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스타

kimswed 2007.05.15 07:50 조회 수 : 2222 추천: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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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썬스타-임헌재 법인장

최고의 기술력과 최첨단 메커니즘이 이상적으로 조화를 이룬 자수기- SWF

견고한 경쟁력으로 최고의 전자 자수기 썬스타를 만들겠습니다.”

 

임헌재

75년생/ 중앙대 통계학(부전공 경영학) / 썬스타 베트남 법인장()



㈜ 선스터는 공업용 컴퓨터 자수기를 포함하여 각종 봉제 기기를 제조 판매로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회사다. 세계적으로 일본 업체가 과점하고 있는 봉제기기 분야에서 한국기업으로는 유일하게 경쟁력을 유지하며 한국 기계 공업의 기술을 자랑하는 회사다.

썬스타 그룹의 전신은 지난 19746월 한국미싱 공업주식회사라는 이름으로 일본의 토요타 공업용 기계를 한국에서 제작 판매로 사업을 시작했으나 지금은 썬스타 산업봉제기계, 썬스타 특수정밀, 썬스타 R&C, 재운상사 및 썬스타 상사 등 국내법인과 미국, 중국, 홍콩, 유럽, 베트남 등의 해외법인과 해외지사를 거느리고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현재 산업용 재봉기, 서보모터, 컴퓨터 자수기 등을 제조, 판매, 수출하는 썬스타 특수정밀은 19907월 설립된 이래, 재봉기 및 동 부품의 정밀가공 생산 및 컴퓨터 다두 자수기를 연구개발, 국내 최초로 국산화에 성공시키며, 세계 유수의 봉제기계 종합메이커로 성장하여 SUNSTAR, FORTUNA, SWF(Sunstar With Future)란 독자브랜드로, 전세계 봉제업체에 수출을 하고 있다.


㈜ 썬스타가 100% 단독투자로 베트남 판매법인을 설립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썬 스타가 1996년 경 베트남에 진출한 이후 우리의 판매방식은 에이전트 또는 딜러를 이용한 일종의 대리점 영업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에서 적지 않은 매출을 올림에도 불구하고, 정작 회사에서는 베트남 시장에 대한 정보를 취득하기 어려웠습니다. 많이 팔리니까 굳이 신경 쓰지 않았고, 대리점에게도 특별히 요청하는 것이 없으니 시장의 특성이나 개별 요구를 파악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2009년 말, 본사에서 전세계 30곳이 넘는 모든 지사와 법인에게 정확한 시장조사 및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실제 가격구조의 데이터를 재 파악하는 작업을 통해 저희는 베트남에 대한 시장 및 가격정보가 너무 빈약하다는 사실을 알았고, 보다 정확한 시장통찰을 위해서는 본사 마케팅 직원이 현장에 상주해 철저한 베트남 시장학습을 시작했습니다. 제조회사로서 그리고 수출을 90% 넘게 하는 회사로서 가장 필요한 것은 안정된 높은 매출과 좋은 마진구조입니다. 대리점들은 더 이상 한국과 중국의 상승한 원재료비율로 인해 높아진 본사 공급가에 대해서 가격협상을 거부했고, 받아들여져도 소비자 가격이 인상되어 높은 매출을 올리지 못하고, 또한 중간상을 통해 소비자에게 공급되다 보니 본사 마진구조도 좋지 못했습니다.

결국 본사는 유통과정을 생략한 직거래 방식으로 전환하여 판매가격도 낮추고 매출도 높일 수 있는, 제조사와 소비자가 다 함께 윈윈(win win)하는 방안으로 판매와 서비스를 본사가 직접 행하는 현지 법인을 만든 것입니다.


현지법인 설립으로 인한 소비자의 직접 적인 혜택을 구체적으로 들자면 어떤 것들이 있을 까요?

우선 썬스타라는 자수기는 수십 년 동안 전세계 시장을 과점하며 막대한 수익을 올리던 일본 제조사에 대항하여 한국에서 처음으로 자제기술로 제작한 한국형 자수기입니다. 썬 스타의 출현으로 세계 자수기 시장의 판도가 달라지게 되고 제조사가 일방적으로 제공하던 자수기 기능에 소비자의 요구에 반영되는 효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그런 썬스타 자수기가 이제 대리점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직접 공급된다는 것은 모든 소비자가 공정한 가격에 편리한 사후관리를 제공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우선적으로 들 수 있습니다.

썬스타 베트남 판매법인은 기존 대리점처럼 유통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는 회사가 아니라 제조사와 소비자가 직 거래를 통해 상호 이익을 구현하고자 설립된 회사입니다. 따라서 그 동안 중간 마진상들의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취해왔던 편협한 영업방식에서 벗어나 소비자들에게 홍보 미약했던 제품들 또는 옵션들에 대해서 이제부터 바른 정보 전달과 안내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특히 자수기 시장의 최대 관건이 사후관리가 한 단계 상승하여 고객의 불편사항이 줄어들고 또한 고객의 요구가 바로 제작에 반영되어 썬스타 자수기를 보유한 공장들의 운영에도 실질적인 도움을 줄 것입니다.


