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자유무역협정(FTA)을 100% 활용하려면 가치사슬의 궤를 함께하는 협력업체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2차, 3차 협력업체들은 영세기업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전담 인력을 운용하기에 애로가 많고, FTA 시스템을 도입하면 업무량은 늘어나는데 직접적인 실익은 없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 특히 제조과정이 공개되어 단가 인하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것이라는 우려를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완제품 업체와 1차 협력업체들은 정부와 무역 유관기관과 협력해 다양한 유인책을 마련해 2차, 3차 협력업체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무료 FTA 활용교육과 전문가 컨설팅,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애로사항 해결 등의 노력은 그 일환이다. 또한, FTA 업무 평가를 정기적으로 실시해 우수 기업들에게는 완제품 업체가 공급 계약을 연장하거나 물량을 늘리는 등 협력업체들이 안정적으로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방안을 마련했어도 협력업체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거래와 관련한 모든 분야에서 서로가 믿을 수 있는 신뢰감 구축이 전제돼야 하며, 대표이사는 물론 실무 직원들 간에도 이심전심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가능하다.

자재 담당하다 원산지관리전담자로 보직 변경

K과장은 지난 2010년 6월 광주광역시에 소재한 자동차부품제조업체인 M사에 입사해 자재팀에서 업무를 수행해왔다. 5년 후 K과장은 회사로부터 FTA 업무를 담당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FTA란 단어는 언론 등을 통해 많이 접했지만, 실제 업무에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지는 문외한이었던 K과장이었기에, 회사 임직원들 가운데 왜 자신이 이를 맡아야 하는지 의아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FTA 업무의 핵심은 제품의 원산지를 제대로 판단하는 것이었고, 원산지를 판정하려면 완제품에 들어가는 원재료와 부분품의 원산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했다. 자재팀은 회사 내에서 원재료와 부분품의 수요와 공급을 관리하는 조직이었고, 협력업체를 선정, 관리하는 역할도 담당하기 때문에 협력업체의 사정을 가장 많이 알고 있었다. FTA 원산지관리는 협력업체의 도움이 필요하기에 그들과 자주 접촉하는 직원이 담당자가 되는 것이 유리했다.

이와 함께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중소기업으로서는 전문 인력을 새로 충원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많기에, 한 명의 직원이 여러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K과장에게 FTA 업무를 맡긴 것도 한정된 인력 자원 한도에서 업무 확장성과 효율성을 고민한 끝에서 회사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자동차 내장재 한 우물… 국내 넘어 세계로

1970년 창업한 M사는 도어트림, 바닥매트, 천장재, 선바이저 등 자동차 탑승칸과 엔진룸 내장재 등 설립 이래 자동차 내장재 한 길만 걸어온 전문 기업이다. 주요 고객은 K사와 H사, T사 등이며, 베트남 완성차 공장에도 공급하고 있다.

M사가 FTA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자동차 시장 환경 변화에 따른 필연적 현상이었다. 정부가 FTA 체결국 수를 늘리면서 기아자동차 등 국내산 자동차의 FTA 체결국으로의 수출도 증가했다. 이때 완성차가 ‘한국산’으로 원산지를 인정받으려면 협력사로부터 공급받는 부분품의 원산지 또한 한국산임을 인정받아야 한다. 기아차와 타타대우상용차의 1차 협력사로서 수출실적 대부분이 ‘로컬 수출’로 이뤄지는 M사도 완성차 업체의 요청에 따라 자사가 공급하는 내장재가 한국산임을 인증하는 원산지(포괄)확인서를 발급해줘야 한다. 또한, M사는 2차, 3차 협력사들로부터 공급받는 부분품의 원산지관리도 신경 써야 한다.

FTA-PASS 구축, 종합적인 관리 가능

한발 더 나아가 M사는 국내 완성차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세계시장으로 진출하겠다는 목표도 이뤄내고 싶었다. 현지에 사업장을 마련한 국내 완성차 업체는 물론, 글로벌 메이저 및 각국 로컬 완성차 업체들에도 제품을 수출하기 위해 해외영업에 나섰다. 이 때 경쟁사들보다 가격경쟁력을 단기간에 높일 수 있는 FTA를 활용하는 것이 도움될 것이라고 봤다.

회사에서 목표를 세워도 임직원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성과를 낼 수 없다. M사는 국내 자동차 관련 업계 최초로 ‘드러내기 경영’을 도입해 안착시켰다. 전 임직원이 자신의 목표와 현재 업무 전반을 공개해 공유하는 경영기업으로, 이런 경영방식은 조직 내 소통이 원활해지고 확실한 동기부여로 작용한다. 이러한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K과장은 회사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고 실행에 옮겼다.

