갈, 독거미, 모기 , 말라리아 등과 싸우느라 죽을 맛이었다. 게다가 도처에 민간인이 많아 무작정 폭격을 가하는 것도 무리였다. 헬기에서는 기관총을 쏘고 수상에서는 초고속 스피드 정이 순찰하며 카누로 돌아다니는 게릴라를 소탕했지만 베트콩 역시 부비트렙 설치, 야습, 반동분자암살, 지뢰 매설로 이들에 대항했다. 이후 밤엔 베트콩이, 낮에는 미군이 지배하는 상황이 계속되었고 심지어 남베트남군과 베트공이 이 지역 주민들을 서로 징집함으로써 동족상잔의 비극이 종종 일어나기도 했다.

망그로브 늪지에 뿌려진 고엽제
미군들은 좁은 수로를 헤집고 다니는 베트콩을 찾아내기 여의치 않자 에이전트 오렌지라는 고엽제를 사정없이 뿌려댔다. 망그로브 늪지를 없애 베트콩을 일거에 소탕하겠다는 작전이었다. 하지만 이 작전은 먹을 것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베트콩을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고엽제에 맞은 나뭇잎이 떨어져 늪지 새우의 먹이가 되었고 이 새우를 잡아 허기진 배를 채웠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베트남 전에서 7천 2백만 리터의 고엽제를 뿌려댔다. 이 고엽제의 양을 휘발유로 따지만 1만대의 차량이 3년동안 출퇴근하고도 남을 양이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이 음식과 모유에서 발견될 정도로 후유증이 막심한 것도 다 이 때문이다. 또한 미국이 베트남 전에서 사용한 폭탄의 양은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450배가 넘는 1천 3백만톤에 이른다. 미국이 쓴 전비를 이들에게 나눠준다면 일인당 2천불씩 돌아간다. 미국이 이 돈을 베트남인들의 후생비용으로 썼다면 미국은 베트남 전에서 분명히 이겼을 것이고, 지금도 전국방방곡곡에서 미국을 찬양하는 노래가 메아리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메콩 삼각주 여행의 하이라이트, 메콩 수상시장 Chợ Nổi
메콩 델타에서 가장 매력적인 장소로 꼽을 만한 게 바로 메콩 수상시장, 즉 쩌노이 Chợ Nổi다. 메콩 델타 삼각주의 교통 중심에는 미토Mỹ Tho, 껀터Cần Thơ, 빈롱Vĩnh Long, 까이배Cái Bè 등의 도시가 즐비하고 이들 도시 주변에는 예외없이 큰 수상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수상 시장은 메통 사람들의 생활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메콩강 사람들이 정성을 다해 생산한 각종 산물이 이곳 수상시장에 모여든다. 작은 배에서 거대한 삼판에 이르기까지 수상시장은 수십, 수백척의 크고 작은 배들로 장관을 이룬다. 각 배에는 바나나, 두리안, 파인애플, 야자수 등 각종 과일이 수북하고 쌀, 채소등 농산물과 새우, 메기, 숭어등 각종 수산물도 헤아릴 수없이 많다. 또한 오리 닭 돼지 등 가축과 대바구니, 항아리 등 각종 수공예품도 눈에 띤다.

한편 강변에는 물 위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집을 세운 수상 가옥들이 늘어서 있다. 이 가옥 주변에도물건을 파는 상인들이 많이 모여든다. 강 위에는 큰 배들이 정박해 있고 작은 배들은 분주히 오가며 물건을 교환한다. 메콩델타 구석구석에서 나온 사람들은 가져온 물건을 팔아 일상용품과 바꾼다. 동이 트는 새벽 희뿌연 안개를 뚫고 분주히 드나드는 작은 배들의 움직임은 영화속의 한 장면 같이 여행자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메콩델타의 배 모양은 한결같이 독특하다. 작은것은 거의 뱃전에 수면이 닿을 듯하고 한 쪽으로 쏠리면 금방이라도 뒤집힐 것 같아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하지만 이런 배들은 이 지역 사람들은 자신의 손발처럼 가지고 논다. 이들 작은 배들은 소형 엔진으로도 움직인다. 배 뒤편에는 작은 엔진이 있고 이 엔진에 연결되는 쇠막대기 끝에는 프로펠러가 달려있다. 뱃사공들은 이 쇠막대기를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배를 몬다. 또한 메콩강의 배들은 한결같이 빨간 얼굴과 검은 눈을 뱃머리에 장식하고 있다. 눈을 부라리는 모습은 마치 사찰의 금강역사처럼 부정한 기운이 접근하는 막기 위한 것이다.

한편 배가 조금 더 커지면 단순한 교통수단이라기 보다 주거양식이 되고 만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배에서 먹고 자고 한다. 배에는 햇빛과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지붕이 있고 이 침대 아래에는 그물 침대와 각종 취사 도구가 두루 갖추어져 있다. 수상족들은 메콩 강에 그물을 치고 물고기를 잡아 그것을 시장에 팔고 그것으로 식량이나 생활 용품을 사서 생활한다. 한편 지붕까지 갖추어 원통형으로 보이는 큰 배들은 메콩강 줄기를 오가며 밀무역을 하기도 한다.

항아리가 많을 수록 부자?
땅 위에 집을 지은 사람들의 생활은 수상 가옥에 비해 윤택한 편이다. 그러나 집 구조는 단순하다. 들어서자 마자 조상을 모시는 제단이 있고, 제단 아래는 간편한 탁자가 놓여 있으며, 이 탁자 우측에는 나무로 만든 평상이 놓여 있다. 평상 뒤에는 헤먹을 건 침실, 침실 오른 편에는 항아리들이 갖추어진 부엌이 있고, 그 안에 또 하나의 침상이 있어 부녀자들이 사용한다. 제단은 마당에도 있는데 이는 다른 잡신을 섬기기 위한 것이다. 즉, 조상을 섬기기 위한 제단, 빗물을 끌어들이는 수로, 빗물을 담아두는 항아리는 이 지역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다. 항아리는 빗물을 받아 식수로 사용한다.
한편 수로를 집 주위에 파두는 것도 물을 모아 오리나 물고기 등을 기르기 위해서다. 또한 전통적인 가옥에서는 이 수로에 화장실을 마련한다. 배설물이 수로에 떨어지면 물고기나 오리들이 이것을 먹고 자란다. 심지어 이 수로의 물을 길어 생활 용수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 물을 길어 항아리에 부으면 먼지나 불순물이 항아리 밑으로 가라앉는데, 물론 이렇게 정수된 물은 허드렛 물로 사용된다. 한편 메콩강 마을에서는 항아리가 많을수록 부자로 여긴다. 어떤 집에는 항아리가 10개도 넘는다. 그래서 그런지 이 지역에서는 아직도 항아리나 벽돌 공장이 성업 중이다.

땅 위에 살든 배 위에 살든 메콩델타 사람들은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고스란히 지닌 채 살아간다. 현대화의 물결이 메콩강에도 밀려와 변화가 일고 있지만 메콩델타 지역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만의 색깔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래서 메콩강 일대는 타임머쉰을 타고 간 과거의 나라처럼 느껴진다. 또한 넓은 강을 배를 타고 가면 얼핏 분주해 보이는 메콩 강은 여전히 여행자들의 가슴을 포근히 감싸준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방인을 반갑게 맞아주는 이들의 인심도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메콩강의 부드러움이 만들어 낸 것이 분명하다.

  • Created by: kimswed
  • Completed on: 25th Nov 2008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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