2011년 썬스타의 베트남 시장에 대한 전망은 어떻습니까?

많은 섬유 수출기업들이 2009년에 어려움을 겪으셨을 것입니다. 작년은 그러한 시장침체가 회복되는 기간이었고 올, 2011년은 정상수준으로 회복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어 난관 할 수는 없는 입장입니다. 그 만큼 베트남은 이미 섬유산업이 포화된 상태이긴 하지만 역설적으로 말하면, 아미 많은 사람들이 이 산업에 종사는 관계로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산업이기도 합니다. 베트남 정부의 입장에서는 수많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봉제 산업을 소홀히 대할 수는 없지만 점진적인 조정기간을 거치면서 특정 산업의 집중화를 탈피하며 균형을 찾기 위해 적어도 향후 5년은 정상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2011년에는 썬스타가 베트남에 직판의 목적은 장기적인 시장 관리입니다. 자수기는 섬유산업을 위한 기반산업용 제품이지 일반 소비재가 아닙니다. 단 한 분이라도 잘못된 구매가 이루어지면 우리는 매출을 올려서 좋은 것이 아니라 아주 소중한 희망을 접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인 자수업체, 봉제업체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2011년에는 하시는 사업들 번성하기를 기원합니다. 1974년 한국미싱공업주식회사 설립 이후 30년이 넘게 썬스타가 세계 속의 최성의 자수기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한국고객 분들이 보여준 썬스타에 대한 애착 때문입니다. 초기에 여러 가지 부족한 점에도 불구하고 같은 한국기업이라는 이유로, 특히 해외에 진출하신 한국기업들이 과감히 저의 제품을 사용하여 주신 열의와 성원 덕분에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베트남에서 그렇게 우리가 받았던 열의와 성원을 최선을 다해 돌려 드리고자 합니다.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단계로 그 영향력은 미비하겠지만, 그 동안 꾸준히 지켜 봐 주셨던 것처럼 묵묵히 노력하여 여러분의 성원에 보답할 것입니다. 진심으로 베트남 한인 사업자 모두에게 썬스타 전 직원들이 보내는 감사의 마음을 전달합니다.



한 영 민

심보감에 <행유부득(行有不得) 이어든 반구제기(反求諸己)니라> 라는 말이 있다. 즉, 행하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면 모든 문제를 자신에게서 찾으라는 말이다.
한동안 한국의 지난 정권에서 뭔가 일이 잘못되기만 하면 모든 원인이 이를 비판한 언론이나 반대하는 야당에게 있는 듯, 남의 탓으로 몰아 부치던 시절 자주 인용되던 구절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참 억울하게 손해를 보는 경우가 다 반사로 일어난다.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건만 뭔가 예상치 않던 일이 터지며 자신의 뜻을 꺾어버리는 경우, 우리는 내 잘못이 아니야 그저 운이 나쁜 탓이야 혹은 나를 시기한 다른 인간 때문에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잘못된 일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으며 스스로를 위로하곤 한다. 그러나 사실 모든 세상일, 자신에게 닥치는 모든 일은 다 자신의 결정이나 자신의 행위에 의해 정해지기 마련이다.

만약 자신이 타고 가던 열차가 전복이 되어 부상을 입었다고 해보자. 누구의 잘못인가? 이것은 정말 천재지변에 가까운 재해이지 나의 잘못이 아니지 않는가라고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좀더 숙고해보면 그 역시 자신의 탓이다. 그 기차의 목적지를 가겠다고 결정한 것도 자신이고 그 기차를 타겠다고 결정한 것 역시 자신이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다 자신의 존재와 행위에 의해 확인되는 것이기에 모든 원인과 책임은 자신에게 귀속되는 것이다. 그 일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지 말이다.

이런 세상사의원리를 깨닫지 못하고 모든 일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다면 자신의 존재는 자꾸 초라해지게 된다. 자신의 행동을 떳떳하게 책임질 때 자신의 가치는 더욱 빛나게 된다.