업무를 맡음과 동시에 원산지관리전담자로 지정된 K과장은 빨리 FTA 업무를 숙달시키고자 노력했다. 지역 상공회의소 FTA활용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센터가 제공하는 9차례의 FTA 교육을 이수했으며 업무상 애로사항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는 등 FTA 업무 지식을 고도화한 끝에 2016년 9월 ‘원산지관리사’ 자격을 취득했다.

한편 M사는 이에 앞서 FTA 활용을 추진하면서 2015년 11월 ‘FTA-PASS’ 시스템을 구축했다. FTA-PASS는 관세청이 개발해 중소기업의 FTA 원산지관리를 지원하기 위한 원산지관리 프로그램으로 수출품에 대한 기초정보의 관리, 원산지 판정수행, 원산지증명서 서류(원산지증명서·원산지확인서·원산지소명서·수출용원재료 원산지확인서)를 발급 및 관리하는 소프트웨어다. FTA-PASS를 통해 M사는 자사는 물론 2차 협력업체의 FTA 원산지관리업무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56회 무역의 날 ‘3천만불 수출의 탑’ 수상

M사는 FTA 인증수출자인증 제도를 활용하기로 했다. FTA 인증수출자인증은 관세당국이 원산지증명능력이 있다고 인증한 수출자에게 원산지증명서 발급절차 또는 첨부서류 제출 간소화 혜택을 부여하는 제도다. K과장은 준비 과정을 거쳐 2017년 11월 광주본부세관으로부터 회사의 기아차 공급품인 자동차 차체부품(HS코드 8708.29)에 대해 ▷한-터키 ▷한-미국 ▷한-페루 ▷한-콜롬비아 FTA에 대한 ‘품목별 인증수출자’ 인증을 받았다. 이어 2018년 6월에는 품목별 인증수출자보다 효율적으로 15개 전체 FTA 원산지관리업무를 전사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업체별 인증수출자 인증’을 획득했다.

2015년 9월 K과장의 보직 변경과 함께 FTA 활용을 본격화한 M사의 수출역량은 이후 비약적으로 개선됐다. 특히 해외 마케팅 활동에서 FTA 기업이라는 위상은 뛰어난 기술력과 우수한 제품 품질과 함께 바이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업체별 인증수출자 인증을 획득한 직후인 2018년 10월경 M사는 5만7,000달러 규모의 자동차 차체부품을 베트남에 직수출했다. 당시 K과장을 비롯한 회사 임직원들은 수출관련 무역서류 및 원산지증빙서류를 직접 작성해 지역 상공회의소 FTA센터의 도움으로 한-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 FTA 원산지증명서를 발급받아 수입자 측에 제공, 베트남 수입 관세 혜택(15%→9%)을 받게 했다. 2019년에는 베트남 등 아세안 시장은 물론 미국, 유럽 등 자동차 차체부품 직수출을 약 30만 달러 달성을 목표로 순조롭게 실적을 쌓아나가고 있으며, 2019년 제56회 무역의 날 ‘3천만 불 수출의탑’을 수상했다.

완성차 업체로부터 우수 협력사 선정, 매출증대

한편, K과장은 FTA 업무 노하우를 2차, 3차 협력업체와 공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이고 있다. M사는 일찍부터 협력업체들과의 동반상생을 추진해 왔다. 주요 협력업체들은 20여년 이상, 기타 중소 협력업체들과도 평균 10년 이상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K사나 H사 등에서 실시하는 동반성장 프로그램을 협력사에 전파하고 대금결제도 전 협력사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같은 조건으로 현금 100%를 지급하고, 정보공유를 위한 정기적 네트워크 모임을 갖고 있다. 기술지원과 품질육성지원은 정기적 교육과 지도, 문제 발생 시에는 TF팀을 열어 신속한 개선 및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고 있다. 장기간 지속되어온 협력관계 덕분에 어느 기업들보다도 원산지관리 협력체계 구축에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2차, 3차 협력업체의 FTA 활용 관심도를 높이고 FTA를 활용한 업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해 2017년부터 지역 상공회의소 FTA활용지원센터의 지원으로 협력업체 FTA 담당자를 대상으로 FTA기본교육, 원산지증빙서류 작성 실무 등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으며, 제3자 원산지확인 컨설팅을 활용해 원산지(포괄)확인서 정합성 검증을 통해 K사 등 국내 완성차수출업체의 원산지 검증에도 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높은 평가를 받아 M사 매출의 70%를 점유하고 있는 K사가 2018년 실시한 협력사 원산지심사평가에서 A등급을 획득해 우수협력사로 선정됐으며, 품질경영 원산지 부문에서는 최고점수인 30점 만점을 받아 향후 K사 부품공급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등 회사는 물론 협력업체의 매출 증대에도 상당히 기여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FTA활용정책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