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O VINA

kimswed 2009.07.06 17:04 조회 수 : 2455 추천: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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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알렌과 한강 유람선으로 유명한 주식회사 세모가 봉제업이 기업 출범 당시의 고유 업종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세모가 베트남에 진출, 봉제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회사 이름은 세모비나. 위치는 1공장이,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사는 호치민시 7군 푸미흥 인근의 떤투안 공단에 있고 2공장은 9군에 있다. 각각 600명과 400명의 베트남 근로자가 근무하고 있다.
신제품 개발실. 뒤에 보이는 것은 수입원단
세모비나의 주 생산품은 봉제인형과 실내화. 책임자는 인형봉제에 있어서는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신광재 사장이다. 1945년생이다. 65세다. “친구들 가운데 이제 ‘현역’은 거의 없다.”며 환하게 웃는 신 사장. 경험과 열정이 그를 동료들이 거의 남지 않은 현장에서 뛰게 만드는 원동력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신 사장은 봉제업에 청춘을 바친 봉제맨이다. 그것도 세모의 봉제 해외법인체 관리만 만 17년째다. 92년 중국 공장 운영을 맡은 이래 95년 베트남 공장 설립을 주도했고 중국과 베트남 양쪽의 관리를 위해 두 곳을 오가며 ‘양다리’를 걸치기를 4년. 그 이후 베트남 공장은 후임자에게 물려주고 중국 광동성의 주하이 공장 운영에 주력했다.

그러다 2007년 주하이 공장이 폐쇄하게 되자 이를 정리한 뒤 지난해 다시 베트남 책임을 맡았다. 해외생활이 20년 가까이 되다보니 신 사장 부부와 2남1녀의 자녀들은 글로벌화 됐다. 한국, 중국, 미국과 베트남 등 4개 나라에 흩어져 산다고 한다.  

신 사장은 지난 94년부터 95년 사이에 자신이 직접 터를 잡고 지은 베트남 공장이 크지 않아 후회가 된다고 했다. 조금 외곽으로 나가더라도 넓은 땅을 잡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아직도 크단다. 부동산 투자에 따른 이익보다는 더 많은 결실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에서다. 

봉제업이 어렵다고들 하고 문을 닫는 봉제업체가 나온다고 하지만 세모는 ‘비교적’ 순항 중이다. 매출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적인 불황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주문이 꾸준해 평년 수준의 매출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인형의 외형 만들기 봉제작업
인형의 외형 만들기 봉제작업
신 사장의 안내를 받아 제품 전시실은 물론 신제품 개발실, 디자인실 등 대외비의 시설을 둘러봤다. 실제 공장 내부에 들어가서는 대부분이 수입품인 원단적재시설을 출발, 원단 재단실, 외형제작 과정이 공장의 1층과 2층에서 나눠져 이루어지는 과정에 대한 자세한 안내도 받았다.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수단은 엘리베이터다. 사람만큼 대접을 받는 인형이라야 제 값을 받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마지막 제작 과정에서 인체 무독성 스프레이를 사용하는 것과 금속탐지기를 거치는 것이었다. 독일 제품인 스프레이는 주로 인형의 사용자가 유아나 어린이라는 점에서 물고 빨고 해도 해롭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또 금속탐지기는 혹시 핀이나 바늘이 인형 내부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점에 착안, 완제품 포장 직전 이 과정을 거치도록 했다. 실제로 기자가 볼펜을 지나치도록 했더니 경고음이 울고 경광등이 계속 켜졌다. ‘이물질’ 포함 가능성은 원천 봉쇄. 신 사장은 완성품이 만들어지고 난 뒤에 이처럼 다시 품질검사 과정을 거침으로써 클레임률은 제로에 가깝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