골프를 예를 들어 보자. 마지막 승부를 가름하는 최후의 2미터 퍼팅을 남겨두었을 때 주변 동반자의 움직임이 자신의 시야에 잡히는 바람에 집중이 흩어져 공이 라인을 벗어났다고 하자. 이럴 때 많은 이들이 그 동반자를 탓하며 불평을 늘어 놓는다. 그런데 마침 라인을 벗어나 빗나가려는 공이 그린 위에 있는 작은 돌에 맞아 다시 홀에 들어갔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 경우는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까? 그 라인으로 공을 보내게 만든 동반자에게? 아니면 라인상의 돌멩이에게 감사 드려야 하는가? 이렇게 외부에서 원인을 찾다 보면 자신의 가치는 점점 무의미해 진다. 자신의 가치를 찾기 위해서라도 어떤 경우든지 자신의 행위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공이 돌에 맞고 홀에 들어갔건 동반자의 방해로 안 들어갔건 간에 정작 퍼팅을 한 것은 동반자도 작은 돌멩이도 아닌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잭 니콜라우스가 한창 이름을 날리며 승승장구를 하던 시절 당시 잭의 라이벌이자 넘치는 유머에장난기 마저 많던 리 트래비노가 어느 시합에서인가 마지막 퍼팅을 하던 잭 앞에 장난감 뱀을 던져 퍼팅을 미스하게 만든 일이 실제로 있었다. 그 후 골프 협회에서는 그것을 문제 삼아 리 트레비노의 선수 자격을 박탈할 것인지를 논의 중이었다. 그때 잭은 자신이 뱀을 무서워한다는 것은 이미 선수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일이고, 그것을 이용해 리 트레비노가 자신의 퍼팅을 방해하기는 했지만 그런 일을 예상하지 못하고 퍼팅을 미스한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며 리 트레비노의 자격심사를 원치 않는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즉 자신이 뱀을 무서워하지 않았다면 리 트레비노 역시 그런 장난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어떤 경우라도 정작 퍼팅을 한 것은 자신이기에 자신에게 그 일의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그의 발언은 리 트레비노를 구제하려는 의도가 있었겠지만 우리는 그 발언을 통해 그가 세상사의 속성을 알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다 자신이 존재하기에 일어나는 것이고 그 과정이나 결과 역시 자신의 행동으로 결정되는 것이 세상사의 원리라는 것이다.

이렇게 지극히 당연한 세상사의 원리를 깨닫는다면 자신의 행동이 어찌되었든 간에 그 책임을 회피하는 비굴함은 사라진다. 자신의 행동을 부인하고 모든 일의 원인을 외부에서 구하는 비굴함에 익숙한 사람은 솔직하게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는 당당한 태도가 얼마나 자신을 자유롭게 만드는지 알지 못한다. 왜 잭 니콜라우스가 승리자의 이름으로 기억되는지 그들은 알지 못한다.

비굴함이란 부끄러움을 모르는 심성을 의미한다. 즉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없음을 의미한다. (수오지심: 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

알고 보면, 이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바로 우리 사회의 질서와 관계를 지탱하는 기본 정신이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 자신의 애완견이 배설한 오물을 치우지 않고 오히려 욕설을 남기고 떠난 여자에 대한 동영상이 인터넷에 떠서 <개똥녀> 낯 뜨거운 이름의 화제를 남긴 적이 있다.

그런 일이 왜 일어났을까? 그녀는 그 당시 자신의 주위에 있던 승객들을 다시 볼 필요가 없는 타인으로 인식했기에 자신이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 승객들을 자주 마주하는 이웃으로 여겼더라면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지속성이 없는 인간관계에서는 몰염치한 일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은 타인에게는 어찌하든 관계없다는 염치없는 생각이 이런 현상을 불러온 것이다. 이렇게 사회의 구성원을 이웃이 아닌 타인으로 치부하는 한 우리사회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몰염치한 사회로 남는다. 부끄러움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는 지옥과 다름없다.

사르트르는 지옥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타인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며 사랑을 나누는 이웃이 없는, 타인만이 존재하는 세상이 바로 지옥이라는 것이다. <개똥녀>가 그런 논란의 대상이 되어 곤욕을 치르게 된 것은 바로 스스로 타인의 세상에서 살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호흡하고 있는 베트남의 한인사회는 과연 부끄러움이 존재하는 사회인가? 유감스럽게도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일부 인간들이 거짓된 가면으로 자신을 포장하여 기세 좋게 행세하며 불의의 바이러스를 퍼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끄러움을 모르는 몰염치한 자들은 베트남에서의 인연을 지속성의 관계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이곳을 그저 우연히 함께 지하철을 탄 것과 같은 일시적 군집형태로 보고 자신의 거짓된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다. 나중에 자신의 가면이 벗겨지면 그저 지하철에서 내리듯 미련 없이 베트남을 떠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한인사회의 역사도 벌써 16년을 넘었고 교민수도 10만을 상회한다. 이곳은 이제 그저 잠시 머물다가는 임시사회가 아니다. 우리는 더 이상 서로에게 타인으로 남아서는 안될 일이다. 우리는 베트남의 한인사회에서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이웃들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의 터전인 이곳을 가면을 쓴 자들이 행세하는 부정한 사회로 방치해서는 안될 일이다. 그런 인간은 베트남을 떠나면 그만이지만 10만의 한인사회는 그런 인간의 남긴 오물로 인하여 쉽게 치유될 수 없는 상처가 남기 때문이다.

이렇게 안타까운 거짓이 행세하는 사회를 누가 만들었는가?

반구제기(反求諸己), 바로 우리 스스로 만들어 놓은 것 아닌가?